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대한민국에 살아간다는 것

검토 완료

소성렬(hisabisa)등록 2005.05.26 18:21
지난 24일 저녁 여느 때처럼 식사를 마치고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어디 재밌는 프로그램 없나. 이리 저리 돌리던 채널은 MBC에 고정됐다. 시간은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

#1

자녀 국적 포기 어머니 : "제발 쫓아내 주세요. 그러면 부모도 영주권 받을 수 있잖아요."

PD : "그게 무슨 말이죠."

자녀 국적 포기 어머니 : "해외로 추방당하면 미국에서는 받아준대요. 그 나라에서 탄압 받았다면서"

PD : "네."

#2

PD : "자녀의 국적을 포기했던데요?"

자녀 국적 포기 국책연구원 : "미국사람들이 돈 들여서 키워주겠다는데. 가진 것을 나쁘다고 하면 안 되지요."

PD : ….

#3

PD : "손자가 국적을 포기했던데요."

손자 국적 포기 전직 외무장관 : "아 그랬나요? 손자의 국적포기 여부는 자식들이 결정할 사항이지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잖아요."

MBC가 딱히 좋아서 채널을 고정한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 충격적인 인터뷰 장면을 보면서 자동적으로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 있는지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런데 모자이크 처리와 음성변조가 있어 그 잘난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사회 지도층이던 그렇지 않던 저렇게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굴을 공개한 채 인터뷰를 해야 되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제발 추방 좀 시켜 줬음 좋겠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던 여인의 얼굴이, '가진 것을 나쁘다고 하는 사람들이 문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정말 궁금했다.

어제는 또 하나의 이슈가 있었다.

'3억원짜리 귀걸이 2천5백만원짜리 웨딩드레스, 하루 숙박비만 7백30만원짜리 스위트룸'. 〈더 데일리포커스〉에 '세기의 럭셔리 웨딩'이라는 연예면에 난 배우 김승우 감남주 커플의 결혼식 기사의 첫 머리 문장이다.

이날 이들의 결혼식은 전 부총리 조순씨의 주례, 배우 장동건의 사회로 서울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 비스타홀에서 치러졌다. 나름대로 이름이 알려진 배우들인 만큼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결혼식이 거행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굳이 몇 천만원을 호가하는 웨딩드레스와 억대가 넘는 귀걸이가 필요했을까 하는 부분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반 서민의 입장에서 봤을 때 저건 너무 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비단 혼자만이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예들의 호화 결혼식에 관해 이런 말을 쓴다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가진 게 없는 것들이 꼭 가진 자들이 무엇을 하든 배 아파하는 것 아니냐'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제 어제 일련의 뉴스들을 보면서 참 이상하게 소외감이 들었다.

홀도 동떨어진 느낌. 가진 자들에 대한 부러움(?). 가진 자들은 이 같은 생각을 하면 가진 것 없는 자들의 질투쯤으로 치부하고 전혀 개의치 않고 있는데도 가진 것 없는 나는 왜 그렇게 작게만 느껴졌는지 모른다. 옆에서 '아이들 유치원 비가 벌써 나왔다'고 이야기 하는 아내를 보면서 그 소외감은 더욱 커졌다.

한쪽에서는 없어서 못살겠다며 자살을 하고 한쪽에서는 '가진 것 없는 것들이 그저 배가 아프니까 질투하는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살겠다고 고집하는 사회가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라는 생각이 들자 또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두 아이의 아빠로서 또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함께 나누며, 더불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앞으로도 이런 생각을 하며 작지만 큰 행복을 일상 속에서 느끼며 사는 그런 소시민이었음 좋겠다. 가진 자들은 늘 그랬듯이 그렇게 가지지 못한 자들을 멸시하든 무시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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