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두번 잊혀진 고구려 유적

고구려 보루성이었던 '호로고루지'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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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navylynx)등록 2005.05.15 21:39
지난해 상반기를 뜨겁게 달구었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우리 역사의 강탈을 넘어서서 조상을 빼앗겨 현 우리민족의 정체성마저 흔들어 놓을 위기로 인식되었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과연 그때의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는가하는 의문을 나름대로 가져보아야 할 것이다.
어릴때부터 역사를 좋아했던 나는, 고등학교 시절 유현종 작가가 집필한 소설「연개소문」현 제목 : 대제국 고구려)이라는 한 소설 속에서 내 앞에 바로 살아 숨쉬는 고구려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학시절 역사를 전공하고 고구려사를 졸업논문으로 택해 지난해 소위 '中國'이란 나라는 분개를 넘어서 적개심을 표출할 수 있는 대상이 될 만큼 나를 흥분시켰다. 한참 고구려사 왜곡으로 시끌시끌할때 신문, 방송들은 이를 특집 기사화 시키며 공론화 시키며 우리 역사를 되찾는데 앞장서자고 성토를 끊이지 않고 하였다.
그 와중에 SBS에서는 국내에 있는 고구려 유적 중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호로고루지'를 보도하였다.
경기도 파주시 장남면에 위치한 호로고루지는 지금의 G.O.P 처럼 최전방 소초 역할을 하였던 '보루성'으로 임진강변에 자리잡아 한강이북으로 영토확장을 노리고 있던 백제와 신라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더불어 강변을 통한 유동 인구에 대한 통제를 하던 검문소 역할을 병행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곳이다.
지난해 SBS에서 보도되는 것을 본 후 '가봐야지'하던 것이 나 또한 지금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취업과 함께 샐러리맨으로 살아가면서 지난 5월 1일에서야 찾을 수 있었다.
대학시절 고적답사로 '문헌사'와 각종 수업에 차질을 일으킬 만큼 정신이 없었고, 졸업 이후 걸어가다 문화재 표시만 있어도 꼭 들러서 보던 나... '우리나라 문화유적을 다 보아야 내 생을 마감한다'는 나의 결심에 상당히 부끄러운 부분이었다. 그래서 근 6개월만에 다시 답사의 발길을 내딛는 곳으로 이 호로고루지를 찾았다.
언제나 그렇듯 주소만 알아낸 후 자유로를 따라 연천 전곡 구석기 유적지 푯말을 보며 겨우겨우 찾아간 그곳...
임진강 황포돛배를 탈 수 있는 강변을 지나 파주시 장남면 소재지로 들어가다보니 좌측으로 꺾이는 논길에 '호로고루성지'란 초라한 팻말이 서 있었다. 무심코 지나치다보면 전혀 볼 수 없을 그런 작은 표지판이었다.
내가 찾은 5월 1일은 매우 날씨가 흐렸었는데, 날씨의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스스로 답사 인생으로 치부하고 살며 '음습한'곳을 찾아다닌 나에게도 저만치 서 있는 호로고루지의 모습은 방금 적군이 휩쓸고 간 듯한 스산함으로 다가왔다.
성벽 앞에는 발굴을 마치고 무엇인가 위락시설을 만들것처럼 땅이 골라져있었고, 성에서 수습한 부재(部材)들을 제단처럼 바로 앞에 쌓아놔 그 적막감은 더 했다. 주차를 한 후 우선 성벽을 따라 왼쪽으로 따라 들어가자 마을의 한 농장인듯한 곳이 호로고루지와 붙어있었는데 문이 잠겨 있어 뒷 성벽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하여 반대편 성벽을 따라 이동하며 답사를 할 수 있었다.
전형적인 고구려 축성술인 '육합(六合)'쌓기로 만들어진 성곽으로 남한에서는 아차산에서 발굴 되었던 보루성과 단양에 있는 '온달산성'과 함께 몇 안되는 귀중한 유적으로 고구려 축성술과 군사 등 여러가지 면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는 성이다.
