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넘어선 드라마의 현실

'러브홀릭'의 교권침해 장면, 이해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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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헌(khlee64)등록 2005.05.04 13:58
KBS 월화 드라마 "러브홀릭"의 2005년 5월 3일 방영분에서 드러난 교권침해 장면은 아무리 곱씹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었다. 사실 그 장면을 보고 있을 땐 그저 평범한 사회 이상을 추구하는 내 마음 속에서 뜨거운 분노가 치밀어 오를 만큼 드라마는 현실을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있었다.

학교 선생님이 학생과 더불어 폭력의 현장에 있었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일방적인 고소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형사들이 신성한 교실에 그것도 수업시간에 문을 열고 들어와 선생님을 경찰서로 데리고 가는 장면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장면이었다. 교권은 그 어떤 이유에서라도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일반적 사회 통념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고소가 들어왔다 해서 선생님을 교육 현장에서 연행한다는 이 드라마의 설정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나온 것일까?

현실 사회의 이상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우선 그건 드라마나 영화가 추구하는 한 가치인 리얼리티의 추구는 절대로 아니다. 그렇다면 흥미 있는 설정을 통한 시청자들의 관심 끌기적 차원인가? 그렇다면 그건 정말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어떻게 흥미 유발의 명분으로 교권이 그렇게 대담하게 무너뜨릴 수 있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이해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그건 단지 교권에 대한 프로그램 제작자의 무지에서 나온 것일까? 방송을 보고 있을 땐 그렇게 밖에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그만큼 그 장면은 도를 지나쳤다.

이번 드라마 내용이 더 큰 충격을 주는 건 그것이 공영방송을 자처하는 KBS의 작품이라는데도 또 한 이유가 있다. 공영방송이 추구하는 목표와 이상은 어디로 가고, 흥미나 오락성으로 안방을 채우고자 했던가? 이것이 오늘날 흔들리는 공영방송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허먼과 촘스키는 “프로파간다 모델”을 통하여 대중매체의 이윤지향성 이해관계를 꼬집으면서 미디어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 이런 한계가 공영방송인 KBS를 통해서도 나타난다면 21세기 한국 사회의 문화 정체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다.

죠지 거브너는 텔레비전의 숨은 역할을 일컬어 “우리 문화의 배양자”라고 했다. 21세기 한국 사회의 문화 현상은 텔레비전을 통해서 배양되어 나온다는 말이다. 그의 이론대로라면 지금 “러브홀릭”에서 나타난 교권침해의 장면은 그 왜곡된 사회적 이상을 배양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결국 KBS는 이번 드라마를 통해 긍정적 문화를 배양하는 대신에 심각한 사회적 병원균을 배양하고 만 셈이다.

텔레비전이 문화의 배양자 역할을 하고 있다면, 어떠한 이유에서도 왜곡된 문화를 배양해서는 안 된다. 특별히 공영방송을 자처한다면 그건 절대로 용납되기 어렵다.

이번 사태로 인해 네티즌들의 항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KBS와 드라마 관계자들은 어떤 방식으로라도 이번 문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것은 사과나 징계와 같은 형식적인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이상 구현에 대한 새로운 정신적 각오의 재정립과 같은 보다 구체적인 변화를 통해 나타나야 한다.

단순히 시청율을 의식해 드라마를 만들기 전에,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영향과 그것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려가 앞서야 한다. 돌이켜보면 “러브홀릭”과 그 이전 드라마였던 “열여덟 스물아홉”은 모두 연상의 여인과 고등학생과의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어 KBS의 공영성에 대한 의혹을 심화시키고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KBS는 이 같은 비이상적 사회 현실을 계속해서 반영하고자 하는 걸까?
결국 사회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방송 관계자들에게만 모든 것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그건 이제 시청자의 몫이기도 하다. 시청자들이 바른 식견과 의식을 가지고 미디어 비평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왜곡된 사회 이상이 반영될 때마다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도를 지나친 드라마 내용들은 뜨거운 질타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텔레비전이 문화 배양자로서 올바른 방향을 추구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텔레비전이 현대 문화를 이끌어가는 무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역시 시청자들의 반론과 이의 제기에 역시 가장 민감한 취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방송사 측은 드라마의 지향점을 바꾸고, 공영방송의 정신을 되살리는 변화의 기회를 얻기를 바라며, 시청자 측은 미디어에 대한 수용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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