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기는 매한가지...이열치열의 피서법

콸콸 솟아나는 차가운 지하수로 하루의 노고를 씻어내는 시간은 지상최고의 피서

검토 완료

이재은(jirisani)등록 2005.08.18 15:48

방수를 위한 방수시트의 완성 ⓒ 이재은



더위를 피한답시고 아침 5시 30분에 기상하여 식당가를 돌다가 아침식사를 하고 현장에 도착하면 6시 반 경, 그 때 부터 김목수와 나는 그 무거운 전기대패와 엔진톱을 들고 나무와 씨름을 합니다. 자르고 다듬고 또 장부를 여기 저기에 파고.. 바닥 면적이 가로와 세로가 각각 2m 남짓한 정사각형 꼬마 원두막을 짓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작업일 줄이야...

햇볕을 피하라고 친구 녀석이 만들어 준 차광막은 이른 아침과 오후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밀짚모자를 둘러쓰고 차라리 긴 소매의 셔츠가 따가운 태양광선이나마 막아주니 남들이 볼 땐 마치 봄가을의 복장인 듯 하지만 우리 둘에겐 오히려 다행입니다.

흐르는 땀이 온 몸을 적시는 건 잠시, 안바깥의 옷들은 모두 소나기에 젖은 꼴이 되어 뜨겁게 달구어진 사지를 휘감으니 팔다리를 사용하여 나무와 씨름하고 공구를 잡는 것도 크나큰 고역이 됩니다. 차라리 속옷을 벗어버리자. 긴 팔 상의에 긴 다리의 하의, 이렇게 바깥 옷 하나씩만을 걸치니 남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뙤약볕에서 '물에 젖은 생쥐' 구경만 실컷 했을 것입니다.

내부에서 올려다 본 모습 ⓒ 이재은


"김형, 우리 낮으로는 한 더위를 피해 오후 늦게 시작합시다"라는 약속도 점심을 먹고나면 여지없이 깨어집니다. 그늘에 있어도, 대형 선풍기를 틀어놓아도 덥기는 매 한가지. 오히려 마음은 더 덥기만 합니다. 흘러내리는 소나깃발 같은 땀방울은 눈앞에 무질서하게 나뒹구는 저 나무들을 질서정연하게 다듬고 네 개의 주초석 위에 짜맞추기 전에는 멈추지 않을 것 같아 쉬는 것도 뒤로 한 채 곧바로 작업을 시작합니다.

귓볼에 땀띠가 난 줄도 모르고 모기의 탓으로만 여겼는데 이제는 한 쪽 귀마져 땀띠가 생겨 따갑고 쓰리고, 여기에 겹쳐서 아랫턱에도 땀띠가 송글 송글 땀방울 만큼이나 솟아나 무디어진 양 손의 작업속도를 더더욱 느리게 만듭니다.

완성된 원두막 ⓒ 이재은


그 주의 후반쯤에는 어디서 오셨답시고 대여섯 대의 승용차가 일렬로 공장을 방문하였습니다. 에어콘의 냉기를 보존하기위해 우리들 바로 옆에다 차의 시동을 그대로 걸어놓으니 순식간에 주변의 온도는 그 도를 더하는 것 같고 소음도 심해 한마디 하고 싶은 걸 꾹 참고 뒤에 친구 녀석에게 화풀이를 했습니다. “야, 임마! 그 양반들 뭐하러 왔대?” 녀석의 대답은 또 걸작입니다. “몰라. 나도.. 뭐하러 왔는지...” 방문 목적을 모르는 주인에게 찾아든 손님 한 분을 위해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몰려다니다니 우리나라는 참으로 예의지국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저렇게도 할 일 들이 없어서일까요?

아뭏튼 작업은 끝이 보이기 시작했고 공장식구들이 다 퇴근하고 난 뒤에 옷을 입은 채로 콸콸 솟아나는 차가운 지하수로 하루의 수고를 씻어내는 시간은 지상최고의 피서입니다(이 방법은 땀에 저린 몸을 씻는 작업과 옷을 빠는 것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경제적인 방법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묵은 때를 씻고 더럽고 깊은 마음의 오욕을 씻는 이 시간이야말로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인 것입니다.

"더 달라","더 못준다"라는 대화는 시공자와 건축주와의 대화라는게 보통의 상식입니다. 그러나 이 현장에서는 "더 준다", "됐네 이 사람아, 그만하면 됐어"라는 대화를 끝으로 원두막이 한 채 생겨났습니다. 그 덥던 맹하의 삼복더위에 전국최고의 열기를 기록하던 그 곳에서의 일주일 동안은 여느 사람의 피서와 마찬가지로 아니 더 시원한 피서, 최고의 피서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른바 以熱治熱의 피서법으로 말입니다.

지붕은 코이어넷을 엮어 올렸다. ⓒ 이재은


하나만 더..
친구 놈 왈 "네가 지었으니 네 글도 하나 지어주라"는 요청에 따라 어설프지만 한문장을 하나 지어봤습니다. 아시는 분은 제대로 맞는 문장격식이 되도록 수정해 주시길 바라면서..

場臾暫見恰草亭
登樓安坐似陽樓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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