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박'으로 끝날 '반박' 쿠데타

[주장]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의 법사위 점거농성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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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대(omylogic)등록 2005.03.05 17:00
국회 법사위원회의에서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벌인 17시간 점거농성은 외형상 명분은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 반대였으나 사실상은 박근혜 대표를 흔들기 위한 쿠데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반박(反朴)' 쿠데타는 행정기관 이전시 약화될 수 있는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지키고 동시에 현 지도부를 흔들어 자신들의 당내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반민주적인 파당적 일이라 할 수 있다.

한국정치판을 황폐화시키는 이러한 행위는 단순히 몇몇 의원들에 의한 불법 난장판 행위로 그치지 않고 한국 의회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테러행위라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제1야당은 분당 가능성이 논의될 정도로 지도부가 위협을 받게 되었으며, 그나마 절뚝거리며 한걸음씩 발전해온 한국의 의회정치와 정당정치도 큰 상처를 입었다.

이들의 엉뚱한 쿠데타는 나름대로는 상당한 준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한나라당 내에서도 수차례에 걸친 토론에 이은 결정이 되어 반대 명분이 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4명의 의원이 벌인 전격적인 불법 점거행위가 당내에서 제법 상당한 세력을 규합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사태의 주역들은 당 대표와 정치적 경쟁관계에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과 친소관계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측면에서 보다 조직적으로 준비된 박근혜 흔들기라는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들은 수도 행정 이전 문제와 관련하여 실질적인 정치적 손실을 입게 될 수도권 지역 의원이나 서울시장 측근세력 등이기에 한나라당 상황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높은 결속력과 행동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조직력이 약한 당 지도부를 상대로 쟁점이 되는 수도 행정기관 이전 문제에서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당엘리트들을 결속시키면 충분히 승부를 걸어볼 수 있다고 자신한 듯하다. 그래서 대권주자들의 은밀한 야심과 함께 맞물려 상당한 세를 얻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이들 쿠데타 세력들이 자신감을 갖는 것은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과거사 진상규명 등과 맞물려 박근혜 대표가 결국 회복불능의 상처를 입게 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판단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맹목적 색깔론에 기반한 극우보수적 야당만들기를 부추기는 당외곽의 소위 새로운 우익운동의 전개에 크게 고무받아 차제에 현 지도부와 한판 승부수를 띄우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들의 반박 쿠데타는 상당한 세력화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분당의 어려움에 처한 박근혜 대표가 장기적으로는 이 사태를 겪으며 자생력이 더 강화된 지도자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 근거는 크게 보아 네 가지이다.

첫째는 반박 쿠데타 세력의 명분보다는 박근혜 지도부의 명분이 훨씬 더 정당성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반박 쿠데타 세력은 외형상으로는 수도를 지킨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사적인 이해관계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 어렵지 않게 나타나는 일이고, 은연중 이명박 시장을 중심으로 한 패거리식 단결이 노출되어 그 세력이 아무리 커도 결국 공익적 명분이 결여된 파당적 결속에 불과해 전국 정당이나 나라를 이끌어갈 명분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념성이 약한 한나라당 정치풍토에서 명분이나 이념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정치에서는 설득력 있는 명분이 없으면 전국적 정치세력으로의 성장은 어려운 것이다.

서울시를 개인적으로 하느님에게 봉헌하여 구설수에 올랐던 이명박 시장은 연이어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서울시를 지켜야 한다는 또 다른 구설수에 올라 있던 상황이기에 이들 반박 쿠데타 세력이 내세우는 '수도 지키기'는 하나의 집착으로 코미디에 불과할 뿐 국가를 이끌 명분은 될 수 없는 것이다.

국가사회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소수인들만의 이해를 충족시키기 위한 결집은 전형적인 도당 혹은 파당(faction)의 개념으로 현대 정당의 개념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행정 분산으로 수도권 지역주민들이 입을 수 있는 다소간의 재산상 하락을 핑계 삼아 소집단의 배타적 단결을 부추기는 것은 영남지역의 지역감정 부추기와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에 국가사회의 균열을 불러일으키는 반사회적 행위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들이 미국을 건설하면서 제일 경계했었던 것이 바로 이러한 파당적 단결이었던 것이다.

그와 대조되는 한나라당 지도부의 대응은 오히려 귀감이 될 정도였다고 할 수 있다. 분명 한나라당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면 그 누구든 어려운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어떠한 선택을 하든 어차피 한쪽에서는 강한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는 쟁점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당지도부는 어쨌든 나라 전체를 생각하는 결정을 내렸으며 민주적 과정에 충실했다. 그 결정이 좋은 결과로 연결될지 혹은 나쁜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 모르지만 최소한 나라를 생각하는 고뇌에 찬 결정인 것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국가전체의 발전을 생각하여 어려운 결단을 한 박근혜 대표는 파당적 이해관계에 매몰된 반박 쿠데타 세력과는 분명 대조되는 원칙적 행보를 한 것이기에 나라를 생각하는 정치인으로 국민들에게 각인되며 차후 보다 큰 성장을 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든 셈이다. 반면에 반박 쿠데타 세력은 아무리 세력을 규합한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힘을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둘째는 한나라당에서는 지금 박근혜 대표만큼의 대중성과 자생력을 가진 전국적 인물은 없다는 점이다. 즉, 조직면에서는 지도부 세력이 약할지 모르지만 바둑의 세력에 비유할 수 있는 대중적 세력은 반박 쿠데타 세력에 비해 월등하게 우세하다는 점이다.

