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사랑의 봄맞이 ‘여자 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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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병일(jinmun)등록 2005.03.11 14:14
'영화, 정혜'는 십대초반 친척에게 성폭력을 당한 아픔을 지닌 여자의 내면세계를 현미경으로 그려낸 영화다.

이 영화는 정혜 그녀에게 찾아온 기적 같은 사랑과 치유의 과정을 100% 핸드헬드 카메라(눈 앞 1미터 거리 촬영)로 도시의 낡은 아파트와 우체국의 성(城) 속에 문을 닫고 사는 여자의 일상과 내면세계를 보여 준다.

'여자, 정혜'는 무수히 많은 상처를 혼자서 안고 살아가는 여성의 아픔, 감성을 깊이 천착한 수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혜(김지수 분) 자신에게 회색빛 관심을 보였을 때, 여자의 심층 깊숙이에서는 한 겨울 속에서 봄이 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바로 문예지 응모 봉투를 가져온 남자(황정민 분)가 김지수에게 눈썹이 묻어 있다고 말 하는 장면이다.

또 다른 장면에서 김지수는 우체국 밖으로 나가 황정민에게 과감하게 자신의 내밀한 공간으로 저녁식사 초대를 한다. 고양이를 보여주고 싶다면서 말이다. 다시 두 사람의 관계는 식사초대에 못 간 황정민으로 인해 뒤틀린다.

이 영화를 세밀히 본 관객은 이 남녀의 저녁식사가 환대의 성찬이 되지 않을 걸 알 수 있다. 황정민이 며칠 밤을 꼬박 원고를 쓰느라 잠을 설쳤지만 초대에 응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김지수는 자신에게 회색빛으로 찾아오던 사랑이 발걸음이 멈추었음을 느끼며 자학에 빠지고, 친척에게 복수를 시도하다 그냥 되돌아온다.

우체국 주변에서 김지수를 만나 황정민이 사과를 하며 “정혜 씨” 하고 부른다. 이미 김지수는 이 순박한 남자의 사랑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밤에 집 밖으로 나가 동네시장을 싸다니던 때 단절하고 살던 세상과 화해를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장치인 도시의 소음에서 숲 속의 아름다운 소리가 들리던 때 도시 속에 함몰된 내 자신도 울고 있음을 깨달았다.

폭력적 영화에 길들여온 관객이라면 이 영화에서 내면의 슬픔을 간직한 정혜의 아픔을 공감하기 힘들 것이다.

낡은 아파트 단지의 작은 아파트와 우체국을 오가는 한 젊은 여자의 내면세계와 일상사를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한 젊은 여자가 낡은 아파트 정원에서 식물을 가꾸며 집안 청소를 하며 우체국을 오간다. 소파에서 커진 텔레비전의 홈쇼핑을 광고를 통해 물건을 구매한다. 초인종이 울리면 아파트 대문의 구멍을 통해 누구인지 살펴본다. 문을 열어 줄 때도 조금만 열어준다.

여자는 혼자서 일회용 라면, 김밥, 총각김치를 먹는다. 아파트 거실바닥에서 머리카락을 끌어 모은다. 홈쇼핑 방송을 보다 허공을 응시한다.

여자가 아파트 밖으로 나서면 자근 정원에서 들려오는 고양이 우는 소리, 우체국으로 갈 때면 들리는 버스 달리는 소음.

우체국 안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세 여자 직원들의 우체국에 온 손님들의 분주한 모습. 우체국 안으로 문예지 등단 응모자가 등장한다. 두툼한 봉투를 등기로 부치면 얼마인지 묻다 빠른 등기로 부친다.

우체국 직원인 여자 셋이 작은 맥주 파는 가게에서 맥주와 치킨을 먹는다. 자질구래한 일상사로 애기하고 다시 헤어진다. 고양이를 키우기 위해 고양이 집을 사온다. 아파트 패밀리 마트에서 참치를 사 온다.

우체국으로 여자에게 걸려온 고모의 전화, 여자는 과거를 회상하며 납골당에 간다. 꽃으로 장식된 사각의 영정 사진 속에서 어머니의 영정을 어루만진다.

햇살이 비치는 아파트 공터의 휴식의자에 여자는 앉아 있다. 자신만의 공간인 아파트 의 한 집(호)으로 들어간다. 소파에 멍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데 고양이가 발바닥을 핥아 준다. 어머니가 발톱을 깎아주던 때를 회상한다.

