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회에게 어른들은 무엇을 했나?

2005 시대유감(時代遺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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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우(ltw96)등록 2005.03.11 11:09
일진회라는 학생들의 폭력 서클에 대해 이야기가 많다. 상습적인 구타는 기본이고 한번에 몇 십만원씩의 금품 갈취. 심지어 공개 성행위 등 우리를 충격 받게 하는 수많은 사건들…. 이것은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닌 한 중학교 교사가 폭로한 일진회 '서울지역연합'의 실태라고 한다.

나 역시도 으슥한 밤거리에 어느 후미진 골목에서 쫙 달라 붙은 교복을 입고 담배를 물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다가가고 싶지 않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인식이다. 이미 사회는 이런 청소년들을 '혐오 동물' 이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 면을 바라본다. 동대문 깊은 밤거리, 동네 놀이터에 가보면 삼삼오오 모여 있는 남녀 청소년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한 시사프로그램에서 이 아이들을 인터뷰한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다. 당시 열일곱, 나와 동갑인 아이가 낙태를 세번 하고, 지금도 임신 중이라고, 그리고 임신중에도 원조교제를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 그 아이들은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 아이는 부모와 다투고 집을 나가서 쓸 수 있었던 것이 몸밖에 없었다. 이제 다음 낙태를 하면 더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아이. 지금 당장에 가출 청소년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보면, 그런 아이들보다 못하지 않은 사연을 지니고 사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아이들의 공통점은 무얼까? '어른이 되어 버렸다'는 말이 가장 확실할 것이다. 그렇다. 이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다. 생존을 익히고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강자로서 맛보는 이상한 행복을 누리면서, 혹은 약자로서 눈물을 머금고 살아가면서 이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어른'이라는 낱말을 곱씹어 본다.

우리 사회에서 어른은 이런 모습이었나. 단지 생존 본능에만 충실한, 마치 무법천지의 정글 속 야수 같은 모습 이상의 품위를 지니지 못하는 어른이라는 존재. 우리는 저런 아이들에게 "억척스럽게 살아왔구나"를 "어른스럽게 살아왔구나"라고 말하면서, 어른이라는 존재에 대해 우리 자신들도 이런 사실을 인정하면서 슬퍼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회는 이러한 현상을 방조하고 있다. 아니, 어른들은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것(?)'을 방조하고 있었다.

후미진 골목에서 한 아이의 코뼈가 으스러지고 머리에 피가 고이도록 맞을 때 어른들은 과연 뭘 하고 있었을까? 안 봐도 뻔하다. 흉물스럽다고, 혐오 동물이라고 그 자리를 피하기에 급급했을 뿐이다. 누구 하나 말을 걸어, 진정으로 '참 어른 됨'을 발휘해서 그곳을 막았더라면, 그리고 그 아이들 곁에서 계속 관심을 가지면서, 적어도 말 한마디 걸어 주었다면 이런 사건들이 이렇게 표면화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른과 '아이들'과의 단절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은 어른의 검은 면을 열심히 닮아가고 있다. 역시 나쁜 것은 '재미있는 것'인가? 이 아이들이 이토록 썩어간 이면에는 '어른들'의 썩은 모습이 있을 뿐이다.

나는 '아이들로서' 내면의 고결함과 순결함을 한번도 배워 본 적이 없다. 학교에서는 '정직하라'는 외침보다 더 중요한 교과서에 치여 살았고, 조금 정직하지 않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양 포장된 세상에서 살아 왔다. 이 사회는 한때 선인과 의인에 눈물 흘릴 줄은 알지만 '몇 백억', '몇 천억'이라는 반칙으로 일궈낸 부의 목소리가 더 큰 사회이다. 그리고 그 큰 목소리 속에는 '어른들의 일진회'라는 철옹성이 버티고 서 있을 뿐이다.

반칙과 약육강식으로 도배된 세계, "없으면 몸이라도 팔아라"는 외침에 손가락질 하는 어른 하나 없는 슬프고 우울한 사회. 진정으로 "정직하라" "정의로워라"라는 말을 깊이 새기기 전에 배운 수억개의 박제된 지식 속의 아이들, 인간의 내면에 대해서 제대로 배울 기회와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아이들이다.

이런 사회 속에서 '일진회'와 '몸파는 아이들'은 너무나 당연한 자화상일 뿐이다.

어느 글에서 청소년들이 순수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른들의 순수한 착각'이라고 했다. 이 말은 청소년들이 영악하다는 뜻이 아니다. '순수함'이라는 것을 어디서 봤어야지 흉내라도 낼 것 아니냐는 항변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이 항변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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