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 호소하는 것도 죄인가?"

조작간첩 피해자 강희철씨 보안관찰 연장 사유 '억울함 호소?'

검토 완료

이재홍(chjhlee)등록 2005.04.02 20:07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13년의 징역을 살았던 대표적인 조작간첩 희생자 강희철(48·북제주군 신촌리)씨에 법무부가 보안관찰처분을 갱신한 가운데 연장 사유가 강씨가 언론의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또 다른 인권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법무부는 제주지검이 지난 2월 1일 강씨에 대해 신청한 보안관찰처분 갱신청구를 받아들여 올 3월로 해제 예정이었던 보안관찰 기간을 최근 2년 더 연장했다.

강희철씨는 1975년 부친이 있는 일본 오사카로 밀항한 후 1981년 현지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송환돼 부산 보안수사대에서 무혐의로 풀려났으나, 1986년 4월 제주도경에 연행돼 105일간의 불법 고문조사 끝에 도내 관공서와 주요기관, 학교 등의 위치를 북한에 알렸다는 혐의로 제주지법에서 무기징역확정을 받았으며, 13년 후인 1998년 8월 15일 광복절 특사로 사면된 후 지금까지 보안관찰처분을 받아왔다.

감옥에서 풀려나온 후 국가보안법이나 마찬가지인 보안관찰법에 묶여 7년 동안 감시를 받았던 강씨는 3월말에는 보안관찰의 철망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관계 기관원들의 귀띔에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친구가 운영하는 이삿짐센터에서 운전기사로 일하면서 독자적인 회사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던 강씨는 그러나 3월 21일 보안관찰이 연장됐다는 법무부의 결정문을 받아들고는 허탈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강씨를 더욱 분노케 한 이유는 검찰이 밝힌 연장사유였다.

검찰은 강씨가 ▲2004년 10월 21일 한나라당 제주도당사 앞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1인 시위 ▲10월 22일 '민족화해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기도회' 참석 ▲11월 11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시낭송의 밤' 행사에 참석해 국가보안법 피해자임을 주장했다는 게 그 사유였다.

특히 여기에는 지난 1월 KBS 스페셜이 조작간첩사건을 통해 제주 4·3의 현재를 조명하는 '뮤직 다큐멘터리, 김윤아의 제주도'(4월 30일 오후 8시 방영 예정)에 출연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 게 보안관찰처분 기간 갱신의 이유로 확인됐기 때문이었다.

검찰이 이에 대해 '강씨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침 없이 국가보안법 피해자로 증언하고 있고, 각 종 언론매체 취재시에 적극 협조·활동하고 있어 아직 나이기 젊어 활동능력이 왕성해 보안관찰처분 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 있다'며 연장사유를 밝혔다.

강씨는 이에 대해 "이 나라는 법이 필요 없는 나라다. 그 사람들(검찰)이 곧 법이다"라면서 "(1986년) 들어갈 때나 (1998년) 나올 때나, 또 지금이나 달라진 게 하나 없다. 나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게 무슨 법에 위반이 된다는 말이냐"며 어이없어 했다.

강씨는 "아내가 만삭인 상태에서 영장도 없이 경찰에 붙들려가 공안분실에서 105일 동안 불법 감금 속에 숱한 고문으로 나를 간첩으로 만들었던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이 알려지는 게 결국 두려운 게 아니냐"면서 "억울한 사연을 억울하다고 밝히는 게 죄가 된다면 우리나라 국민 중 보안관찰 대상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분개해 했다.

강씨는 "그들은 앞으로도 계속 그들의 잣대로 모든 것을 판단할 것"이라며 "그러나 그들의 잣대와 상관없이 내가 어떻게 간첩으로 조작됐는지, 왜 국가보안법이 폐지돼야 하는지를 계속 증언할 것"이라고 말했다.

KBS스페셜 제작을 담당한 전우성 PD도 "너무나 놀라울 뿐"이라며 검찰의 처사에 당혹해 했다.

전 PD는 "세상에 이런 인권침해가 어디 있느냐"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은 당연한데도 그것을 말하는 자체가 보안관찰법상의 법규를 어겼다며 보안관찰을 연장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지적했다.

강희철씨는 천주교인권위는 물론 국제사면위원회 등 국내외 인권단체로부터 '군사정권에 의한 조작 간첩사건'의 대표적 피해자로 분류돼 왔다.

특히 1987년 강씨에게 간첩혐의를 적용해 무기형을 확정했던 당시 대법원 판사 역시 후의 회고록에서 강씨에 대해 "강희철씨 사건은 조작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할 정도였다.

당시 대법원 주심을 맡았던 박우동 변호사는 1995년 발간한 자서전적 회고 에세이 <판사실에서 법정까지>에서 "(대법원)주심이었던 나로서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건 하나가 있다"며 후회스런 심정을 털어 놨다.

박 변호사는 "강씨가 일본에서 평양으로 밀항, 노동당에 입당한 후 국내에 드나들며 기밀탐지 등 간첩행위를 했다는 것인데 물증이라는 것이 평양으로부터 선물로 받았다는 일제만년필 1개와 겨울 스웨터 1벌이었다"고 지적한 후 "자백에도 상식에 어긋나는 부분이 많았다. 북한에 가서 머문 동안의 행적에 관해 하루 세끼 밥반찬 종류는 물론, 노동당 당원수첩 번호까지 한 구절 오차 없는 진술을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원까지 되풀이한 것이었다"며 조각 가능성을 내비쳤다.

박 변호사는 또 "나는 합의 자리에서 사건을 파기하여 좀더 심리해 보자고 했으나 한 분 대법원 판사의 강한 반대의견으로 상고기각판결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재판해야 옳겠다고 생각한 것은 공소사실 자체에서 내다보이는 조작성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또 "간첩활동이라는 것도 판에 박은 시나리오를 벗어나지 못했다. 항소심 재판부에 부아가 치밀었다. 사형 다음의 중형을 선고한 판결에 그렇게 아무 감정도 고뇌의 흔적도 느낄 수 없는 것은 처음 보았다. 재판장이란 사람이 원망스러웠다. 두고두고 꺼림칙해 잘 잊혀지지 않는다"라고 말할 정도로 조작가능성이 농후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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