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희의 행적을 쫓다(1)

배를 타고 이동하다.

검토 완료

김선주(k0784)등록 2005.05.03 16:31
1973년 남해 고속도로가 개통하기 이전, 경상남도 하동은 섬진강을 이용한 뱃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곳이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교통의 요지였던 하동에서는 어떠한 교통수단을 이용했을까.

특히 1900년대 초반 <토지>의 최서희는 어떠한 경로를 이용해 간도로 떠났는가. 먼저 하동 악양에서 부산까지의 행로를 쫓아가보고자 한다.

소설 속의 날짜를 정리해 보면 5월 4일(즈음)에 하동을 출발한 일행은 5월 12일 부산 도착으로 일정을 잡는다. ‘이들은 5월 16일 하동을 떠나서 부산에 닿는다.’ 그런데 이가 5월 16일 부산에 도착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5월 16일 하동을 떠났다는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이들의 예정대로라면 5월 16일 부산에 도착했다는 것에 무게중심이 쏠리긴 한다. 그러면 하동에서 부산까지 걸린 시간은 12일정도 된다.

최참판가가 있는 악양면은 하동군의 서북쪽이다. 그런가하면 부산으로 가는 배편이 있는 금남면은 하동의 동남쪽에 위치한다. 이 중간 기점에서 하동읍이 위치한다.

도주를 결심한 최서희가 집을 떠나 잠시 머무는 곳은 이상현의 집이 있는 하동읍이다. 악양에서 이 곳까지는 강을 따라 이용한 것 같다. 하동읍에서 화개까지는 수심이 얕아 큰 배의 왕래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작은 배를 타고 이동했다.
이에 대해서 소설과 드라마에서(1987년과 2005년)는 모두 서희가 섬진강에서 배를 타고 떠나는 장면을 1부의 마지막으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문제는 하동읍에서 부산은 어떤 교통편을 이용했는지가 전혀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러 자료를 참고해 보면, 하동읍에서 노량리까지 배편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금남면부터 화개리까지를 하동포구 80리라고 한다. 32km정도 되는 이 곳을 이용한 배들은 여수, 삼천포, 남해와 같은 하동과 가까운 항구를 떠나 섬진강을 거슬러 오는 배들이었다. 40-50여채의 배들이 풀어놓는 공산품과 해산물로 인해 하동 장은 그 규모가 컸다고 한다.

그 하동포구에서 노량리, 즉 노량포구까지는 섬진강의 수심이 깊어 큰 배의 왕래가 가능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노량포구는 통영과 여수를 잇는 해상 교통의 요지 역할을 하며 그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따라서 최서희 일행은 이 곳에서 부산으로 가는 배를 타고 갔을 확률이 높다.

1960년대에 하동에서 부산까지 가는데 소요된 시간이 6-7시간이 되었다고 하니, 1900년대 초반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으리라고 짐작된다.

정리해보면, 최서희 일행은 악양에서 하동읍→하동읍에서 노량포구→노량포구에서 부산까지 3차례에 걸쳐 배를 갈아탔을 가능성이 높다. 하동에서 간도까지의 멀고 고달픈 원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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