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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색을 구별하는 능력 면에서 과연 차이가 없을까? 예를 들어, 빨간색에 대하여 빨갛다고 느끼는 그 색에 대한 감각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엄격하게 대답한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망막에 존재하는 여러 색감을 느끼는 원추세포의 분포가 완전히 일치한다면 모를까 몇 개라도 차이가 있다면 엄밀한 과학적 잣대로 볼 때 ‘절대 색감’이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초중고 시절 신체검사를 받을 때 종종 주변에서 색맹이나, 색약이라 판정받은 친구들을 본 것이 있을 것이다. 색각이상은 바로 그 색맹이나 색약을 말한다. 색각이상을 의학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망막 원추세포들의 분포가 ‘평균적인 분포’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 중에서도 아주 일부 경우는 특정한 색감을 느끼는 원추세포들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긴 하나 이들이 색각이상자의 주류는 아니다.
색각이상은 성염색체에서 열성유전인 일종의 유전적 다형성 중의 하나이다. 현재 우리 나라 색각이상자는, 남성은 전체의 5% 정도, 여성은 전체의 0.45%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인구수로 환산해 보면 남성은 121만 명, 여성은 10만 명 정도다. 또한 첫 직장을 구하는 대표적인 연령대(20~29세)로 한정하여 보았을 때도 남성은 20만 명, 여자가 1만7000명 정도나 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런데 이 색각이상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은 소리 소문없이 널리 퍼져 있다. ‘능력’을 인정받아도 취업하기 어려운 요즘, 색각이상을 가진 젊은이들은 ‘능력’이 있더라도 타고난 ‘장애 아닌 장애’로 인하여 취업할 기회마저 얻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색각이상으로 인한 사회적 차별은 크게 취업과 진학, 두 경우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를 유형화하여 나누어 보면, 국가공무원(경찰, 소방, 농수산직, 교정직, 군인 등)·운수업종(항공, 해운, 철도)·일반기업체(전기, 통신, 기술, 건설, 방송 등 일부 직종)의 고용기회 제한, 진학(공업고등학교, 농업고등학교, 대학교의 일부) 제한 등으로 나눠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경우는 경찰직과 소방직 같은 대표적인 국가기관의 색각이상자 차별이다. 이 기관들은 현재 ‘색맹(색약을 포함한다)이 아니어야 한다’는, 색각이상을 제한할 수 있는 가장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색각이상 관련 제한이 대부분 철폐되었다.
그동안 어느 정도 제한이 존속했던 일본마저도 최근에는 색각이상에 대한 제한을 상당수준 철폐하고 있는 마당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 경찰직은 1999년부터 소방직은 2005년부터 ‘상기한 가장 엄격한 기준’으로 오히려 거꾸로 확대하여 적용하기 시작하였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참고로, 2003년 말 현재 우리 나라 공무원 총 수는 대략 90만 명으로, 30만 명의 교원을 제외한 60만 명 중에서 경찰직이 9만7000명, 소방직이 2만6000명으로 이 두 직종이 전체 공무원의 20%에 해당한다.
이번에 국가인권위의 의뢰를 받아 조사해 본 결과, 이렇듯 시대에 역행하는 기준이 존속 혹은 확대 적용된 가장 큰 이유는, 임용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의 편협한 사고 때문이었다. ‘기왕이면 멀쩡한 사람도 많은데, 색을 보는데 문제가 있어서 혹시나 만에 하나라도 사고를 낼 수 있는 사람을 왜 뽑나’라는 식의 비과학적인 ‘우려’가 가장 주효했던 것이다.
오히려 색각이상자에 의한 업무수행상 사고 등의 누적된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색각이상을 배제한 사례는 한 건도 확인할 수 없었다. 이처럼 국가기관으로서 응당 갖추고 있어야 할 전문적 검토 및 자문이 부족했던 것은 이에 대한 ‘전문가 구조’가 전무하였다는 사실이 그 이유들로 확인되었다.
대부분의 색각이상자들이 ‘색각이상이라서 생활하는데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다’고 강력하게 항변하는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일부 제한된 색감에 있어서만 다른 이들과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무슨 사물을 ‘흑백 사진’처럼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이 보는 ‘색’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는 것과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그 조차도 그들이 세상과 사물을 인식하는 그들의 ‘진실’이기도 하므로 그 누구도 그것이 틀렸다고 얘기할 수 없다.
다만, 그 ‘색감’의 차이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거나 자신에게 ‘위험’이 닥칠 수 있다면, 그렇지 않도록 ‘환경을 변화’시켜 주거나 아니면 그런 구체적인 상황에서 ‘제외’될 수 있도록 배려해주면 되는 것이다. 다음은 색각이상에 대한 조사연구 중 색각이상이 있는 자녀를 둔 어머니가 보내온 편지의 한 토막이다.
“저에게 유전적인 소인을 만드신 아버지… 그분은 아무것도 모르시고 저에게 큰소리를 치시는데, 저는 눈물만 머금고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합니다. 아이의 색각이상에 대하여 시댁 식구들이 알까봐 전전긍긍하며, 게다가 혹시 딸까지 보인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평생을 가슴 졸이며 살고 있습니다….”
색각이상, 이제는 이 문제에 대하여 우리 사회가 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배려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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