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남의원의 위험한 정치공학을 경계한다

열린우리당 김태랑 고문의 기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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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우(woo9505)등록 2005.03.31 19:43
신기남의원의 위험한 정치공학을 경계한다

열린우리당 고문 김 태 랑

당의장 선거를 사흘 앞두고 신기남의원이 호주 여행길에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짝짓기 격문”이 당의 발전과 새로운 국가 건설을 목표로 힘써 온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또 슬프게 하고 있다. 신의원은 이 글에서 당의장 출마 후보 중 유시민, 장영달, 김두관 등 이른바 ‘개혁파’ 후보 세 사람과 여성후보 한명숙후보를 거명하여 대의원들에게 적극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는데, 예비선거에서 당원의 심판을 받아 탈락하고 자중해야할 신의원의 처지나, 자칫 분열이 심화될지도 모르는 당의 상황이나, 개혁정치의 이념을 앞세워 온 신의원 개인의 입지에서나 어느 모로 보아도 적절치 못한 발언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 때는 당의장으로서 당을 대표했던 인물, 그리고 사회 개혁에 앞서 정치개혁을 최우선의 과제라고 역설하고 스스로 개혁 이념의 전도사로 자처했던 그의 말이 아니라, 평범한 당원이나 네티즌이 인터넷에 올린 댓글이었다면 그런대로 지나칠 수도 있는 얘기였다.
그러나 신의원은 다르다. 그는 한동안 우리당의 대표적인 얼굴인 당의장이었다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그의 말과 행동은 곧바로 우리당 전체의 이미지에 겹쳐져 국민들에게 각인되기 때문이다.
신의원의 이번 글은 개인적 명리를 위해 당의 분열을 부추김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신의원의 그릇에 실망하고 언행의 가벼움에 분노했다.

나는 최근 우리당 홈페이지를 통하여 이번 선거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민주주의의 축제로 이끌어 그 동력을 폭발시킴으로써 다음 대선에서의 승리를 쟁취하자는 내용의 글을 올린 바 있었다. 그러나 선거가 막바지로 가면서 우리의 기대와는 사뭇 어긋나게 돌아가는 일부의 행태로 인해 이번 선거 자체가 왜곡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크므로 지난번 글에 이어 다시 한번 당의 발전과 통합을 위한 충정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말을 아끼려 한다. 우리당의 당원 동지들 대부분은 신의원이 당의장직에서 물러나게 된 사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불과 한 세기 안에 우리는 식민 지배와 민족 분단, 전쟁, 그리고 시민혁명과 군사쿠데타를 차례로 겪을 정도로 격동의 세월을 살았다. 그러므로 선대까지 가계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느 누구도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신의원은 말을 잘하는 정치인이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정치인의 중요한 자질 중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치인의 말이 개그맨의 그것과 다른 것은 그 말 속에 도덕적 품격과 이념적 뒷받침,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온몸을 던지는 행위가 따르기 때문이다.

신의원은 지난 해 당의장직을 사퇴하면서 비록 자신의 책임을 넘어선 선대의 일이지만 모든 책임을 지고 가겠다는 겸허한 자세를 보여주었다. 우리는 지나간 역사의 통증에 모두들 함께 아파하면서 그의 분명한 진퇴에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그 아픔을 감내하고 삭일만한 시간을 보낸 뒤에 국민의 용서와 아량으로 유능하고 참신한 정치 지도자로 다시 생환하기를 기대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 과정을 기다리지 못했고, 권력의 소외에서 오는 금단증세를 인내하지 못했다. 당의장 사퇴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그는 당의장 선거에 도전했다. 그의 출마의 변은 “현재 여당이 정체성과 분열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었다. 정체성을 확립하고 분열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당의장이 되어야겠다는 말이었다. 그로부터 겨우 한 달 보름이 지난 지금 그는 분열의 파열음을 내는 당에 불길을 당기며 일어서고 있다.
지금에 이르러 돌아보니 당의장 사퇴의 말이나 이번 당의장 출마의 변이 모두 그저 치밀하게 계산된 소리일 뿐, 아무런 질량을 싣지 못한 빈 깡통 같은 말이었음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겠다”고 선거전에 돌입했던 그는 예비선거에 탈락했다. 신의원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당의장을 지낸 인물의 예비선거 탈락은 분명 이변이었고 수모였겠으나 당의 전체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조급하고 명분 없는 ‘권력에의 의지’에 대한 당원 동지들의 경고였고 질타였다.
그러나 신의원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비선거의 객관성이 의심스럽다”는 말로 선거 결과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고, “조직적 낙선운동에 치밀하게 당했다”는 말로 의혹을 생산하고 책임을 떠넘겼다. 마치 대통령후보 경선의 결과에 불복하고 정당을 바꾸어 출마하기를 즐겨했던 어떤 인물을 연상케하는 낡은 그림이었다.

