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지? 그래, 울고 싶다

옛 선인들의 사무치는 슬픔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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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병일(jinmun)등록 2005.05.16 10:08
고려시대의 의천, 이색, 정도전 등 조선시대의 서경덕, 김일손, 송시열, 박지원, 이덕무, 정조대왕, 정약용, 임윤지당, 김정희 등 역사의 선각자들이 남긴 사무치는 슬픔의 문장들, 이름 모를 옛 선인들이 남긴 감동어린 애사哀詞 구곡간장 녹이는 제문祭文, 정감어린 편지들을 읽노라니,

수억 광 년 긴긴 우주의 시간 속에서 사람은 백 년도 못 살고 죽는다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을 되새기게 되었다. 우주의 거대한 생명체 속에서 바라보면 사람의 생명도 하루살이 같은 목숨인 것이다.

《울고 싶지? 그래, 울고 싶다》라는 책의 ‘주옥같은 87편의 명문선집’을 읽을 때마다 거듭 '회색도시의 공간에서 물질의 노예로 전락한 도시인으로 살고 있음을' 깨달았고, 사무치는 통렬한 반성의 눈물이 내 마음속에 고여갔다.

박지원은 ‘울음과 칠정七情에 대한 생각'이라는 글에서 사람의 본성 중에서 슬픔이 가장 최상이라 말한다.

“울음은 우레와 천둥에 견줄 만하지. 지극한 정에서 우러나오는 울음은 저절로 터져나오는 것이니, 웃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혀균의 ‘슬픔이 지극하면 눈물이 나온다'라는 글에서 한 선각자의 애민정신의 정수를 엿볼 수 있다.

“나랏일은 날로 글러지고 선비의 행실은 날로 경박해져서 벗을 비판하고 등쳐먹는 것이 마치 길이 갈라져 천리나 어긋나는 것보다 심하다.”

조선 중기의 혀균의 ‘통곡 하고 싶은 세상'과 문명이 발달한 오늘날도 통곡 하고 싶은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광해군 때 문신인 장유가 벗인 이호 김세민에게 올린 제문이다.

“그대가 죽음으로써 공부를 더하고 싶었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얼마든지 커질 수 있는 업業이 다하지 못하고, 길이 후대에 이름을 떨칠 일도 다하지 못하여 사람들이 그를 알아주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그대를 애도할 일이고 또한 이 도道를 위해 길이 원통할 만하도다 슬프다, 이호여! 이것을 아는가? 아! 슬프다.”

벗이 스물다섯 나이에 죽자, 통탄하는 장유의 심정을 운명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인가!

박제가의 《초정전서》에 나오는 시詩이다.

“내 그대에게 말하노니 / 말을 삼가게나 / 글은 본래 무심無心하여 / 물 흐르듯 하는 걸세 / 땅을 따라 흐르는데 / 평平하고 기奇한 것이 어디 있겠나 / 새들이 우는 것은 / 소리 내려 함이 아니고 / 벌레들이 뛰는 것은 / 몸 단장을 위함이 아니라네 / 슬픔이 지극하면 우는 것이지 / 어찌 미리 울려고 마음먹어서이랴 / -중략-”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경지에 이른 박제가의 인간정신 극치미를 보여준다!

조선 중기의 문인이며 사간이었던 권해문의 ‘아내 숙인 곽씨 영전에 올리는 제문’은 부부지간의 정이 무엇인지 새삼 가슴을 저미게 한다.

“이제 그대는 상여에 실려 그림자도 없는 저승으로 떠나니, 나는 남아 어찌 살리. 상여소리 한 가락에 구곡간장 미어져서 길이 슬퍼 할말마저 잊었다오.”

추사 김정희의 ‘아내 예안 이씨 영전에 바치는 제문’이다.

“월하노인月下老人 통해 저승에 하소연해 / 내세에는 우리 부부 바꾸어 태어나리 / 나는 죽고 그대만이 천리 밖에 살아남아 / 그대에게 이 슬픔을 알게 하리.

머나먼 타향 유배지 제주도에서 아내의 부음 소식을 듣고도 갈 수 없는 당대 최고 지식인의 한탄은 시詩가 아니라, 우박이 쏟아지는 가운데 상여를 맺고 가는 곡청 같다.

