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사건 '무혐의·무혐의·무혐의' 행진

검찰의 공안환경 과연 달라졌나... 검찰의 '이율배반적 행위'란 지적도

검토 완료

유창재(karma50)등록 2005.04.10 16:55
"<태백산맥> 소설의 전체 내용과 그 저술 동기, 예술작품이라는 특수성, 당시 정황 등을 종합해 볼 때, 대한민국의 존립 안전과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을 담은 이적표현물이라고 보기 어렵다."

"최장집 교수의 저서 <한국 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은 정치학 교수로서 한국현대사의 연구결과를 개진하면서 기존의 학설이나 주장과 다른 견해를 제시한 것이다. 저술의 전체적인 구성과 내용, 집필 당시의 제반상황 등에 비춰볼 때 이같은 행위는 학문연구의 일환으로 판단되고 이적 인식을 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송두율 교수 기획입국 고발사건에 대해 지난 2001년 법원에서 '송 교수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자료가 없다'고 한 선고결과와 송 교수가 해외에서 국내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온 인물이라는 학계의 주장 등을 감안해 '혐의 없음'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최근 대표적인 국보법 위반 고발사건에 대해 '무혐의(혐의없음)' 결정을 줄줄이 내리면서 김수민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가 한 말이다. 검찰이 변한 것일까. 서슬 퍼런 국보법 잣대를 들이대던 모습과 사뭇 대조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이적성' 논란의 중심에 섰던 대표적인 저술과 문학작품에 대해 검찰이 고발된 지 각각 11년, 7년만에 무혐의 결정을 내린 것은 검찰의 공안환경이 국보법 적용을 놓고 예전과 달라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검찰의 이번 결정은 변화된 사회 환경에 비추어 볼 때 뒤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상징적인 측면 등에서 학술 및 문화계 전반에 걸쳐 큰 발전을 가져오는 '청신호'로 평가된다.

그러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소속의 송호창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검찰이 애매모호한 입장에서 국보법 사건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발표한 것"이라며 "(검찰이) 상황이 변해서 사건들에 대해 국보법 적용을 달리한 것이 아니고 <태백산맥>의 경우는 실질적으로 처벌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혐의없음'의 결론을 내렸다고 본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이어 송 변호사는 "사실 검찰에게 있어서는 <태백산맥> 사건은 당연히 기소할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책이 600만부 이상이 팔려 나간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며 "애초 '기소유예'키로 이야기가 됐었으나 그럴 경우 책의 이적성을 인정하고 책을 산 사람도 '이적표현물 소지죄'로 처벌한 대상이 되기에 불가피하게 떠밀리다시피 '무혐의' 종결한 상황이 된 것일 뿐"이라고 판단했다.

"실질적인 처벌할 수 없어 '혐의없음' 결론... 검찰의 이율배반적 행동"

쉽게 말해서 검찰이 조정래씨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 대해 '이적표현물'이라고 판단하고 국보법 위반으로 기소한다고 했을 때, 만약 김종빈 신임 검찰총장이 이 소설을 소지하고 있다면 김 총장도 '이적표현물 소지죄'로 기소돼 재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보면 된다.

덧붙여 송 변호사는 "결국 검찰이 갖고 있는 '국보법'에 대한 판단은 변화된 시대상황에 맞는 '전향적' 판단을 내렸다거나 남용적 요소가 없어졌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무혐의 처리된 것을 갖고 검찰이 변했다고 하는 것은 다소 의미를 과대하게 부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근용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간사도 "(검찰의 결정은) 결과적인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하기에 특별히 뭐라고 평가할 것이 없으나 검찰이 어떤 논리로써 '무혐의' 결정을 내렸는지는 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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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이번 결정이 국보법 개폐논의 영향 미치지 않을 것"

