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살다간 故 엄성준 열사

봄 농활을 준비중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성준이 형의 명복을 빕니다.

검토 완료

이수영(98suyoung)등록 2005.05.04 09:58

생전에 가장 가까웠던 진천군 농민회 백곡면 지회 형님들과 ⓒ 이수영


형은 사고 직후 바로 운명을 하셨다는 사고경위를 듣고 많이 의아해 했습니다. 운전자의 피해가 그 정도였는데 조수석에 타고 있던 학생들은 찰과상에 불과 했다고 합니다. 만취한 운전자의 차가 형을 향해 달려 올때도 옆에 함께 타고 있던 학생들을 살리기 위해 핸들을 반대로 돌렸다던 학생들의 말에 마지막 가는 길까지 형은 항상 형이 살아 왔던 것 처럼 남을 위해 가셨구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 시절 경상대 학생회장 선거 출마사진. ⓒ 이수영

대학 시절 자기 보다는 남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활동을 하셨던 형. 우리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의 아픔과 농업의 어려움을 알고 직접 농민이 되어 우리 농업을 지키겠다고 짐 보따리 하나 들고 진천으로 가던 형의 모습.

한강 고수부지에 있었던 농민대회때. ⓒ 이수영


자기 일 바쁘지만 옆동네 할머니 혼자 농사 짓으신다고 낡은 관리기 손봐가면서 트럭에 나 태우고 할머니 밭으로 가던 모습이 아직도 선한데...

농민이 되어 농민대회 사회를 보고 있는 형 ⓒ 이수영


장례식장을 찾은 분들은 한결 같이 형의 모습을 기억을 합니다. 힘든 농사일 하면서 인상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항상 웃음으로 진심으로 주위 사람들을 그렇게 만나갔던 형이 였습니다.

생전에 가장 가까웠던 진천군 농민회 백곡면 지회 형님들과 ⓒ 이수영


어제 형이 생전에 많이 존경 하셨던 문익환 목사님 옆에 형을 묻고 많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남은 사람들이 형이 이루려고 했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부디 편히 잘 가세요...

사고경위

농민운동가 故 엄성준 동지는 지난 4월 29일, 봄 농촌활동 준비를 위해 진천지역에 답사를 진행하러 온 성신여대, 서경대, 한성대 학생동지들과 함께 농민학생 연대사업위원회 회의를 마친 뒤, 저녁 10시경 진천을 떠나 학생 2명을 차에 태우고 숙소인 백곡면 갈월리 노신마을 마을회관으로 이동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진천에서 백곡으로 향하는 34번 국도 중 급격하게 휘어진 언덕 고가도로(진천읍 장관리 일송정 부근)에서 마주 오던 고속의 무쏘 차량이 갑자기 바깥쪽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그 충격으로 휘어져 180도 회전함과 동시에 그 엄청난 힘으로 튕겨나오던 무쏘차량 뒷 부분과 고 엄 동지의 차 운전석 부분이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사고 후 차체형태나 사고규모를 볼 때 차량에 타고 있던 3명 모두가 위험한 상황이었으나 함께 타고 있던 학생들은 다행히도 목숨을 건졌습니다.

학생들의 진술에 의하면 사고당시 故 엄성준 동지는 촉각을 다투는 위태로운 급박한 상황에서도 두 명의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핸들을 반대로 꺾었다고 합니다. 故 엄성준 동지는 소중한 두 명의 학생의 생명을 지켰지만 정작 자신의 목숨은 잃고 우리곁을 떠나고 만 것입니다.
한편, 경찰조사 결과 마주 오던 가해차량에 탑승한 사람은 혈중 알콜 0.2% 이상으로 만취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농민운동가 故 엄성준 열사 약력

1970년 6월 생
1991년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입학, 숭실대학교 농촌문제연구회 ‘땅의 사람들’ 입회
1995년 숭실대 총학생회 농민학생 연대사업국장
1996년 숭실대 경상대학 학생회장
1998년 진천군 농민운동 투신
1999년 사랑하는 동지 차인숙님과 진천군 백곡면에 정착
2002년 진천군농민회 백곡면지회 창립에 헌신, 진천군농민회 백곡면지회 총무 역임
2003년 첫딸 엄고은을 삼년 키우고 농민혼례 치룸
2003년~ 진천군농민회 정책실장
2005년 봄농활 준비로 답사온 학생들을 태우고 마을로 들어가던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운명.