한번 결혼했던 남자가 여자가 근무하는 우체국 근처로 찾아온다. 패스트푸드를 파는 상점에서 한 여자가 어린 아이를 안고 있다. 예전에 한 번 결혼한 남자가 왜 떠났는지 묻는다. 최소한의 변명이나 사과를 요구한다. 그때 신혼 여행지에서 첫날밤에 처음 남자와 성관계를 했던 때의 느낌을 묻는다. 여자는 그냥 아팠다고 한다. 이 남자의 곁을 떠난다.

다시 스크린은 과거 열서너 살 때 친척에게 당한 성폭력 당한 자연을 보여 준다. 그리고 한 달 후에 결혼한다면서 왠지 알려주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헤어지는 데 낡은 구두를 신은 것을 지적한다. 소파에 누워 있다 알람소리에 깬다.

우체국 안의 번잡함에도 인터넷으로 구두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는데 여자 동료들이 구두는 직접 신어보고 사야 한다고 지적한다. 황정민이 우체국에 소포를 부치기 위해 찾아온다. 등기소포를 부치던 남자가 여자(김지수 분)의 얼굴에 눈썹이 묻었다고 한다. 문예지 응모작 봉투를 부치러 왔었던 남자가 우체국을 나간다.

여자는 우체국을 나와 걸어가는 데 교회 현수막을 걸어놓고 10여명이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택시잡기의 번잡함을 거쳐 구두를 파는 대리점 간다. 남자판매사원이 정혜에서 몸을 가슴 가까이에서 부비며 구두 신겨준다. 남자 사원에 인간적으로 신발을 팔았으면 한다고 지적하고 대리점을 나온다. 집 근처로 돌아온 여자와 남자(황정민 분)와 패밀리 마트에서 먹을거리를 사는 장면들이 보인다.

세 우체국 직원이 맥주 집에서 한 여자직원이 담배를 피워본다. 정혜는 담배 냄새가 좋다면 자신도 앞으로 피워보겠다고 한다.

우체국에서 소포를 부치고 나가는 남자에게 우체국 밖으로 달려 나가 저녁식사에 초대한다. 고양이도 보여주고 싶다며…. 처음엔 머뭇거리던 황정민이 원고를 쓰느라고 며칠 밤을 지셨지만 응하겠다고 한다.

큰 마트에 가서 음식을 만들 반찬거리를 사온다. 온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었지만 밤늦게 까지 남자는 오지 않는다. 정혜는 포장해 놓은 비닐을 걷어내고 혼자 음식을 먹는다. 혼자서 음식을 먹는 모습의 쓸쓸함이 묻어있다.

혼자 맥주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맥주를 마신다. 젊은 남녀들이 술을 마시다 청년 두 사람이 싸운다. 그 중 한 사람이 정혜에게 술을 좀 줄 수없느냐고 한다. 그녀는 술을 사준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남자가 길가에 앉아 있다. 그녀는 여관에 데려가 그 남자가 들려주는 과거 이야기를 듣는데, 칼을 꺼내어 손목을 배는 시늉을 하다 잠든 남자를 남겨두고 칼을 핸드백에 넣어 가져온다.

정혜는 새벽에 길을 나선다. 골목길을 빗질소리, 걸음소리, 새소리, 까치소리, 풀벌레우는 소리, 테니스를 치러가는 두 남자. 정혜는 성폭력을 가한 천척이 사는 아파트로 가서 복수를 시도하려고 한다. 그녀는 집으로 달려온다. 고양이를 찾는다.

남자와 우체국 주변에서 만난다. 저녁식사 초대에 못 가서 미안하다며 “정혜 씨”하고 부른다. 사랑의 희망이 다가오자, 닫힌 문을 연 것이고 단절한 세계에 의사소통을 시작한다. 도시의 번잡한 소음에서 숲 속의 풀벌레 새들의 노랫소리처럼 이 여자의 내면도 아름다움으로 변해 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사회구조는 여자들에게 폭력을 가해도 일상사처럼 넘기는 경향의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첫째, 어린 시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성폭력을 당한 여자들에게 부모들은 상처를 치유해 주지 않고 숨기며 부끄러워한다.

둘째, 어린 시절 실수로 임신을 하는 여자는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고 인생의 낙오자로 살아가게 한다.

셋째, 지금 호주제를 둘러싼 유림과 여성계의 갈등을 보라. 유교적 가치관도 좋지만 어머니의 성을 왜 사용하지 못한단 말인가.

이런 사회적 억압에 영화 '여자 정혜'는 말없는 경종을 울린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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