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시 환경미화원 사태 1년을 돌아보며.

누가 이들을 내 몰았는가?

검토 완료

김성혁(color9382)등록 2005.06.17 19:33
지난해 정읍시의 화두는 거창한 사업들의 추진도, 지역 경제 살리기도 아닌 환경미화원들과의 기나긴 싸움이었다.

누가 봐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던 승부는 여론몰이에 성공하고, 장기적 무관심 작전으로 응수한 정읍시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이 났다.

한 여름 뜨거운 천막에서 외로운 외침을 토해내던 미화원들의 생존권쟁취에 대한 투쟁은 급기야 농민들의 투쟁과 맞물려, 전주에서 치러지기로 한 대규모 농성이 정읍에서 열리며, 정읍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한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당시 농성 현장은 이 시대 공권력 수준을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농성 초반 얼마 되지 않는 시위자의 모습에도 행여 자그마한 일이라도 벌어질지 몰라 엄청난 병력을 배치하는 경찰력과 시위자가 시청 앞마당만 들어와도 전 출입문을 봉쇄하던 정읍시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겁쟁이 사자와 다른바 없었다.

해당 공무원들은 기자실에 자주 모습을 드리우며 미화원들의 예전 행태를 꼬집으며, 시가 추진하는 타당성을 그럴싸하게 포장했고, 이에 맞장구치며 죽일 놈들은 모두 미화원들이라고 열을 올리던 기자들의 모습을 보며 듣고 있던 나 역시 ‘미화원들이 무지 잘못을 했었나보구나’라는 판단을 했었다.

하지만 밧줄을 서로의 몸들에 휘감고, 장애아동마저 처절한 사투의 현장으로 포함시키며 시장실에 들어가 한마디만 들어달라고 소리치던 그들의 모습을 보며 최소한의 인간미를 보이지 않는 정읍시의 모습에 나 역시 젊은 피가 살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만의 조사에서 미화원들의 잘못을 분명 느꼈지만, 모든 사항은 인건비 절감도 아니고 미화원들의 잘못도 아닌 총체적으로 정읍시가 앞서 가는 행정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튀는 행정이었지만 당시 상황은 자충수를 두고 있는 모습이었다.

권력은 그 크기에 비례하는 만큼의 책임이 따를 때 정당성이 확보된다.

이유야 어찌됐건 잘못한 미화원들의 문제가 초반에 흐트러졌을 당시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신속한 대화를 시도하고 끝이 날 때까지 대화가 이어졌어야 된다.

얼마 되지 않는 농성자들을 향해 막강한 공세를 퍼부은 공권력은 당시 지역 권력의 야비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또한 그 과정에서 문제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자들은 뒷전으로 빠진 채 애꿎은 이들의 희생을 강요했다는 점에서 권력의 비겁함을 드러냈다.

여기에 권력의 야비함과 치졸함을 두 눈으로 지켜보던 언론은 소수 약자 편에 서지 않고 완벽한 방관과 오히려 약자에게 독화살을 쏘는 독설들을 퍼부었다.

사태가 종지부를 찍자 지역언론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깨끗해진 정읍을 홍보하기에 앞장섰고 종이신문들의 지면에는 ‘깨끗한 정읍’이란 광고가 넘쳐났다.

정치적으로 상대가 약해 보이면 잔인하리만큼 매도하는 권력과 이를 추종하는 언론은 이제 소수가 아닌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다수의 시민들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정읍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미화원들은 정읍시의 대단한(?) 배려로 완전 실직에서 구제돼 여기저기서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의 입에서 요즘 심한 상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우린 속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고 넋두리 하는 한 미화원의 모습에서 패배자의 모습을 느끼게 된다.

결국 완전 밥그릇을 차버리려 했던 골리앗이 밥그릇 없는 맨 땅에 살점 없는 뼈다귀를 던져주고 ‘우리가 너희에게 배려했으니 이제 딴소리 말아라’고 하는 것과 같다.

미화원 사태가 1년이 지난 지금 시민을 비롯한 그 누구도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

하지만 지난해 사건을 되돌아보며 우리에겐 많은 반성과 책임이 필요하다.

이는 약한 정읍의 소수 계층을 상징하는 미화원들의 입가에 미소를 누군가가 뺏어갔기 때문이다.

<<끝까지 투쟁했던 당사자들을 만나다>>

지난해 정읍시청 앞에서 천막을 치고 끝까지 투쟁을 하며 무더운 여름의 뜨거운 날씨보다 시민들의 싸늘한 시선이 더 힘들었던 8명의 환경미화원들은 덕천면 재활용선별장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 덕천공단을 이리저리 헤매다 천변끝자락에 자리 잡은 이들의 근무지를 어렵게 찾아 들어가려는 순간, 강하게 후각을 자극하는 쓰레기 냄새에 순간 심호흡을 해야 했다.

나의 이런 모습을 누가 볼까 두려워 재빨리 작업장에 들어가 이들을 찾으니 이들은 뜨거운 사무실 열기를 고스란히 받으며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었다.

내 방문을 반가운 얼굴로 맞아주는 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

식사를 마친 당시 해고복직투쟁위원장이던 김익선씨는 얼마 전 다른 신문사와의 인터뷰 내용으로 시청으로부터 곤란을 겪어 그다지 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사진을 찍지 않고 민감한 내용은 묻지 않겠다는 말에 자연스레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던 김씨는 당시 투쟁이 자칫 헛되지 않을까 라는 불안감이 요즘은 많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료 가운데 몇몇은 ‘우리가 이런 대우를 받으려고 그런 고생을 했는가’라며 넋두리를 하곤 한다고 덧붙혀 말했다.

원하던 급여문제나 자신들의 주장이 관철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최종 합의석상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철저하게 배척당한 것이 서운하다는 김씨는 이번달 있을 재협상에서 좋은 결과가 있길 기대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근무지는 자동화로 작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인력이 턱 없이 부족하다는 김씨는 대화가 길어지자 원래의 사람 좋은 얼굴로 돌아오고 있었다.

조금은 민감한 부분(당시 민노총 입장)을 묻자 그저 가볍게 웃으며 서운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말하기는 그렇다고 답변을 회피했다.

이들 근무지를 외곽에서 사진 몇 장 찍고 있자 옆집 아저씨 같던 평소 안면이 있는 한 미화원은 고맙다며 활짝 웃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한때 이들은 엄청난(?) 급여를 축내는 정읍시의 고급인력이었다.

그러한 이들에게 세상은 ‘너희들은 신분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가져가니 모두 물러가라’고 내몰았다.

이들은 죽기 살기로 투쟁했지만 결국 한 가정의 가장으로 책임을 위해 지역의 후미진 한 귀퉁이에서 라면을 먹으며 버티고 있다.

전북 최초의 환경미화원 민간위탁 사태는 이렇게 조용히 종지부를 찍고 있었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