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서 온 비바리, 구미서 폭삭 속았수다”

감수광, 감수다 말에 버스운전기사 기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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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득렬(papercup)등록 2005.06.27 20:02

26세에 처음 육지땅을 밟았던 비바리 현은숙씨 ⓒ 전득렬

“제주도 제주시 삼도1동 580-17번지가 태어난 곳이며, 부모님은 아직 그곳에 살고 계시죠. 별이 쏟아지는 제주도의 푸른 밤하늘을 보며 꿈을 꾸었고, 초록빛 바다의 속삭임을 들으며 자랐죠. 그리고, 결혼과 함께 처음 뭍(구미)으로 오면서 폭삭 속았죠.”

LG화재 엘플라워대리점 현은숙씨(37·구미 비산동)는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다는 제주도의 속설에 보답이라도 하듯 5녀 1남 중 4째 딸로 태어났다. 제주도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모두 마친 그녀는 구미 금오공대를 졸업하고 사업을 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26세에 결혼을 하면서 처음 육지 땅을 밟은 섬마을 처녀였다. 부모님의 소개로 만난 남편도 알고 보니 제주도 사람. 제주도 처녀 총각이 만나서 뭍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며 빙긋이 웃는다.

제주도의 푸른 하늘과 초록빛 바다가 그립다는 그녀. ‘자리물회’와 ‘옥돔’ 그리고 ‘한라봉(감귤류)’이 눈에 어린다는 그녀에게 구미에서 ‘폭삭 속았수다’라는 말뜻과 그 사연을 물었다. ‘폭삭 속았수다’라는 말은 ‘정말 고생했다’라는 말뜻이며, 그 고생한 사연은 ‘길을 익히느라고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돌아다닌 일’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녀가 제주도에서 구미에 처음 와서 ‘폭삭 속은 것(정말 고생한 일)’은 섬과는 전혀 다른 육지의 도로체계와 빽빽이 들어서 있는 높은 건물들 때문에 어지러울 정도였다고. 장방형(직사각형)형태인 제주도와 방형(정사각형)형태인 구미에 적응하지 못했고, 집 앞 골목 이외는 길을 몰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고생한 시절을 회상했다.

남편이 출근한 후 도로 체계를 익혀야겠다고 작정한 그녀는 몇 달 동안 13번, 14번 시내버스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모두 출근한 후 버스에 사람이 가장 없는 시간인 10시쯤 버스에 올라 퇴근 무렵까지 무작정 구미 전역을 돌아다녔다. 매일 버스에 올라, 하루 종일 버스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고 있으니 버스운전기사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

운전기사의 ‘경계어린 눈빛(?)’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현은숙씨. 매일 보는 운전기사에게 아는 척이라도 하고, 인사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버스에 탈 때는 ‘감수광~’ 하고 말하고, 내릴 때는 ‘감수다~’라고 말했더니 운전사가 기겁을 하더라는 것이다.

‘감수광’은 ‘왔수다(안녕하세요)’의 뜻으로 사람을 만날 때 하는 제주도식 인사이며, ‘감수다’는 헤어질 때 ‘갑니다(안녕히계세요)’라는 뜻의 인사라고 한다. 그 말뜻을 모르는 육지의 운전기사는 매일 버스를 타고, 하루 종일 창밖만 바라보는 여자가 기껏 하는 이야기라고는 ‘감수광’과 ‘감수다’밖에 없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

그렇게 고생스럽게 길을 익히며 ‘속았지만(고생했지만)’ 아파트부녀회(비산동 벽산아파트) 감사와 입주자대표자치회의 총무를 맡으며, 구미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속의 길’을 알게 되었고,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들의 친절하고 정(情)이 넘치는 ‘진정한 길’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길도 익히고, 사람들과 친해지고, 마음대로 다닐 수 있게 되었을 때 쯤 아는 사람의 소개로 보험회사에 입사해 일을 시작했는데 벌써 10년이다. 얼마 전 교보생명에서 LG화재로 둥지를 새로 옮겼는데 생명보험과 화재보험의 장점들을 두루 섭렵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고 한다. 열심히 해서 사람을 끌고 가는 ‘카리스마’도 배우고, 유능한 설계사를 배출하는 혜안도 넓혀 앞으로 ‘교육파트’에서 일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1남 1녀의 자녀들 두고 있는 현은숙씨는 주부, 엄마, 아내, 직장인의 1인 4역을 하느라 자녀들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못해주고, 신경을 더 많이 못써 준 게 가장 미안하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달에 구미 자연생태학교에서 실시하는 대마도생태탐사를 떠나는 딸 김수경(12·비산초등 5년)양의 여권사진이라며 지갑 속에 간직한 사진을 보여주는 그녀의 손길에는 이미 사랑이 가득했다.

비바리 현은숙씨가 추천하는 제주도 특급관광지 3선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밤 그 별 아래, 이제는 더 이상 얽메이긴 우리 싫어요. 신문에 TV에 월급봉투에 아파트 담벼락 보다는 바다를 볼 수 있는 창문이 좋아요…> 성시경의 ‘제주도의 푸른밤’ 노래 말처럼 시리도록 아름다운 제주도, 안 가보면 후회한다는 3곳을 현은숙씨가 추천했다. 다가오는 휴가철, 제주도 이곳엔 꼭 가보자.

1.송악산 : 해발104m의 나즈막한 언덕배기 산으로 해안의 일본군 진지동굴을 볼 수 있으며 전망대에선 멀리 가파도와 마라도를 볼 수 있다. 2.형제섬 : 큰 섬과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방향에 따라 두 세 개로 보이는 재미있는 섬이다. 특히 낚시를 좋아 하시는 분들에겐 인기가 ‘짱’이다. 감성돔, 뱅어돔 등 배낚시와 바다낚시로도 유명하다. 또 하나, 행운을 얻고 싶은 사람은 송악산에 올라 형제섬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보면 일년 운이 좋다고 한다. 경치도 수려하다. 3.사계리 해안 : 검은 모래로 3만 여 평의 넓은 모래사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화진해수욕장이있다. 주변 경관이 아름다우며 산방산과 용머리 해안이 서쪽 해안선을 감싸 안고 있다. 연인들의 해안선 드라이브는 필수. 공항에서 신제주로 가서 95번 도로를 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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