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회 여성영화제를 다녀와서

여성의 눈으로 본 살아있는 영화들

검토 완료

이은정(shower8353)등록 2005.04.17 14:25
서울여성영화제는 신촌 아트레온에서 관객들과 일곱 번째 소통을 시도했다. 지난 4월 8일부터 15일까지 일주일 동안 세계 다양한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영화들이 세계 곳곳에서 우리를 찾아왔다. 남아프리카공화국<노래하는 그릿지 할머니>, 부르키나파소<쿠난디> 등의 아프리카 지역을 비롯해서 터키<터키영화특별전>, 체코<베라 히틸로바 감독 특별전>, 아르헨티나<개막작 홀리걸> 등 우리에게 생소한, 다양한 국가 여성들의 목소리들을 들어볼 수 있었다.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는 세계여행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터키 여성 영화의 과거와 오늘을 돌아보는 터키영화특별전은 관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영화제에서 총 27개국 90여 편의 작품들이 7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상영됐다. 세계 각지 여성들의 같음과 다름을 보여주고 있는 우수한 작품들로 꾸려진 ‘새로운 물결’, 새로운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이 주목할만한 10대 여성들의 성장과 섹슈얼리티를 다룬 ‘영페미니스트 포럼’, 고백하는 여자들을 주제로 삼은 ‘한국영화회고전’ 등의 섹션 중에 무엇을 봐야할지 어지러울 정도로 다양한 영화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특히 올해에는 많은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눈에 띄었는데, 픽션과는 또 다른 감동을 안겨주었다.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 작품들을 통해 세계 여성들의 삶에 보다 밀착되게, 진지하게 접근해 볼 수 있었다. <꿈꾸는 카메라 : 사창가에서 태어나>는 올해 아카데미 최우수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한데,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전회 입장권이 매진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화려하게 보이는 여배우의 진짜 모습을 기록한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는 여성영화제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되기도 했단다.

하지만 영화제가 더욱 풍성하게 느껴질 수 있었던 것은 국제포럼이라든가 성매매 피해 여성을 지원 바자회, 감독과의 대화 등의 이벤트 등이 함께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영화제에서든 이벤트가 관객들을 기쁘게 해주긴 하지만, 여성영화제에서 이번에 마련한 행사들을 주목해볼 필요가 충분하다. 특히 이화여대에서 열린 ‘아시아 지역 성매매 현실과 비디오 액티비즘’을 주제로 한 포럼이 진지하고 자유로운 토론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포럼에 참가했던 이희진(이화여대, 21)씨는 “사회에서 소수자인 여성, 그리고 그 중에서도 마이너리티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성매매 여성에 대해 얘기해 보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치유 매개체로서의 비디오 액티비즘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강구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어요. 3년째 여성영화제를 찾고 있는데 올해에는 정말 볼거리가 많네요.”라며 만족스러움을 내비쳤다. 해를 거듭할수록 영화제는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는 캐치프레이즈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넓어진 관객층, 축제의 열기 속으로


지난해 동숭동을 떠나 신촌 아트레온으로 상영관을 옮기면서 서울여성영화제 관계자들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5년 동안 지내온 동숭동 앞마당을 떠나면서 마로니에를 통해 쌓아온 축제라는 이미지를 포기해야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했을 성싶다. 하지만 과감히 서울여성영화제는 관객 확대를 선택했다. 아트레온 이주라는 모험을 통해 지난해 6회 서울여성영화제는 90%가 넘는 관객 점유율로 성공적인 행사를 치렀고, 20, 30대 ‘여성’ 이외의 관객 속으로 깊숙이 들어설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처음엔 ‘여성만의’ 영화제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남성관객이 꾸준히 늘어 전체 관객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아트레온 1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민혜빈(연세대학교, 22)씨는 “과제 때문에 오는 단체 관객들도 많긴 하지만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폭넓은 관객층이 형성되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올해 영화제가 심혈을 기울인 또 하나의 부분은 ‘10대 여성’들로 보여진다. 최근 10대는 자본주의 문화 산업에서 소비 주체이자 성적 주체로 부상하고 있다. 영 페미니스트 포럼이라는 섹션에서 이러한 현상에 중심을 두어 10대들에 대한 다양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원조교제나 임신 등의 상업적이고 선정적인 소재가 아니라 가정이나 학업 등 10대의 진짜 ‘여성’을 고민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20, 30대 여성 관객에 치우친 여성영화제의 폭을 넓혀보자는 시도로 보여진다.

