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 병장'들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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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열(savageryu)등록 2005.08.05 20:39
나는 요즘같이 나 자신이 돈이 별로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뭐, 별달리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휴가를 계획했는데 월급도 많은 놈들이 파업한다고 공항가서 욕할 돈이 없고, 차를 몰고 대형마트 주차장에 가서 직원이 무례하다고 뺨을 때릴 돈이 없고,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의 공이 날아온다며 사과하는 골프장 캐디를 구타하려고 해도, 공치러 갈 돈이 없는 것 뿐이다.

돈을 못 벌어서 안달이 난 이 세상이지만, 나는 그래도 나 자신이 남보다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의 생활을 내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잠시 벗어나 있고, 경제활동의 압박에서 잠시 자유로운 상태니까. 너무 복에 겨운 소리인가?


위의 세 가지 일을 보면서 하나 느꼈던 것이 있다. 우리나라 참 많이 좋아졌다는 거다.

뭐, 이 좋아졌다는 것은 정말 뭔가 긍정적으로 향상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되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유도하거나 강요하는 가치가 일반화되어 '인간존중 혹은 인본주의'가 사라져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고 할까.

연봉이 얼마인가에 따라 파업할 수 있는 권한이 사회적으로 생기거나 주어지는 것이 아님에도 자신보다 연봉이 많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노동자에 의한 다른 노동자의 파업을 제한'하는 효과를 낳고,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직원의 정중한 사과나 정당한 요구에도 '왕'인 손님으로서 그 무례를 못 참아 손을 대는 '인간 멸시'의 풍조를 낳는 시대가 아닌가 이 말이다.

꼭 자본주의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 우리 사회 내가 생각해도 매우 권위적이고 마초적이다. 얼마나 권위적이면 대통령이 '권위'가 없다며 대통령감이 아니라는 말을 그렇게도 쉽게 하고, 얼마나 마초적이면 남성의 특정부위를 생방송에 내보낼 생각을 소위 '언더'를 지향한다는 인물들이 하겠는가.


마르크스가 그렇게도 주창했던 '노동자 계급의 순결성'은 이미 '사전'에나 존재하는 말이 되어버렸다. 단위 노조가 맛이 가는 것도 그렇고, 최고 상급단위의 하나인 한국노총이 뒷돈을 받는 짓거리를 하다가 전직 위원장이 잡혀가지를 않나, 비정규직의 발언을 막고자 정규직 대의원들이 총회장에서 가로막는 민주노총이 있지를 않나, '얘네들이 파업을 한다는데 연봉이 1억이래.'라는 방송의 줄기찬 보도들에 다름아닌 노동자 자신들이 그렇게 목청을 돋우어가며 '**놈들'이라고 욕을 하는 것을 보면 참 세상 좋아지지 않았는가?

얼마 전 가서 바라봤던 인도라는 사회에는 우리나라보다 못사는 사람들이 최소한 20배는 넘을 거다. 물론 잘 사는 사람도 최소한 10배는 되겠지만서도...(인구가 우리 20배를 넘어가니까.)

저개발된 인도의 보통 사람들은 풍요로운 자본주의가 주는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산다. 불결한 환경과 미흡한 공공서비스, 적은 수입과 열악한 복지 시스템 등 인도의 생활환경은 우리나라보다 참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져 있다.
그런데도, 인도 사람들의 미소는 참 해맑았다. 아이나 어른이나 상대방에게 뭔가 기대하는 것 없이(사실, 인도의 서민들이 서로 주고받을 것이 그리 많겠는가?) 부족하나마 평화롭게 살아간다.

계급이라는 치명적인 '원죄 시스템'이 존재하는 나라이지만 내가 만난 한 사람, 한 사람과 그들의 공동체는 매우 선했다. 그들은 비행기를 탈 돈이 없어도 행복했고, 대형마트를 자기 땅에 갖지 않아도 동네의 소박한 시장에서 행복했으며, 거리 곳곳마다 은행이 없어도 은행 갈 일이 없이 행복했고, 골프가 뭔지 몰라도 행복했던 것 같다.
우리보다 경제수준이 낮아도 그들의 행복은 우리와 비교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최소한 한국 사회의 우리들보다 덜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이 누리는 나름의 복함이랄까.


잘 사는 것, 풍요롭게 사는 것을 무작정 '악하다.'고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길을 따라 걷다보면 그것도 요즘에 맹위를 떨치는 '신자유주의'의 뒤를 따르다보면, 사람대신에 이익이 최우선이 되고, 그 앞에서 무너지는 수많은 인간 중심의 가치들을 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작은 시골 마을이 '개발' 앞에서 서로 뒤엉켜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이익 앞에 절대 충성하는 사람들을 키워내고, 중산층을 붕괴시켜 노동자들이 노동자들의 발목을 잡게하는 사회, 학교에서는 아무리 아니라고 가르쳐도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이미 그러한 '이윤의 논리'가 관철되고 강제되는 사회다. 사람을 이익보다 앞에 놓으라는 이야기를 아무리 하여도 아이들조차 '돈 쓰는 재미'에 물들어간다. 하기사 요즘은 놀려고 해도 돈 안쓰고 놀 수 있는 곳조차 없지만서도....


내 친구 하나는 저 위에 언급한 사례들을 보고, 모두가 '말년 병장'이 되고자 하는 풍조가 만연하다고 했다. 이등병 때에 그렇게 고생하고 당하면서 '내가 말년이 되면 저러지 말아야지.'하고 생각을 하는데, 정작 누구나 말년이 되면 손도 까딱이기 싫어하고 물 한모금 마시려고 단 30m도 걷기가 싫어한다. 절대 강자의 위치에서 사람을 리모콘으로 부리며 자신의 로보트 하인처럼 부려대는 군대의 말년 병장의 '심보'가 사람들에게서 보인다는 거다.

하기사 기회만 되면 자본주의, 신자유주의가 허락한 '절대 강자'의 위치에 섰을 때, 겸손하고 예의바르고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행동을 하기가 과연 쉬울지 나도 경험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그러나 개개인의 삶에서 이렇게 깊숙하게 관철되어 가는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인간 경시' 풍조를 보면서 씁쓸하고도 씁쓸하다.


세상에 말년 병장만 있다.

아니면, 최소한 말년 병장이 되고자 하는 사람만 있다.

그도 아니면, 최소한 기회만 닿으면 말년 병장이 될 사람만 있다.

이 '병장'들의 사회를 도대체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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