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당역 공연 ⓒ 박종인
"무얼 준비하시는 거죠?"
"공연이요."
"그래요. 몇시부터 인데요?"
부지런히 앰프를 나르고, 셔터를 내리는 중에 체격은 일반 여성에 비해 크지만 다소 추레하게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와 말을 건다.
공연을 준비하다 보면 진짜 궁금해서 물어오시는 분들, 또 괜히 지나다 참견하시는 분들까지 그런 류가 어디 한두 사람이랴 싶어서 건성으로 대답을 하였더니 그분은 무얼 열심히 적는다. 힐끗 쳐다보니 부러 공연 시간을 꼬깃꼬깃한 종이에 옮기고 있는 것 아닌가!
순서가 한창 진행되어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아까 다녀간 아주머니가 누군가를 대동하며 나타났다. 일반 사람들이라면 관객들 속에 묻혀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갈 수 있었는데, 그이는 가장 앞자리로 열 살 여의 남자아이를 데리고 와서 자리를 잡는다. 그 모자의 출연이 도드라지게 눈에 들어온 것은 아이가 정상이 아닌 휠체어를 의지하여 관객들 속을 헤집고 들어섰기 때문이다.
통상 그 정도에서 아이가 공연을 보고 단회성으로 넘어갔을 법한데 그렇게 나타난 두 모자의 참관 모습은 이제 족히 1년은 넘어가는 것 같다. 평균 2-3주간 간격으로 뒤에서 휠체어를 밀며 나타나거나, 먼저 어머니가 와서 이따 들를 거라는 언질을 주고 나면 어김없이 객석에 두 모자의 모습이 보였다.
순국이라고 하였던가? 성도 알지 못하는 아이지만 다른 낯익은 어느 관객보다도 순국이의 점진적인 출현은 객에서 레일아트 식구들, 특히 가수들과의 인연으로까지 발전하였다고 본다. 무엇보다 예비신랑인 전흥철군(7월 3일이면 간호사 팬과 가정을 이루게 된다)은 형이라고 하고 나와 동갑인 무술배우이며 가수인 공소야님에게는 삼촌이라 하면서 틀린 철자로 이메일까지 주고받는 것 같다. 메일내용도 단순히 생각나서, 또는 보고싶어서라는 문자가 주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 내용을 어머니가 보내는지 아이가 보내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대표님, 이번주 토요일이 순국이 생일인데 깜짝쇼를 준비하죠."
공연팀장이 어느 날 추운 겨울에도 끝까지 레일아트 공연을 관람해주는 순국이의 생일을 챙기자며 제안해온다. 겨울아이란 노래가 적합할 계절에 태어났으니 노래만 준비하고 누구는 꽃을 준비한다고 하였지만 막상 그 계획은 당일 이 한마디에 수포로 돌아갔다.
"순국이가 교통사고가 나서 오늘부터 당분간 보기 힘들 거라는데요."
겨울의 추운 날씨가 아무리 버거워도 제 혼자 추위에 대한 앞가름이나, 화장실가는 것도 해결을 못하는 정상적이지 못한 몸인데 거기에 또 교통사고라니..
"어쩌다 그렇게 되었지? 혹 여기 오다가 그런 것은 아닌가?"
궁금어린 질문을 던져도 어느 누구 하나 시원한 대답을 하는 이가 없다. 우리는 그 아이에 대해 너무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국이가 없어도 여전히 사당역은 그 아이의 자리를 대신한 어린아이들이나 가끔씩 나타나 소주병을 든 채 제 흥에 겨워 어쩔 줄 모르는 유일한 사당역의 노숙자, 일전에 박우물 칼럼에서 따로 제목을 잡아 언급했듯 공연장마다 따라다니는 밉지 않은 훼방꾼등이 시선을 분산시킬뿐 아이의 부재와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 달리는 눈꽃열차 공연 ⓒ 박종인
겨울의 끝자락이었을 정도에 이번에도 교통사고를 알린 이가 오늘 순국이가 퇴원을 하여 공연장에 들를 거라는 정보를 준다. 전달되어진 말대로 아이는 예전처럼 휠체어에 의지하며 똑같은 모습으로 공연을 보러 왔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녀석이 보여 곧바로 마이크를 잡고 병상에서 돌아온 순국이를 환영한다고 언급을 하니 객석에서 한마음으로 환영을 한다. 어쩌면 그 박수를 유도한 나의 본 바닥은 무관심에 대한 미안함을 객쩍은 박수로 대신한 것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가끔씩 아이는 가수들에게 줄 선물이 있다며 작은 악세사리, 이를테면 핸드폰줄 같은 것을 지정한 대상에게 선물하곤 하였다. 본인이 만들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지만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하는 녀석의 마음은 노래를 하는 사람들이 진을 빼듯 열정을 다 토해내고 나서 허해진 한 구석이 있다면 그 여백을 채우는 공간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켜보는 사람도 그 한 켠이 채워지는데 막상 선물을 받는 이들이야 더 할 나위 없을 것이다.
최근들어 아이는 거의 매 주말마다 공연장을 찾는다. 당연히 집이 지근거리에 있을 줄 알고 무심코 엄마에게 질문을 하니 뜻밖에도 이곳 사당동과는 상당히 거리가 떨어진 6호선의 끝쪽을 말한다. 얼른 가늠 잡아도 의정부 쪽을 연상하는 노원역이 휠씬 더 가까운 곳이다.
"우리 애가 장애정도가 심해 일반 학생들 속에서 공부를 하기가 어려운데 이곳 방배 까리따스에서만 받아주어 매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사당역에 들르는 거예요."
남부순환도로 예술의 전당방향에 위치한 그 종교복지 시설과는 작년에 수녀님들이 시스터 액트의 장면을 연상하는 공연을 한번 대대적으로 한적이 있어 유쾌한 추억을 가진 곳이었다.
눈에 자주 보인다고 하여서 당연스레 이곳 근동의 사람이라 쉽게 추론해버린 성급함에 평소때는 어찌 학업을 하는지를 물어볼 새도 없이 나는 말문을 닫고 말았다. 이동은 어찌 하는지, 전철로 다닌다면 그곳 역과 집까지의 이동거리는 얼마나 되는지를 감히 물어보기가 미안해진 것이다.
수업이 끝나면 아이가 2차로 항상 찾는다는 이곳 사당역 공연장에 순국이는 또 하나의 낯익은 풍경이 되가고 있다. 앞에 언급한 열성 팬 몇몇과 함께.
자기들끼리는 반갑다 하는지 최모모씨는 무대의 공연과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순국이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모습이 보인다. 참, 순국이는 언어에도 장애가 있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물론 농아는 아니다. 그러니 항상 조용한 모습으로 무대를 지켜보지만 같이 앞자리를 차지하는 지기들은 절제되지 않은 반가움의 표현을 아이에게 쏟는데 당사자는 어쩔지 모르겠다. 나타날 때마다 소주병을 들고와 순간도 쉬지 않고 제 멋에 겨운 노숙자 아저씨의 출현은 그래서 우리에겐 적잖은 경계의 대상이다. 스탭들이 중간에 끼어들어 순국이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기도 여러번이지만 일일이 제지하기가 기실 쉽지는 않다.
횟수로 5년째 사당역에서 진행되는 지하철공연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대에 서고 또 추산되지 못할 숫자만큼의 눈들이 우리와 함께 할지 모르지만 소망하는 바는 순국이와 같은 단 한명의 아이가 엄마를 채근해 매주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된다면 감히 우리의 목적을 이루었다고, 아님 더 원색적인 표현으로 우리 공연은 성공했노라 자평할 수 있으리라.
-박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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