조선시대 최고의 아웃사이더로 평가 받는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에 나오는 양생의 슬픈 사랑 이야기 한 토막이다. 이 글은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이혼율 상위국으로 변한 세상인심의 통탄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지난 하룻밤 당신과 만나 정을 나누었더니 유명幽明은 비록 서로 달랐으나 물 만난 고기처럼 서로 즐거울 뿐이었소. 장차 백년을 해로하여 했는데, 어찌 하루 저녁에 이별이 있을 줄 알았겠소.

님이시여 당신은 응당 달나라에서 날아가는 새를 타고 선녀가 되고 무산에 비를 내리는 낭자가 되리니, 땅은 어두침침해서 돌아볼 수가 없을 것이요, 하늘은 아득해서 바라보기가 어렵겠소.”

조선후기의 실학자로 서자로 태어났지만 박학다재하고 문장에 뛰어났던 이덕무의 ‘손아래 누이 서처의 죽음에 부처’라는 제문의 한 토막이다.

“너의 생사를 겪으니 나는 원통할 뿐이다. 내가 죽으면 누가 울어주랴? 저 컴컴한 흙구덩이에 차마 옥 같은 너를 어떻게 묻겠는가? 아! 슬프고 서럽다.”

정약용이 형 정약전의 부음 소식을 들은 뒤 1816년 6월 17일 두 아들에게 보낸 ‘약전 형님을 회상하며'는 편지글이다. 어수선한 조정과 변화의 회오리에 처한 조선 형국에서 형제애를 나누는 형과 동생의 따스한 마음에 저절로 고개가 수그려진다.

“율정에서 헤어진 것이 이렇게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구나. 더욱 슬픈 일은 그 같은 큰 그릇, 큰 덕망, 훌륭한 학식과 정밀한 지식을 두루 갖춘 어른을 너희들이 알아 모시지 않고, 너무 이상만 높은 분, 낡은 사상가로만 여겨 한 오라기 흠모의 뜻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아들이나 조카들이 이 모양인데 남이야 말해 무엇 하랴. 이것이 가장 가슴 에이는 일이다.”

자, 누란의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한 이순신이 ‘아들 면의 죽음을 당해 쓴 일기'.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은 통곡을 넘고 죽음을 넘어 비통한 장수의 아픈 마음이 담긴 일기다.

“하늘은 어찌 이리도 인자하지 못한가?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당하건만,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무슨 이치가 이다지도 어긋날 수 있단 말인가? 하늘과 땅이 캄캄해지고, 밝은 해까지도 빛을 잃었다.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를 갔느냐. 남달리 영특해서 하늘이 이 세상에 남겨두지 않은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재앙이 네 몸에 미친 것이냐? 이제 내가 세상에 산들 누구를 의지해 살겠느냐. 울부짖기만 할 뿐이다. 하룻밤을 지내기가 1년보다 길고도 길구나.”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며 당시 문장가 중 최고봉으로 알려진 인물인 김일손의 ‘떠도는 생은 한정이 있으나 회포는 끝이 없어―둘째형 김기손의 죽음에 부친 제문’의 글에는 사람들의 애환과 상처 형제애가 너무 명징하여 가슴을 울린다.

“나는 최근 며칠 동안 마치 미친 사람처럼, 백치처럼 인간 만사를 모두 분간 못하게 되었으니, 형님의 유골을 받들고 돌아가 선영에 장사 지내고, 다시는 벼슬을 구하지 아니하고 여생을 마칠 생각입니다.”

연암 박지원은 아내를 잃은 박제가를 위로 하며 보낸 편지를 이 책의 지은이는 해석하면서 《열자列子》‘탕문湯問’ 편에 ‘백아절현伯牙絶絃’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외롭고 쓸쓸해서 목 놓아 울고 싶을 때, 사방을 둘러보아도 마음 놓고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하나 없을 때, 혼자서 실어증을 염려하는 사람의 통곡하고 싶은 심정을 되돌아본다.

