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가는 폐교, 렌즈에 담다

외로운 그네만 학교를 지킨다고 바람이 전하는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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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득렬(papercup)등록 2005.08.05 08:48

쓸쓸함을 렌즈에 담아 희망을 현상한다 ⓒ 전득렬

해질녘에 도착한 농촌마을의 폐교. 아이들이 뛰어 놀았을 운동장에는 이미 잡초가 무성했다. 스산한 가을바람에 제 몸을 흔들며 외롭게 운동장을 지키며 서 있는 녹슨 그네. 금방이라도 아이들이 소리치며 뛰어 나올 것 같은 정글짐.

깨어진 교실의 유리창을 마지막 까지 지켜보겠다며 포호하는 낡은 사자 동상. 거미줄을 걷어내고 낡은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어두운 복도 끝으로 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고 이내 어둠이 밀려들어왔다. 가지런히 놓여 있을 줄 알았던 책걸상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솜씨를 뽐내던 게시판의 그림들도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우거진 숲을 헤치고 들어간 폐교를 처음 대면했을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전성시절의 활기 넘치는 학교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폐교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슬픔 속에 가리워져 있었던 활력 넘치는 우리학교의 모습들이었어요. 전국 농촌 산간지역 초등학교와 분교 30%이상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손에 묻은 흙을 털고 도시로 떠나기 시작하면서 정감 넘치는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쓸쓸함과 공허함만 농촌에 남아 있었죠. 시간이 더 지나 폐교마저 사라지면 그 쓸쓸함 마저 잊혀질까봐 렌즈에 담았습니다."

폐교만 촬영한지 3년. 처음에는 마음까지 황폐해지는 줄 알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리움으로 채워진다는 서윤우(36)씨. 구미 현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평소 사진에 취미가 있었던 터라 흑백사진에 몰두했다. 친분 있는 교수들의 연구실에서 밤샘을 해가며 사진 한 컷을 위해 인화지 100장을 사용한 적도 있다. 인화지 한 장에 25장의 사진이 나오는 것을 감안하면 2천5백장의 사진 속에서 단 한 장의 사진만을 건진 셈이다.

사자상만이 외롭게 학교를 지키고 있다 ⓒ 서윤우

멋진 풍경을 찍고, 예쁜 것만 찍으면 좋은 사진이 될 줄 알았던 그에게 폐교는 좋은 사진 이상의 훌륭한 공부가 되었고, 철학적으로 고찰하는 시간까지 주었다. 시대의 흐름으로 다가온 폐교의 아픔과 그 폐교를 살려 새로운 공간으로 승화시키는 일련의 시간들 속에 그가 있었다. 사진 속에 담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잊혀져가는 우리시대의 분교와 작은 학교들을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도 담아줘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대학진학을 결심했다.

2000년 31살에 경주대학교 사진영상학과에 입학해 만학도가 되었다. 일상적으로 무조건 찍어왔던 사진 속에 더 많은 철학을 담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며 제대로 된 사진을 찍어 볼 참으로 진학했다. 그동안 쌓은 실력으로 그해에 문을 연 ‘서윤우웨딩스튜디오’를 운영하며 학비를 조달했다. 처음에는 호구지책으로 문을 연 웨딩스튜디오였지만 그에게 웨딩은 또 다른 선물을 주었다.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실무에서 바로 실현해 인생의 이야기를 담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폐교의 쓸쓸함을 담는것은 힘들지만 의미있는 일이다 ⓒ 서윤우

“웨딩사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었어요. 모든 사진이 그렇겠지만, 특히 웨딩은 조명과 촬영각도에 따라 사진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죠. 오늘 결혼한 사람이 내일 다시 결혼하지 않는 것처럼 촬영 때 마다 모델이 다르고, 스토리가 달라 늘 흥미진진하게 되는 거죠.”

웨딩이 새로 시작하는 한가정의 행복한 순간을 평생 기억하는 작업이라면 폐교는 한 학교를 역사속으로 마감하며 잊혀져가는 기억들을 지워지지 않게 하는 작업이었다. 찍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이야기하며, 처음과 끝이 항상 같으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진 한 장에 모든 것들을 담는 다는 것은 분명 흥분되는 소중한 작업들이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가족사진과 베이비사진 등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도 렌즈에 담았다. 실력을 인정받아 구미1대학, 중부대학교, 현일중·고등 졸업앨범 작업도 맡았다. 창원전문대 멀티미어학과 김대성교수와 일본 젊은이들의 생각을 렌즈에 담았던 일을 생각하며 그는 야심 찬 봉사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세상에 태어난 아기가 부모의 품에서 미처 자라지 못하고 떠나야하는 현실과 미혼모의 이야기를 렌즈에 담아 세상과 이야기 하는 것이다. 폐교의 쓸쓸함과 슬픈 우리 인생사를 렌즈에 담아 희망을 현상하는 그의 인생이야기는 힘들지만 세상을 밀어가는 큰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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