통영에 활짝 핀 매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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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병일(jinmun)등록 2005.03.02 16:21

미륵도 달아공원에 핀 매화 ⓒ 윤영숙


새벽에 땅 걷기 모임 일행들과 전주에서 합류했다. 한참 달리던 관광버스를 세우고, 일행은 마이산의 동쪽에서 두 봉우리가 잘 보이는 곳에서 10분 휴식을 취했다. 맑은 하늘 아래로 마이산의 두 봉우리를 보면서 역시 잘 참석했다는 생각이 앞섰다.

동쪽 멀리에서 바라본 마이산 ⓒ 윤영숙


버스가 통영 가까이에 이르자 청마 유치환 시인의 시비에 얽힌 일화를 신정일 소장이 소개해 주었다.

시인 김수영은 경주의 어디가에 세워진 청마의 시비를 찾아 관공서에서도 잘 모른다던 곳을 제자를 통해 알고 불국사 가던 길가에 세워진 시비를 찾아갔다. 청마의 시비에서 앞에서 시인은 목놓아 통곡했는데, 다시 가보고 싶다고 말했던 김수영은 일년 후에 교통 사고로 생을 마친 일화며, 신정일 소장도 청마의 시비 앞에 한 시간 이상 혼자 앉아 있었던 옛기억을 들려 주었다.

또 신 소장은 `행복'이란 시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인정의 꽃밭에서/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사랑하였으므로 진정 나는 행복하였네라.”

낭송해 가면서 우리의 통념상 결혼한 지식인이 다른 연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 이 시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지만 분명 좋은 시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이어 통영은 일대는 중앙기상대에 의하면 일년 중 250일이 맑기 때문에 날씨가 가장 좋은 지방이며. 통영은 통제영에서 유래하여 통영으로 불리다 충무시에서 다시 통영시이라는 지명을 쓴다고 설명해 주었다.

통영에 도착해 충렬사를 두루 살펴보고 내려왔다. 세계 해전사에서 가장 빛나는 전투 노량해전을 비록해 34번의 크고 작은 해전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불패의 신화적 인물 이순신 장군의 개인적 삶은 너무 불행했다.

충렬사에서 신정일 소장과 회원들 ⓒ 윤영숙


장군은 녹둔도에서 근무하던 시절 아버지의 임종도 수십일 후에 알고 아산으로 간다. 팔십이 넘은 노모가 아들 이순신을 만나려 아산으로 향해 오다 세상을 뜬다. 어머니의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전쟁터로 떠나는 비통한 심정을, 또 아들 왜군에게 죽임을 당했음을 알고 내가 죽고 너가 살아야 하는데 하며 통곡의 마음도 <난중일기> 쓰던 마음을 해아려본다.

나는 오늘 관람객으로 충렬사에 와서 장군의 나라 사랑한 마음을 깊이 되새겨 본다.

통영항에서 남망산 조각공원 중턱으로 올랐다. 문화관을 앞에 통영항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그 시선이 향하는 위치에 청마의 시 '旗ㅅ발'이 새겨진 시비가 서 있다.

“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 저 푸른 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 永遠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 純情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 오로지 맑고 곧은 理念의 標ㅅ대 끝에 / 哀愁는 白鷺처럼 날개를 펴다. / 아아 누구던가 /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

일행 중 한 아주머니가 '깃발'을 낭송했다.

나는 전망대 수향정에서 한산섬을 살펴보고 내려와 이순신 장군의 동상 아래 단기 사천이백 팔십팔년에 세운 이충무공 한산대첩비를 자세히 보았다.

남망산 조각 공원에서 바라본 한산섬 ⓒ 윤영숙


'통영오광대', '남해안 별신굿', '승전무' 설명해 놓은 간판. 통영무형문화재전수회관과 보존협회에 건물 앞에서 통영의 어머니와 같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박경리, 유치환, 유치진 같은 문인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음악가로 꼽히는 윤이상을 낳은 근원적인 힘은 통영 저 바다에서 나온 것이다.

남망사 전퉁무형문화재전수회관에서 바라본 통영항구 ⓒ 윤영숙


윤이상은 죽기 전까지 간혹 일본에 들르는 기회가 있으면 배를 타고 남해안 근처로 접근해 가면서까지 고향인 통영 앞바다를 먼발치로 보려고 애를 쓰며 그리워했다. 윤이상은 살아 생전에 끝내 고향 통영에 오지 못했다.

도대체 조국은 무엇인가, 조국을 사랑했던 음악가는 조국 땅을 그리워했지만 분단을 핑계로 그를 이국 땅에서 세상과 작별한 아픔은 준 이들은 누구인가. 그의 아픔을 누가 어루만지단 말인가! 말로만 통일이 아닌 하나 된 조국은 언제 될 것인가! 이 땅에 남은 우리는 진정한 조국 통일에 대한 생각도 해 보고 실천의 행동을 보여야 하리라!

세병관 ⓒ 윤영숙


이어 세병관은 들려 옆에 세워진 공적비에서 신정일 소장이 -조선 후기 삼도수군통제영의 통제사로 와 있던 벼술아치가 정승으로 벼슬이 올라 통영을 떠나게 된 것을 섭섭히 여겨 "강구안 파래야, 대구.북장어 쌈아, 날씨 말고 물 좋은 너를 두고 정승길이 웬말이냐"라고 탄식했다며,

세병관 옆에 있는 조선시대 삼군수군통제사 공덕비 ⓒ 윤영숙


또 일제 36년의 수탈의 시대에는 일본인들이 풍부한 수산물과 좋은 날씨를 찾아 일본이들이 몰려와 살았다-고 설명해 주었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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