“아아! 슬프다. 나는 일찍이 벗을 잃은 슬픔이 아내를 잃은 슬픔보다 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중략- 그러나 벗을 잃은 슬픔에 이르러서는 그 고통을 가눌 길이 없다. 다행히 내게 눈이 있다 해도 누구와 더불어 보고, 귀가 있다 해도 누구와 더불어 들으며, 입이 있다 해도 누구와 함께 맛보고, 코가 있어도 누구와 함께 냄새를 맡으며, 내게 마음이 있다 해도 장차 누구와 더불어 나의 지혜와 깨달음을 나눌 수 있겠는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이익이 ‘벗 윤두서의 죽음에 올리는 제문’을 보자.

“죽은 자는 유감이 없고 산자는 더욱 힘써야 하는 법, 공은 진실로 사람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에 임할 때는 민첩하면서도 중용을 지키셨고, 예술에서는 편벽됨이 없었습니다.”

이 짧은 글은 시, 서화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로 불리었던 공재恭齊 윤두서의 예술혼과 사람됨을 극명하게 증명한 명문이다.

고려 말기 귀양 간 정도전이 외롭고 쓸쓸한 적소謫所에서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 〈가난〉'을 보자.

“그대의 말이 참으로 온당하오. -중략- 그대는 집을 근심하고 나는 나라를 근심하는 것 외에 어찌 다를 것이 있겠소?”

집안의 한 끼니를 걱정하여 남편을 원망하는 아내에게 화답하는 이 편지는 정도전의 쓴 시를 감상하면 더 애절하게 다가온다.

“가을 장마라 사람 절로 끊기니 / 사립문 일찍이 열지를 않네 / 울 밑엔 붉은 잎이 수북 쌓이고 / 뜰에는 푸른 이끼 자랐군그래 / 새들도 추위 느껴 맞대고 자고 / 기러기도 젖어서 멀리 날아오누나 / 슬프다 나의 도道는 왜 이리 적막한고? / 술에 아니 빠지고 무엇 하이오.”

이 시를 읊노라면 항상 마음만은 그리운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알수 있다. 이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는 대장부의 슬픔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최근 나는 한 마을에서 자란 친구 아버지의 부음을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차를 타고 고향으로 달렸다. 삼년 전 아버지가 저 세상으로 떠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우박이 내렸다.

고향 거금도의 신양마을 입구의 친구 집 앞에 도착하여 우선 친구 서너 명과 영정 앞에 서서 향을 피우고 절을 올렸다. 길거리에 친 천막 안에 앉아 비가 흘려내려도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선후배들은 떠날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상주의 집안 장지에 묘를 쓴 시간까지 함께 벗과 아픔을 나누었다.

일주일 후에 나는 다시 오촌 당숙의 부음 소식을 듣고 경희대학병원 영안실로 갔다. 벽제의 납골당으로 떠나기 전 새벽에 나는 터져나오는 울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못난 작은 아버지라 부르며 통곡하다', 거의 혼비백산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항상 다정다감하던 당숙, 아 무정한 세월이여! 이런 와중에 《울고 싶지? 그래, 울고 싶다》라는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우연의 슬픔이 내게 겹친 것인지, 필연의 슬픔이 내게 겹친 것인지 나는 모른다. 필자는 내가 2년 전에 쓴 졸시 아버지 2주기 제삿날에 바치는 헌시로 이 글을 마친다.

우중(雨中) 영결식


상가에서 꽃상여가 떠나도
장대비는 하염없이 내린다

상주들 눈시울 붉히며 꽃상여 따라 가고,
동네 길가에 늘어선 동네 늙은 아짐 아제들도 눈물바다다

마을의 수호신 당할매도
안산 숲에서 마을의 길흉을 점치는 신神 부엉이도
우중영결식을 지켜보는 오늘은 구경꾼이구나!

마을 앞 간척지에서
황금투구를 입은 벼들
비바람에 흔들리며 온몸으로 울고
사장에 선 큰 팽나무 두 그루도
하늘을 보고 누운 꽃상여 바라만 보고 있구나

뭍으로 친구도 자식도 모두 떠났어도
바위처럼 태어난 동네에서 살다 간
한 농부의 영결식이 거행되는 사장
제사弔辭는 울려 펴지지 않는다

지상에서 마지막 행렬

'간다 간다 나는 돌아간다 내 고향 땅으로'

상여꾼 곡청 따라
그가 걸었던 길 따라 무덤으로 간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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