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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에 연재되었다가 책으로 나온, 김규항+김어준의 [쾌도난담]을 읽고 있다. 김규항의 [b급좌파]를 읽고 받은 감동이 커, '김규항'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책을 찾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활동이나 발언의 영향력에 비해서, 내놓은 책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예상 밖의 일이지만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다. 토할 말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동어반복은 그 본디 메세지의 힘을 자꾸 떨어뜨리는 일이 될 것이고, 그런 방향으로 생각하면 다작은 위험한 일인 것이다.
그건 그렇고, 오늘 읽은 부분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박지주라고 하는 장애인이 참석해 대담한 꼭지였다. 그는 자신이 장애인 인권운동에 몸을 담게된 과정을 이렇게 짧게, 그러나 가장 효과적으로 이야기한다. "사회에 나오면서 신체적 손상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자의식이 트이면서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148p)
이 말은 확장될 수 있다. "신체적 손상"이라는 말 대신에 "신체/정신적 손상"이라는 말을 넣으면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경구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손상된 정신'이란, 바르지 않은 사상이나 편견, 상처를 가진 사고(틀)를 의미한다. 지만원, 조갑제씨가 그런 정신의 소유자이며, 그들의 추종자 또한 그러하다. 그리고 그들의 프로파간다에 통제되고 있는 우리들이 그러하다.
아니, 한국 사람들 모두가 손상된 정신의 소유자다. 약자를 배제하고 그들을 착취하는데 공개적/암묵적으로 동의하며, 정치적 무기력이라는 이상한 병에 걸려 자꾸 도망가기만 하는,(도망만 가면 괜찮다, 우리는 맞서는 이들에게 되려 손가락질을 하지 않는가) 우리들이 장애인인 것이다. 증거는 널렸다. 뉴스를 보면 안다.
장애인인 박지주씨는 자신이 가진 "신체적 손상"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고민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가진 "정신적 손상"의 사회적 의미를 고민하지 않는다.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자의식의 확장을 경험하기 전에, 우리는 "이건 내가 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자폐의 그늘 속에 숨어버린다.
어쩌면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는 박지주씨보다, 그런 막되먹은 핑계대기에 급급한 우리가 더 중증의 장애를 겪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박지주씨의 말처럼, "'장애'의 개념을 확장시키면 '정상인'이란 세상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간에 "에바다 시설비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뭔지 몰라서 집에 와서 찾아봤다. 장애인 복지 재단이 저지른 비리 사건이 이렇게 많은 줄 오늘 알았다. 완전히 해결되는 데 7년이나 걸렸다는 에바다 시설비리(1996) 뿐만 아니라, 올해 불거져 나온 청암재단 비리니 정립회관 비리니 하는 것들도 매양 비슷한 것들이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이른바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대부분의 '정상'인들이 무관심했던 사이에 '살 만한' 소수의 '정상'인들이 '장애'인들을 착취해 배불리 먹었다. '복지'재단/시설이라는 이름으로 공권력의 특혜를 입으며, 때로는 공권력과 야합해서.
이런 나라에 산다. 정신적 장애국가에.
덧붙임: 국제 장애연맹에서 내놓은 장애 개념은, 신체적 장애 -> 활동장애 -> '참여' 장애의 3단계 접근법을 갖고 있다고 한다.(153p) 신기하게도 들어맞는다. 정신적 장애 -> 활동(판단) 장애 -> '참여' 장애. 우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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