실제 영화제에서 활기찬 축제기운과 남성관객의 참여열기, 그리고 계속되는 매진사례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 구에서부터 자원봉사자들의 열의가 인상적이다. 또한 클로징 자막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일어서는 관객이 없는 것도 특이하다 할 수 있겠다. 관객의 몰입도와 관심을 실감하게 되는 모습이었다. 프랑스의 여성영화제가 규모면에서는 세계 제일이라고 하지만 활기나 에너지 면에서 이번 여성영화제에는 못 미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시끌벅적한 가운데 눈에 띄인 사람들의 얼굴빛이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축제분위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축제 같은 페미니즘

민혜빈씨의 말에 따르면 외국의 영화관계자들이 여성영화제 중 이렇게 즐겁고 활기가 넘치는 영화제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기존의 페미니즘 운동과 차별화되는 흥겹고 신나는 축제적 성격에 대해 신기해 할만 하기도 하다. 70, 80년대에 시작된 페미니즘 운동은 무겁고 투쟁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 사실 영화 내용들이 정직하고 발랄하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도 여성영화제는 주류 여성주의의 성격과는 그 맥을 달리하는 것 같다.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혜경씨는 “시대변화를 반영해 여성에 대해 함께 얘기하기를 즐길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우리의 기획의도이기도 하다. 문화라는 의미체계를 통해 여성의 스펙트럼을 보다 의미 있게 확장시키고 싶다.”고 밝힌 바가 있다.

서울여성영화제는 이미 세계적인 영화제로서 이름을 얻고, 호평을 받고 있다. 물론 영화제가 양적으로 성장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과 영화제를 준비하는 사람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의 모습은 계속되었으면 한다. 여성의 현실을 알고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 영화란 매체에 여성을 재현하려는 담금질의 의지가 곳곳에서 힘차게 느껴지는 영화제. 이 영화제의 발전을 기원하게 되는 이유다.

기자의 뷰파인더에 잡힌 영화 몇 조각


쟈임에서는 지난 4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에 걸쳐 여성영화제의 영화를 보고 왔다. 기자들이 보고 온 괜찮은 영화 몇 점을 이야기해 본다.

< 공창묵시록/ 차이 충룽 /52분 /2001년 >
성매매를 하는 여성에 대해서 남자나 여자나 모두가 너그럽지 못하다. 사실상 우리는 그들을 '여성'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남자이고 여자이고를 떠나 사람들은 그들을 우리 인식 속에서 평범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터부시되는 '성매매'를 하는 보통 사람과 분리된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공창이나 사창가는 필요악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고, 그 존재의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럼에도 왜 그들은 그 ꡐ어쩔 수 없는 존재ꡑ에 대해 따뜻한 시각을 주지 못하는 걸까?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대충 상상만 해 보았던 공창가 내부의 실제 모습과, 그곳 생활 싸이클이 소개가 인상적이다. 이곳 여성들은 고객에게 돈을 받으면 주인에게 주고, 주인이 칩으로 바꿔준다. 후에 그걸 토대로 3:7로 돈을 나눠 갖는다고 했다. 보통 하루에 20-30명의 고객을, 많을 때는 80명에서 100명까지도 상대해봤다고 한다. 초라한 건물 속, 초라한 방들. 저 좁은 공간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이,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낯모르는 남자를 상대로 '일'을 해야 했을까.
대만의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투쟁은, 한국에서 작년 10월에 벌어진 일과 다르지 않았다. 대만에서는 이미 7~8년 전에 문제가 된 일. 조금 다르다면, 대만은 공창을 합법화했었던 적이 있었고, 우리나라는 쭉 불법이었다는 사실이다. 대만은 원래 합법화된 자격증을 가진 미혼의 여성들에게 성매매를 허락했었다. 그런데 정부에서 이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고, 그에 "생존권ꡑ을 주장하며 대만의 성매매 여성들이 투쟁에 나선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내내 머리를 가득 채운 두 가지 질문. 성매매 여성들은 피해자일까, 아닌걸까. 그리고 성매매를 성노동으로 볼 수 있는가, 아닌가. 나 역시 윤리적인 관점에서만 판단하여, 왜 굳이 하고 많은 일들 중에 성매매인가를 되묻던 사람이었다. 몸을 팔기까지 그녀들의 사연은 너무나 다양했다. 하지만, 그 다양한 사연들 중에서도 너무나 당연한 공통된 사실, ꡐ좋아서 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ꡑ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비참한 직업을 선택해야 할 정도로, 그녀들은 배운 것도 없고 환경은 최악이었다는 것을. 저렇게 비참한 곳으로 그녀들을 떠밀은 사회는, 이제 와 성매매를 불법이라 말하며 생계의 끈을 매몰차게 끊어버린 것이다.
영화에서 그 곳을 찾는 남자들의 이야기 혹은 비판은 전혀 없다. 성매매를 필요악으로 혹은 없어져야할 사회학으로 이야기 할 때면 늘 나왔던 남성이라는 존재는 이 다큐에서는 잠시 뒤로 밀어놓았다. 단지 영화는 슬며시 물음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표면위로 나온 그녀들을 향한 잔인한 사회의 시선과 가슴 아프게 절박히 투쟁하는 성매매 여성들의 모습을 비춰주며 이제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관객에게 되묻고 있었다. 이제 너희 보통사람들은 그녀들을 어떻게 바라볼 건지, 담담하면서도 슬프게 묻고 있다.

