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의 이분법

곤도 게이지로를 중심으로

검토 완료

김선주(k0784)등록 2005.05.17 13:59
소설 <토지>에는 수많은 일본인이 등장한다. 곧은 심성을 가진 일본인이 있는가 하면, 악하고 이기적인 일본인이 있기도 하다. 인간의 성격이 다양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쉽게 이해되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SBS 드라마 <토지>는 이러한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다. 때문에 '한국인=피해자, 일본인=가해자', '일본 순사=악인'이라는 이분법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특히 진주 경찰서장 곤도 게이지로는 제작진의 이러한 논리를 가장 잘 드러내는 인물이다. 원작에도 없는 인물인 그를 통해 '일본인=악인'과 같은 이분법을 강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인 지주 최서희와 일본인 경찰서장 곤도 게이지로는 서로에게 필요한 인물이다. 최서희는 경찰서장(권력)을 통해 신변을 보호받고, 경찰서장은 최서희에게 운영자금(재력)을 지원받는 등 이들의 관계는 상호보완적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이러한 공생 관계가 전혀 다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적대 관계로 설정되었다. 최서희에 대한 곤도 게이지로의 증오는 도대체 어떠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아쉽게도 드라마를 통해서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최서희가 용정 생활을 정리하고 진주로 이사온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지역 기관을 찾아다닌 것이다. 남편 김길상의 독립운동으로 인해 자신의 기반이 위협당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녀에게는 용정에서 교분을 나눴던 일본 여성이 써 준 소개장이 있다. 그녀는 진주경찰서장인 곤도게이지로를 찾는다. (그는 용정에서 최서희와 상당한 교분을 나눴던 일본여성의 남동생이다)

그러나 최서희의 예상과는 달리 곤도 게이지로는 끊임없이 최서희를 괴롭힌다. 김두수가 만주로 떠난 뒤로는 그가 담당했던 역할을 곤도 게이지로가 담당한다. 그러다가 그 역시 김두수와 비슷한 이유로 경찰서장직에서 경질당고, 복수를 다짐하며 진주를 떠난다. 그런 곤도 게이지로는 14년이 지나 진주경찰서장으로 돌아온 후 최서희를 괴롭힌다.(14년 동안 승진하지 못하고 이전의 직책으로 돌아왔다는 것도 납득하기가 힘든 부분이다)

드라마의 이러한 설정은 원작에서 최서희가 일본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과 상반된다. 각색을 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갈등을 부각시키고자 했다면 먼저 일단은 그들을 원만한 관계로 만들어야 한다. 원만한 관계에서 갈등하는 관계로 변화되고, 그 변화과정이 납득가능하다면 시청자들의 이해를 얻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또한 한/일의 이분법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단지 곤도 게이지로는 일본인이며, 경찰서장이기 때문에 악인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강요하고 있다.

원작자 박경리는 <토지>에서 일본인을 일방적으로 적이라 매도하지는 않는다. 이는 오가다 지로를 통해서 잘 나타난다. 국가보다 인간이 우선이라는 오가다의 사고는 원작자의 가치관이 나타난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박경리가 일본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즉 일본 제국주의는 분명 비판받아야 하지만, 일본 국민 모두가 매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원작자의 의식이 과연 드라마를 통해서 얼마나 드러나 있는가는 곰곰이 생각해 볼 부분이다.

<토지>가 식민지 시대 핍박받는 한국인과 핍박하는 일본인을 그려냄으로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한국인은 선이요, 일본인은 악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는 최근 거세지고 있는 반일감정을 이용해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의도적 장치일 뿐이다. 진정 시청자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는 삶의 다양성이나 인간의 다면성을 들여다보려는 시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는 곤도 게이지로를 포함한 일본인 경찰들을 통해서 드러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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