허나 성곽 주변을 돌아보니 '암울하다'라는 말이 가슴속에서 울려 퍼졌다. 세상의 중심이라며 언제나 수십만, 나중에는 백만이 넘는력 병력을 이끌고 침략해 온 중국인들과 당당히 정면으로 맞서고, 콧대를 납작하게 해 준 것도 수십차례, 침략때마다 그들의 나라로 쫓아보내던 그 고구려인들이 만든 성벽은 세월이라는 무서운 적 앞에서는 수성(守城)이 힘들었던 모양이었나 보다.
온전히 남아 있는 성벽은 북쪽 일부였고, 나머지는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나마 성곽을 덮어 놓은 천막이 비와 바람을 어느정도 막아주고 있었으나 이 또한 찢어지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여기저기 찢어져 너풀거리고 있어 귀신이 사는 '귀곡산장'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성이 무너지는 것은 '천년이 넘는 세월'이라는 무서운 적의 공격이 주 원인이겠지만, 그것보다 그 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인 '보존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유적지를 다닐때마다 언제나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되고 혼자 흥분을 하며 분을 삭이지 못해 답사를 다닐때마다 나는 막걸리를 한사발씩 들이키곤 하는데..
허나 내가 막걸리를 들이키게 하는 몰지각한 행동은 누군가에 의해 조성(?)되어 있었다. 무너진 성곽의 석재들을 모아 제단처럼 만들어 놓은 바로 앞에 어느 양심없는 아니 정신나간 者들이 석재의 부재들을 모아 불판을 지탱하는 돌로 쓰고 삼겹살과 막걸리를 먹었던 현장이 연출되어 있었다.
관리와 보존..
역사왜곡과 우리의 분노...
우리들은 방송에 문화재 관리 소흘과 기타 여러 문제가 있으면 언제나 정부와 관련기관, 그리고 학계에 성토를 하고 이에 대한 대책 수립을 요구한다.
허나 과연 우리 스스로는 어떤 모습일까?
중국 만주지방에 있는 고구려 성과 고분군에서 석재를 가져다 건축 부재로 사용하고 있는 중국인들의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면 비분강개하면서, 조상이 만들어 놓은 문화유산인 성의 돌을 가져다 고기를 구워먹는 모습이 우리의 현 실태이다.
호로고루지 가까운 곳에는 임진강 황포돛배가 유유히 떠 다니고 있었고, 강변에서는 가족단위 나들이 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곳에서 걸어 15분 거리에 우리가 지키고 보존해야 할 유적이 있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고, 음산함이 한껏 베어있던 호로고루지에서 한 젊은이가 깨진 고구려 기와를 모으는 그 시각, KINTEX에서는 나와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이 모터쇼를 관람하고 수많은 차량과 아름다운 도우미들 사이에서 이를 즐기며 1년전 중국이 저지른 '만행'은 자신의 머리속에 근무하는 '망각'이라는 업무담당자가 이를 처리하고 있었다.
물론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고 또 행한다는 것은 본인 자유의지이자 선택, 그리고 당연히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귀가 따갑게 들었던 '그때만 잠시', '망각의 국민'이란 말은 이제 그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정부 탓만할 것이 아니라 유적지를 찾으면 최소한 지켜야할 행동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경치가 좋으니 한잔 할 수도 있고, 또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천년이 넘는 세월전 조상이 만들어 놓은 성의 곳곳에 쓰레기를 버리고, 또 그 성돌로 고기를 구워 먹다니..
그 범인(?)이 잡히면 나는 당신 조상이 힘들게 지은 집에서 떨어져 나온 돌을 모아 고기를 구워먹고 조상이 살던 집에 그렇게 쓰레기를 버리고 올 수 있는지 꼭 물어보려 한다.
호로고루지를 떠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일산 KINTEX로 진입하는 곳에는 어마어마한 차량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며 지난해 개그맨 정준하가 유행시킨 '두번 죽이는 일.' 이란 말이 지닌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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