여기서 그쳤다면 그래도 참을만했을 것이다. 선거 막바지에 배낭을 꾸려 호주로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머리와 가슴을 식히려는구나” “어떤 형태로든 선거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성숙한 태도”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는 호주에 가서도 머리와 가슴을 식히는 대신 국내의 권력구도에 오로지 눈과 귀를 열어놓고 있었고, 판도가 개혁파 대 실용파의 분할구도로 짜여지는가 싶자 재빠르게 한쪽편에 서서 손을 높이 치켜들고 나섰다.

신의원의 노골적 짝짓기로 인하여 당내 분열음은 이념의 대결이라는 가면을 벗고 패거리 쟁패의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지금까지는 분란이 있는 것처럼 시끄럽다가도 선거가 끝나면 깨끗하게 승복하고 포용하면 그만인 수준의 분열이었으나 신의원이 개입하여 패거리를 만들다 보니 선거 후에도 아물기 어려운 심연이 생기고 말았다. 여기서 “당의 분열을 막기 위해” 의장직에 도전한다던 출마의 변을 다시 씹어볼 가치가 있겠는가.
신기남의원의 최근 언행을 살펴보면 무엇에 쫓기는 듯한 조급증을 느끼게 된다. 명리와 권력을 위해서는 명분과 품격은 진흙 속에 처박아도 그만이라는 듯한 행태다. 당의 통합과 발전은 안중에도 없고 어느 편에 서야만 권력에 더 가까울까 하는 정치공학만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지금 우리당의 당의장 선거는 막바지에 이르러 우려할만한 징후들이 속속 불거지고 있다. 선거를 통해 이념과 정책이 대립하고, 대립이 융화되면서 발전에 가속도가 붙는 그런 바람직한 분열과 대결이 아니라 ‘더불어 한 지붕 아래 살 수 없는’ 정도로 서로의 간격을 넓혀가는 불미스런 일이 일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누가 보아도 자멸의 길이다. 개혁의 속도와 깊이를 더해야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면 그 신념을 민주적 방식으로 확산시키면 된다. 그것이 정당정치의 묘미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정당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당 내부에 섞여 있는 것 같다.

현재로서 신의원의 지지 호소가 선거 판도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일부 언론은 그 의미를 과장하고 있으나 당내에서는 이미 예비선거를 통하여 평가를 끝낸 신의원의 호소가 당원 동지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다만 가장 우려할 일은 선거를 치르고도 승복하지 못하는 집단이 나오고, 한 지붕 아래서 살기 어려울 정도로 적대적 문화가 형성되는 사태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열린우리당은 조만간 세상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할 것이다. 이는 불을 보듯 명확한 일이고, 그 책임은 현재 당의 분열을 부채질하는 사람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치는 예술이 아니고 도덕은 더구나 아니다. 그러나 정치 특유의 미학과 모럴이 존재한다. 지도자로 성장하려면 이것이 있어야 한다. 번드레한 말과 자잘하게 굴리는 머리만 가지고는 수명이 길지 못하다.
좀 더 멀리 보고 살자. 호흡을 유장하게 하고, 특히 나 자신의 명리에 앞서 당을 먼저 생각하고, 당에 앞서 국가를 생각하는 양식을 갖자.
우리는 이 땅의 선거문화를 바꾼 주역들이다. 그 자부심과 긍지를 잃으면 속말로 우리는 시체다. 지금은 권력에 심취하거나 금단증세에 시달릴 때가 아니다. 신의원이 출사표에서 밝혔듯이 당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 정체성 위에서 통합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자생력이 있는 정당이라면 이럴 때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높은 곳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대의원들이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이럴 때 신의원 같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 배낭 메고 바다 건너 먼 나라로 건너가서는 이쪽으로 향하여 돌이나 던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맨발로 돌아와 백의종군의 자세로 선거를 축제로 만들고 선거 후 당의 결속을 강화하도록 미력이나마 보태는 것이 전임 당의장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임무다. 그리하여 그가 훌륭한 당의 지도자로 거듭나는 모습을 진정으로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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