유가족

부인 : 차인숙(34)
자녀 : 큰 딸 엄고은(6), 둘째 아들 엄승혁(3), 셋째 임신 9개월째 태아

추모글

진천군 농민회 이해자

고단한 하루를 뒤로 하고 잠자리를 준비했을 저녁 10시 40분
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화를 받았지
사고를 여사로 듣고 나는 나대로 기수형은 헐레벌떡 옷을 주워 입고
택시를 타고 간다기에 택시를 주문했지 택시가 동네어귀에 접어들기전
또 한통의 전화
믿을 수 없는 그 말에
주섬주섬 찰르 몰아 네가 누워 있는 병원에 뛰어 들어
믿기지 않는 현실에 몸을 가눌 수 없구나
아픈 내동지 성준아
흔들어도 쓰다듬어도
감지 못한 네 눈은
한 곳을 바라 볼 뿐
울고 불고 몸부림쳐도 되돌릴 수 없는
현실앞에
우리 인숙이는 어쩔고 내 새끼 고은이는, 승혁이는
아빠 얼굴 한번 보지 못한뱃속 아가는 어쩔고
그래 아픈 사랑들에게는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전화를 붙들어도
차마 내 입으로는 뗄수가 없었구나
너를 만난 8년의 세월
아니 그 훨씬 몇 년 전부터 알았다만
힘들었을 농활을
천직으로 삼고 싶다던 네 말에 반기며
진천으로 와라
진천군 농민회장과 학생이 아니라
진천을 일구는 동지가 되자며
단출한 네 보따리 받아 안고
함께 논으로 밭으로
너의 어깨, 너의 가슴 미더워
좋아라 했는데...
여자친구라 소개한 너보다 더 선한 사람
인숙이를 보며 천생연분이로세
좋아라 했는데
평생 이곳을 진천에서
농업을 천직으로 알고
농민을 자랑으로 여기며
새로운 세상을 일굴 평생 동지를 얻었다며
얼마나 좋아라 했는데

2005년 4월 29일 늦은 10시 30분경
한 하늘 아래
존재하지 못함이 이런 것이구나
성준아!
맨날 보는 농사꾼, 쌈꾼, 상머슴 엄 성 준
뱃속 아가 얼렁 보고 싶어
우리 인숙이 손 잡고
바로 어제
병원 다녀왔는데

쑥쑥 자란 오이보며
물이며 양분이며 제때 제때 줄려고
굶어가며,
명경 한번 못보고
깨끗한 옷 호사라 여기며
새벽부터 집 들어가는 것 잊고
일하다.
면지회 세워보겠다고,
농민의 희망의 깃발 제대로 세워보겠다고 낼 모레 회의 wqkdkshg고
짬짬히 전화 돌리고
형들 찾아 잔발치며 힘겨웠을 저녁.
봄농활 답사 온 후배 맞아
국밥 든든먹여
옆자리에 태우고
고단함도 잊고 마을회관가서
형들과 후배들 함께 먹을
술이며 안주며 사들고
금방 온다던 네가.

그 언덕 가파른 모퉁이길
넘지 못하고 올 줄이야.
누가 알았을꼬.
누가 차마 상상이나 했을꼬
아까운 동지 성준아.

