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릴까 ?

할머니 한 분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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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희(oddo)등록 2005.03.18 11:25
귀가 좀 어두우셔서 보청기를 하고 있어도 대화를 하려면 할머니 얼굴을 보면서 큰 소리로 또박또박 한 마디씩 해야 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여든 중반을 넘기신 분이신데 성격이 참 밝아 늘 환하게 웃으시고 경로당에서도 인기가 많은 할머니였다.

함께 사시는 할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하셨는데 지난 몇 년 동안은 자전거를 타고 진료소에 오시더니 최근에는 그 마저도 힘드신지 자주 올라오지 못하신다.

할머니는 그동안 심장이 좋지 않으시고 천식이 있어 조금만 움직여도 힘들어 하시긴 했지만 큰 병을 앓지는 않으셨다. 그런데 얼마 전에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렸다.

오전에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에게서 소식을 듣고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떠나실 수 있을까 싶어 ‘인생 참 덧없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오후에 그 마을 이장님이 올라왔다. 지금 삼십대 중반으로 우리 관할 구역 중에서 가장 젊은 이장님이다. 노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시골에서 흔치않은 젊은 사람이다.

유족들이 할머니를 화장하기를 원하는데 사망진단서를 떼어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러 들렸단다. 진료소에 오기 전에 시내에 있는 병원에 전화를 해 봤더니 병원에서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고 했단다.

이렇게 병원에서 사망하지 않고 집이나 다른 곳에서 사망하는 경우 보통 사망진단서는 보건기관의 공중보건의사들이 발급해준다. 나 역시 보건지소장님에게 전화를 해서 사정을 설명하고 상가 집에 들려주면 좋겠다고 부탁을 드렸다.

젊은 사람들의 과로사도 마찬가지지만, 노인들이 저녁에 주무시다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간혹 듣게 된다. 젊은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 많은 사람들이 훨씬 더 안타까워하고 애달파하지만 노인들의 경우 ‘호상이다’하는 소리를 먼저 하는 경우가 많다.

살만큼 오래 살았고, 죽을 때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고 자기 자신도 오랫동안 앓지 않았으니 ‘죽는 복’을 타고 났다며 같은 또래의 노인들은 그런 죽음을 부러워하신다. 노인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대부분의 노인들은 죽을 때 못된 병에 걸려 오랫동안 자식들 고생시키고 자신도 고생할까봐 그게 가장 큰 걱정이라고 하신다.

태어나는 것도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지만 죽음도 역시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닌 게 분명하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마음대로 선택한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 것 역시 치료 받았어야 할 우울증이 원인이라거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등 떠밀려 벼랑 끝으로 몰려 세상을 떠나는 것이니 본인이 선택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 관할 구역의 65세 이상 노인은 전체 인구의 29 %를 차지한다. 고령화 사회는 오래 전에 지났고, 이제는 고령사회를 지나 초고령화 사회인 셈이다. 누군가 태어났다는 소식은 일 년에 한 두건 접하기 어렵지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너무도 자주 들린다.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농촌이 지금보다 조금이나마 더 살기 좋아져서 젊은 사람들이 농촌으로 돌아오고, 어린아이들 웃음소리가 가끔이나마 들리는 날이 오기는 올까 ? 참 어둡고 암담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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