이미 지난번의 총선과정에서 명확하게 확인된 바와 같이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정당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시장이 이끌든 혹은 다른 인물이 이끌든 전국 정당으로의 성장은 힘든 것이다. 따라서 이번의 반박 쿠데타는 성공할 확률도 낮지만 설령 성공한다고 해도 전망이 없기 때문에 결국 ‘피박’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한국의 정치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많이 발전했지만 소수정당의 존속에 대해서는 여전히 가혹한 환경이 남아있다. 현재 몇 개의 소수 정당이 존립하는 것은 비례대표제와 지역감정 및 노조 중심의 진보 정치이념에 의한 것으로 큰 흐름상으로는 양당제로 가게 만드는 제도 위에 놓여 있다. 따라서 전국적 카리스마를 가지지 못하고 이념도 불투명한 새로운 정당은 태동도 어렵지만 태동한다고 해도 그 미래가 불투명한 것이다.

셋째는 민주적 결정을 뒤엎는 불복행위는 결국 미래가 없다는 현실적 근거이다. 한때 정치권에서 잘 나가던 이인제, 박찬종 전 의원이 경선불복이라는 오명을 쓰고 결국 정치권에서 사라졌다. 이번의 반박 쿠데타 역시 민주적 결정에 불복했다는 측면에서는 경선불복과 다를 바가 없다. 결정과정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나름대로 토론이라는 당내 민주적 절차가 있었다. 박근혜 대표가 우유부단하게 비칠 정도로 많은 토론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양당 지도부 사이에서도 민주적인 절충과 타협이 있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민주적 절차를 짓밟고 다수의 의사를 무시하며 의원 4인에 의해 자행된 의사당 불법 점거 사태는 “야만적”인 “폭거”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자신들이 진정 옳은 소신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내의 민주적 절차에 의해 결정된 것은 일단 수용하고 그 후 다시 사람들을 설득하여 지지를 넓혀 민주적 절차에 따라 새로운 당론을 만들고 또 국회 입법과정을 밟아 가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정치요 정당정치인 것이다.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제도화된 민주적 과정을 뒤엎고 불법 점거농성을 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것은 다수에 대한 소수의 강요에 불과하다. 이런 억지는 정치판이 아니라 사회 다른 부문에서도 통하지 않는 반문명적 행위인 것이다.

도롱뇽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한 사람이 국가의 대규모 국책사업을 지연시키는 사건을 겪기도 했지만, 한 사람 혹은 소수가 사회 전체의 일반의지를 꺾는 반민주적이고 비이성적인 행위는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네 번째는, 문제가 된 과거사 논쟁이 결국 박근혜 대표에게 치명적인 회복불능의 상처를 입힐 것이라는 설익은 주장은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하나의 가설일 뿐 실증적으로 확인된 일은 아니기에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아직은 과거사 논쟁의 파장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버지의 후광을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버지의 공과에 대해서는 이미 찬반이 있는 상황이고 또 아버지가 한 일에 대해 딸이 책임져야 한다는 정치적 연좌제가 어느 정도 실제 정치에 영향을 미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는 일이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대통령 선거에 4번째 도전에 대해서는 비관적 인식이 많았으나 결국 성공하기도 한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열린우리당 정세균 원내대표가 행정수도특별법 처리를 위해 한나라당 지도부와 빅딜 가능성을 시사하는 묘한 발언은 야당 분열을 의도한 공작적 냄새가 풍기는 일로 한국의 정당정치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집권당 역시 이번의 점거사태로 피해를 본 입장인데, 불법점거를 한 쿠데타 세력을 돕는 듯한 묘한 발언은 그 후 여러 차례 해명이 있었지만 쿠데타 세력에 간접적으로 동조하여 제1야당 지도부를 붕괴시키기 위한 치고 빠지기 식의 행보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반박 쿠데타 세력들이 의도하는 바는 최근 진행된 노무현 정부의 몇 가지 실책으로 나빠진 민심이반을 발판으로 한나라당을 좀 더 극우적인 정당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정황임에도 불구하고 협력적 관계를 유지해나가야 할 제1야당 지도부를 곤혹스럽게 할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을 한 일은 사실상 반민주 쿠데타 세력을 옹호한 결과를 낳는 행위로 자신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사실 과거사법이나 수도행정부서 이전 건은 상호 빅딜을 할 상황도 아니었고 여건도 아니었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마음만 먹는다면 굳이 그런 위험스런 빅딜을 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연기할 수 있는 일이었다. 고작 4명의 법사위원 점거로 국회 일정에 지장을 초래했는데 야당 전체가 마음먹는다면 기술적으로도 한두 달 연기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닌 것이다.

반박 쿠데타 세력은 좀 더 이성적일 필요가 있다. 내세우는 수도 지키기는 결코 당을 깨는 명분이 될 수 없다. 진정 지켜야 할 것은 있지도 않은 ‘수도 지키기’가 아니고 자신들의 양심을 지켜야 할 것이며, 소수의 배타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도당적 마음이 아닌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불법적 반민주적 행위보다는 이성과 품위와 민주적 양식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을 분당 위기 속으로 몰고 가는 반박 쿠데타는 상당한 세를 얻어가며 박 대표를 뒤흔들고 위협하겠지만 명분의 부족으로 결국 똥박, 피박, 이명박의 순서를 밟아갈 개연성이 높다. 이 사태가 원만히 수습되면 장기적으로는 박근혜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정체제가 더 강화될 확률이 오히려 높다. 이 기회에 보수를 개혁하는 절차를 밟는다면 여야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정치를 보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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