이와 같은 지적을 뒷받침하듯이 구본민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 검사는 지난 1일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손관수입니다>에 출연해 대하소설 <태백산맥>에 대해 "소설에는 이적표현물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지만 우리 사회가 이 정도의 표현은 자유로운 토론과 경쟁적인 상호비판과정을 통해 충분히 여과할 수 있는 단계에 와있기 때문에 무혐의 처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 부장검사는 "검찰이 이번에 특별히 의미 있는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며 "대법원 판결 취지를 나름대로 충실히 따라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보법 개폐 논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예술의 자유 안에서 국보법이 규정하고 있는 이적표현물의 근거기준을 어떻게 정할지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면서 "검찰은 대법원에서 기준으로 설정하고 있는 '적극적이며 공격적인 표현'이라는 기준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구 부장검사의 말속에는 여전히 검찰은 국보법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검찰이 '변화된 사회 상황'에 눈치를 보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송 변호사는 "검찰이 <태백산맥>을 판단한 기준을 갖고 다른 사건에도 일관되게 모두 적용한다면 다른 사건도 다 무혐의를 받아야 한다"면서 "많은 사람이 <태백산맥>을 소지하고 있어 '무혐의' 종결되고, 반면 신학철 화백의 작품 '모내기'는 한 점뿐이기에 여전히 이적표현물로 낙인찍혀 있을 뿐만 아니라 아직도 작가의 손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변화된 검찰의 국보법 해석 "이적 목적·인식 있어야 처벌 가능"

어찌됐든 그동안 국보법이 우리 사회의 학문과 사상의 자유, 예술적 상상력을 제한해왔던 것을 보면, 이번 검찰의 국보법 사건들에 대한 무혐의 종결은 학술 및 예술계에 있어 가뭄에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검찰은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저서 <한국 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의 내용 등에 대해 "최 교수가 '기존의 학설과 주장과 다른 학술적인 견해'를 제시한 것으로 학문연구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밝힌 것에서 봤을 때 작은 기대를 해 볼 수 있다.

결국 검찰의 이런 판단은 남북관계의 현실과 국민들의 변화된 인식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이며, 이미 일반 대중들에게 대중적인 평가를 받은 문학작품에 대해 현실과 괴리된 실정법의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또 국보법을 적용해 처벌하기 위해서는 '이적 목적 및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대전제가 판단의 근거로 작용된다고 볼 수 있다.

"검찰 결정은 국보법 존폐 논의에 영향 미치지 않을 것"... 과연?

한편으로는 과연 구 부장검사의 말대로 보수와 진보 진영간에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국보법 존폐 논란'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그에 대한 답은 이미 구 부장검사의 말에 담겨있다. 과거에 검찰이 '이적성'만으로도 국보법을 적용해 처벌했던 사례가 없었다고 보기 어려운 사건들이 있었다.

그 사례로 검찰이 지난 90년대 이적성 논란의 불을 지폈던 경상대 교양교재 <한국사회의 이해>를 집필한 정진경 교수 등과 <나는야 통일 1세대>를 펴낸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에 대해 국보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것을 들 수 있다. 결국 이 사건들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반면 검찰은 지난해 12월 영화 <실미도>의 내용 중에 공산주의 혁명 찬양가인 '적기가'가 삽입됐다는 이유로 실미도 사건 유족들이 강우석 감독을 고발한 사건을 무혐의 종결하면서 변화된 사회상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검찰은 장기미제로 현재까지 판단이 미뤄지면서 넘겨진 이번 사건에 대해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대검 공안자문위원회'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의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검찰은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경우 지난 2000년 문학평론가협회와 문인협회 등 6개 단체로부터 작품의 이적성 여부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이같은 사례에서 현재 검찰은 국보법을 적용함에 있어 많이 달라지고 신중해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그동안 우리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가지 많은 제약을 줬던 국보법이, 민주화와 세계적인 탈냉전화의 흐름 등의 상황에 이미 수명을 다한 법으로, 사라져 가고 있음을 단적으로 알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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