<생명구원식초: 탈성매매 여성들의 목소리/ 젱 지타/ 23분/ 2005년 >

공창제도폐지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는 대만 여성들은 '성노동자도 노동자다라고 외친다. 주위의 무관심과 편견어린 시선 속에 외롭게 시위를 벌이던 한국의 성노동자들을 떠올려보았을 때 이는 분명 생경한 풍경이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공창묵시록>에 등장하는 한 주부처럼 아무리 배가 고프고 살기가 어려워도 성노동자가 되어 돈을 버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공창이 되어야하는 여성들을 보여준다. 그들은 성노동을 해야 만이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는 여성들이다. 공창제를 폐지시킨 여성 국회의원들은 이러한 그들의 삶을 알고 있었을까? 정작 성노동자들의 삶에는 무지한 채로 또 하나의 폭력을 행사했던 것은 아닐까? '성노동자도 노동자'라는 그녀들의 외침은 성을 노동의 수단으로 삼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었던 그녀들의 인생을 담고 있다. 공창제 폐지로 인해 직장을 잃은 그녀들은 사회 운동가들의 도움을 얻어 '코스와스(coswas)' 라는 여성 단체를 만들었다. 여성 연대 속에서 공창 합법화를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세상은 그들의 움직임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성매매로 인해 지탄받아야 할 대상은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소외당해왔던 그녀들이 아니라 스스로를 희생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절실한 삶을 자신들의 잣대로 함부로 '구원'하려 했던 주류들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 결혼선고 / 아낫 주리아 /65분 /2004년 >


어린 기혼여성 세 명이 이혼을 위해 수 년 간의 법정투쟁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다큐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남편의 외도, 폭력 등 남편의 잘못으로 인해 이혼을 결심하는 여성이라고 해도 법정은 이혼하려면 남편의 동의가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혼을 하기 위해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요구되며, 설령 그 악몽 같은 시간을 버틴다 해도 이혼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왜냐하면 남편의 변덕 때문에 이 여성들은 언제 자유의 몸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 다른 부분은 민주화되어 있지만, 여성과 결혼에는 보수적인 이스라엘에서 여성들이 겪었던 부조리하고 악몽 같은 ‘이혼투쟁’을 따라간다.
이 영화는 이스라엘 사회에서도 금기시 되고 있는 부분인 여성 박해에 대한 내용을 다룸으로써 이스라엘 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스라엘 대부분의 여성들조차도 그들의 이혼수속 절차가 그 정도로 어려운 실정인지 알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차츰 이스라엘 내에서도 이 다큐가 TV를 통해 방영되었고 세계 곳곳의 축제에서도 소개 된 적이 있다. 카메라는 법정까지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들의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분노가 불붙을만 했다. 그로 인해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고 그늘에 존재하던 이혼의 법정투쟁에 이야기가 영화를 통해서 이스라엘 표면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서 아낫 주리아 감독은 “이스라엘 내에서 이 문제가 커다란 화두가 됨으로써 그들은 자신들 사회의 문제를 직시하게 된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혼과정의 부당함만을 보여주고 이혼을 결심하게 된 원인이나 주변 여건, 환경을 보여주지 않고 있어 감정이입이 힘들었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이스라엘 유대교들과 기득권 세력인 랍비의 보수성이 여성을 어떻게 속박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준 영화였다.


< 아찔한 10대 /케이트 쇼트랜드/ 106분/ 2004년 >

엄마의 애인과 키스를 하다가 들킨 십대 소녀가 집을 떠나 살아가는 것을 불가능한 일일까? 아직 솜털을 채 벗지 못한, 여리기만 한 십대 소녀가 자신의 외로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선택한 길은 ‘남자를 유혹하는 일‘이었다. 탱탱한 몸으로 남성들을 유혹하고 그들로 인해 하룻밤 잘 곳을 마련하고 주린 배를 채우는 그녀의 모습은, 나약한 여성의 모습을 대신 그리고 있다. 어릴 적부터 가족과 친구들에게 따뜻한 관계 속에 살아오지 못한 주인공 하이디는 일시적인 성관계를 통해 자신의 애정결핍을 충족하는 방법을 배운다. 하지만 삶의 어려움과 외로움 속에서 자신의 지친 몸을 맡길 수 있는 곳은 하룻밤짜리 남자의 가슴이 아닌, 온기 따스한 ’우리‘의 가슴이어야 한다. 쉽게 유혹하고, 그 유혹을 쉽게 즐기는 남녀 관계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자신의 성(性)을 미끼로 살아간다는 일은 슬픈 일이고, 사회의 무관심과 침묵으로는 어떠한 매듭도 지을 수 없다. 사회로부터, 가정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받는 이들에게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회가 “너희가 살고 싶으면 몸을 이용하는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랑받지 못하고, 힘과 능력이 없는 여성들도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외로움에 지쳐 섹스로 삶을 달래 나가는 것을 두고 보는 것은 사회의 책임일 것이다. 주유소 편의점에서 일자리를 구한 하이디, 명찰에 “Heidi”라고 적힌 자신의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힘차게 일하는 그녀의 미소가 사회에 가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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