옆자리 후배 살려보겠다고 눈깜짝 했을
그 순간

어깨가 결려 잠도 설쳤다던 오늘.
무섭게 달려드는 술취한 차에서 너를 살리는 힘도 누르고
무슨 힘으로 핸들을 꺾어
후배들을 생사에 갈림길에서
살려내고
시퍼런 서른 여섯에 너는 영혼이 되어
동지들 불러들이는가 이 미련맞은 친구야!

너를 통째로 삼킨
그 고갯길
일년 삼백육십오일
삼천육백오십일
“민족농업사수”
“수입개방반대”
“미국반대”
철철이 색깔 바꿔가며
방송해가며 휘달렸을
그 고갯길.

우리 인숙이 고은이, 승혁이
두달이면 안아볼 뱃속 아가
태우고 둥둥 달렸을
그 고갯길

골짝 골짝
형님들, 형수들, 할매, 할배들
태우고 농민가, 아스팔트 농사꾼
팔뚝 휘두르며 관광차에 흔들리며
넘나들었을 그 고갯길

농민답게 살기위해
인간답게 살기위해
이 고개 많이 넘나든 만큼
농민세상 자주 민주 통일세상
빨리 올거라 굳게 믿고
넘나들었을 그 고갯을. 동지여.
엄성준 동지여.
꿈엔들. 잊으리오.

동지를 통째로 집어삼킨
어둠.
그 고갯길.
언덕 하늘 저편 별이 되어
아프게. 애닮게 바라볼
동지여!

우린 동지를 보낼 수 없습니다.
맑은 영혼.
불같은 순수.
너털웃음.
잡초처럼 자라버린 턱 수염 그대로
보낼 수가 없습니다.

깊고깊은 사랑 인숙이
솜털같은 놈들 고은이,승혁이,8달배기 우리아가
늙고 병드신 실낮같은 기운으로 듬직한
아들놈 희망삼아 연명하신 노모.
고혈압으로 쓰러진 형
앞에 두고
어찌 보낼 수 있단 말입니까. 동지여.

보낼 수가 없습니다.
정녕코 보낼 수가 없습니다.

사송정 모퉁이 고갯길.
동지를 통째로 집어삼킨 그 고갯길
후배들의 엄혹한 생사의 갈림길이었던
그 모퉁이 그 고갯길.
동지 살 속에 흐느끼며 빠져나간 꿈들
온몸 으스러지던 그 노래들
동지의 피묻은 발걸음. 가락들
연기처럼 날리며 보낼 수 없습니다.

동지여! 엄성준 동지여!
새파란 젊은 기꺼이 던진 백곡의 동지여, 진천의 동지여
충청의 동지여, 농민 형제의 동지여
자주 민주 통일의 동지여!

동지의 살 속에 요동치며 빠져나간 꿈들
온몸 바스러지던 불꽃의 노래들
낫낫이 모두어 동지를 살리려 합니다.

동지여 고단했던 삶.
우리는 기꺼이 짊어지겠습니다.
동지의 불굴의 사랑, 꿈, 이상.
당당했던 두 어깨 순박한 눈
늘상 가빴던 발자욱 모두
우리가 기꺼이 짊어지겠습니다.
동지가 넘나들던 사송정 모퉁이 고갯길
꿈을 쌓고
성실히 넘나들던 그 길.
형님,형수님, 할매,할배 손잡고 넘나들던 그길.
그 수고로움
우리가 기꺼이 짊어지겠습니다.

동지와 가꾸어온
고은이, 승혁이, 뱃속 아가.
너무나 고운 아내
무거운 아픔이던 어머니, 두 형과 동생.
우리가 기꺼이 가꾸겠습니다.

동지여!
감지 못했던 동지의 두 눈
이제 우리 내려드리려 합니다.
몹시 아팠던 육신 내리시고
비로소 편히 보내드리려 합니다.
동지여 고히 가소서.

동지여! 엄성준 동지여!
어두운밤 별로
지그시 보소서.
농민 사랑, 자주 민주 통일 열사여
우리의 엄성준 동지여
이제 우리는 동지를 보냅니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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