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를 통해 바라 본 우리사회

편견으로 가득찬 어른의 세계를 어린이의 눈으로 고발하다

검토 완료

지용진(windbreak6)등록 2005.08.04 16:36
지금 막 너무도 부끄러운 마음에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습니다. 500여 페이지쯤 되는 두툼한 그 책은 넬 하퍼 리가 쓴 <앵무새 죽이기>라는 책이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익히 들어서 새로울 건 없었지만 따끔한 충고처럼 새겨진 글을 보면서 지난 세월의 나를 돌아봤고 다시 저절로 혼란스러운 요즘의 우리 사회를 보게됩니다.

거두절미하고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작금의 우리 사회를 보고 있으면 자꾸만 <앵무새 죽이기>에 등장하는 '밥 이웰'이란 사람이 떠오릅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그 사람의 분신(分身)이 여기저기서 경거망동(輕擧妄動)한 행동을 해대며 싸돌아다니는 모습이 책 속에 묘사된 그의 이미지와 잘 포개집니다. 생각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진 걸까요? 어쨌든 우리가 직면한 오늘의 사회는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건 분명해 보입니다.

온갖 부도덕으로 오염된 기형적 사회

'안기부의 불법 도청', '부동산 값 상승', '항공사 노조 파업', '기업의 비자금을 둘러싼 내부 갈등'. 언론에 연일 보도되며 우리들의 마음을 더 새까맣게 칠해놓는 뉴스들입니다. 하기야 이제는 뉴스라고 하기에도 그다지 놀랄 일들은 아닙니다. 이미 사람들은 이런 몰상식한 사건들에 질려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열거된 사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가지 공통점이 스며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부도덕성.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도덕이 실종됐다"느니 "인심이 점점 흉해진다"느니 하는 자조 섞인 푸념을 늘어놓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우둔함일까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사회를 움직이는 저 멀리 있는 지도층들은 죽었다 깨나도 느낄 수 없는 훈훈함이란 게 사회의 곳곳에 아직은 더 짙게 베어있으니까요.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복잡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올해가 광복 60주년이란 사실을 염두에 놓고 생각해보면 지난 60년의 시간동안 형성돼 온 사회의 구조와 의식이 아직 덜 성숙했나 봅니다.

근대화를 명분으로 내세운 천박한 자본주의의 감염으로 사회는 빠르게 발전했고 민주주의를 짓밟는 군사독재의 이데올로기는 숱한 희생을 요구했습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일로(一路)를 밟아온 사회의 필연적인 반응일까요? 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해석 할 길이 없어 나름대로 진단해 봅니다.

과정이야 어찌 됐건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습니다. 갈채를 보낼 일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사회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만 발전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는데 있다는 겁니다. 어찌 세상사란 게 좋은 쪽으로만 흘러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추악한 과거를 들춰내서 따지자는 게 아닙니다.(굳이 과거를 들먹이지 않아도 될 만큼 오늘의 추악함도 넘쳐흐르지만). 다만 하도 답답한 마음에 도대체 왜, 무엇이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불러일으키고 사람들의 마음에 퍼런 멍을 새기는지, 그것만이라도 알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 간절한 마음을 옮겨 봅니다.

어린이, 어른에게 물어보다

"옳지 않다는 건 알겠는데, 도대체 무엇이 옳지 않은 지 모르겠어요". 자신의 아빠가 흑인을 변호하는 게 죄를 지을 만큼 잘못됐다는 사람들의 지독한 편견에 대해 아들인 젬이 물어보는 대목에서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그리고 한참 생각해 보았습니다.

<앵무새 죽이기>의 의미에 대해서 말입니다. 거창한 의미를 부여할 것 같아 선뜻 표현 할 수는 없지만 제 소견으로는 '앵무새'는 바로 소외 받는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 책은 전통이란 그럴듯한 가치를 내세워 편견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철저히 고발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편견이란 것도 대부분 고집에 다름 아닌 보잘 것 없는 것인데 신기하게도 그 속에는 막강한 힘이 내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고한 '앵무새'는 그 힘에 눌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쓰라린 고통을 당합니다. 두꺼운 선을 그어놓고 그 안으로는 절대 침범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 것과 같은 논리로 말입니다.

과거 정권의 안기부에서 일삼았던 '불법도청'에 대한 파문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자체로도 어안이 벙벙해집니다만 더 충격적인 것은 도청을 당한 인물들이지요. 그것도 불법대선 자금을 논의하기 위해 사전모의를 했다니 우리로선 도무지 용서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 겉과 속이 터무니없이 다른 그들의 언행(言行)이 치를 떨게 하기 때문이죠.

사실, 책 한 권을 읽고서 이렇게 거창하게 써내려 가는 것이 어느 면에서는 비약으로 비쳐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점은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2005년 8월, 우리는 너무도 숨이 꽉 막힐 정도로 답답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앵무새 죽이기>는 자신의 논리로만 세상을 규정하고 편견을 기득권으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합니다. 아집(我執)과 독선(獨善)으로 한쪽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일그러진 시선을 향한 따뜻한 충고이기도 하지요.

이 무더운 여름, 오늘의 한국사회를 보면서 짜증이 계속 나는 것은 비단 저 내리쬐는 햇볕 탓으로만은 돌릴 수 없겠지요.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