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치는 ‘서민’ 대통령과 ‘엇박자’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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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일(true4kj)등록 2005.06.21 11:20
골프 치는 '서민'대통령과 '엇박자'의 두 얼굴

2002년 한일 월드컵은 한국축구 4강 신화와 함께, 전통적으로 2박자나 4박자 일색이던 응원 문화에도 파격을 몰고 왔다. 붉은 악마의 '엇박자'는, 한국 대표팀 경기가 있는 날이면 대~한민국'이라는 연호와 함께 수천만 겨레의 몸짓을 하나로 통일시켰으며, 심지어는 매우 신경질적으로 내뿜기 마련인 자동차 경적 소리마저 종종 어긋난 4박자 리듬을 타게 만들었다.

한편, 그해 12월에 치뤄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특유의 결단과 용기로 기성 정치권에 '엇박자'를 걸어온 후보가 당선되었다. 축구장 엇박자가 한국축구를 세계 4강에 올리는 데 기여했다면, 선거판 엇박자는 기득권층과 기성정치 구태에 찌든 민심을 한데로 모아, 이른바 '서민'대통령을 낳았던 것이다.

그렇게 당선된 '서민'대통령이 종종 골프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달 29일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무총리 등 3부 요인과 이른바 골프장에서 어울리더니, 지난 18일 오후에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 윤광웅 국방부 장관 및 이상희 합참 의장 등 군 수뇌부와 골프 회동을 하였다. 청와대 대변인 말을 빌리자면, "노 대통령이 군 안보 관련 고위 인사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격려하기 위해 서울 인근 한 골프장에서 운동을 하고 만찬을 함께 한 것"이라고 한다.

자연인 노무현이 골프를 치든 카지노에 가든 딴죽걸 일이 아닐 터이다. 하지만 대통령 노무현은 사정이 다르다. 한국은 하루 10달러 정도면 아무나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아메리카 대륙이 아니다. 모름지기 지난 대선에서 그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은 생전에 골프채 한번 쥐어보지 못한 서민들이 절대 다수일 것이다. 이른바 '서민'이미지로 당선된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 기반인 서민 대중과 '엇박자'로 걸어갈 때, 그의 정치 생명은 서서히 시들어갈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골프장으로 난리법석이다. 특히 전남서남해안 지역에는 이른바 ‘J프로젝트’라 하여 농경지에다 골프장 30개를 만들어 세계적인 골프 단지를 조성하는 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해남과 영암군 일대 주민 수천여 명이 문전옥답을 강제로 수용당할 위기에 처해 있는 시기에,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공개석상에서 “골프장 100개만 들어서면 지방 건설업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지역 주민들의 속을 긁어대고 있다. 더불어 해남군은 4만 명 가까운 군민이 ‘J프로젝트’에 찬성 서명을 하였다는 날조된 보고를 전남도와 문화관광부에 올린 바 있다.

골프장과 관련된 자료를 아무리 뒤적여 보아도 골프장을 건설하여 지역경제에 보탬이 된 사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럼에도 지금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계획하고 있는 골프장은 무려 200여 개에 달한다. 청와대에서부터 기초단체에 이르기까지 골프장을 만들지 못하여 안달이 난 모양이다. 도대체 왜들 그럴까? 나라 살림을 책임져야 할 관료들 모두가 이른바 ‘건설 마피아’에 발목을 잡힌 것은 아닐까?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골프 실력이 궁금하다. 어쩌면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로 그의 골프 실력은 부쩍 늘었을 법하다. 그렇게 자주 골프장을 드나드는 것을 보면. 더구나 함께 회동한 인사들이 대통령 체면 살려 주느라고 살짝 져주는 경우도 더러 있을 터이니, 그로 인하여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골프실력을 과대평가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것처럼 자신의 정치적 지지 기반인 서민대중의 생활수준 또한 과대평가하면서, 참으로 속 편하게 국정에 임하고 있는 듯하다. 넓게 둘러 친 골프장 담장 안에서는 고용불안과 생계불안으로 고통 받는 국민의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을 터이므로.

엇박자는 ‘파격’이다. 지난 2002년처럼, 파격은 때때로 억압당하던 대중의 에너지를 분출하게 하고,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하지만 이즈막에 대통령이 골프장에 내딛는 엇박자는 따분한 전통 리듬이나 기성정치에 어긋나게 하여 서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 ‘엇박자’가 아니다. 반대로 서민 대중의 소박한 바람을 짓뭉개버림으로써, 오히려 대통령 자신의 반대 세력이었던 기득권층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발걸음인 것이다. 이렇듯 엇박자에도 두 얼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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