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당에 풀을 좀 뽑아야겠어."

검토 완료

이금희(oddo)등록 2005.08.26 16:44
오늘 아침에 협의회장님이 진료소 앞을 지나다가 들리셨다. 진료소에 볼 일이 있는 게 아니라 진료소에 약을 지으러 온 다른 마을 아저씨에게 볼 일이 있었나 보다.

그 아저씨에게 서류를 전해주시고 진료소 마당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전화를 하시는 것 같더니 잠시 후에 진료실 안으로 고개를 쑥 들이밀고는 "마당에 풀을 좀 뽑아야겠어." 하신다.

그렇지 않아도 여름휴가 가기 전에 마당을 정리하려고 어제 오후에 풀을 뽑고 제초제를 치려다가 비가 와서 못하고 오늘로 미룬 일이라 “그렇지 않아도 오늘 할 거예요." 하면서 하던 일 미루어 두고 마당으로 나갔다.

그 사이 마당의 반이나 넘게 풀을 뽑으셨다. 전화를 하면서 마당의 풀을 뽑으셨나 보다. 그 것도 장갑도 끼지 않은 맨 손으로...
“ 손 버리시니까 그냥 두세요. 제가 할께요. ” 해도
" 손이야 씻으면 되는거지." 하시면서 기어이 마당의 풀을 다 뽑고 나서야 일어 서신다.

협의회장님과 함께 앞마당의 풀을 다 뽑고나서 베어내도 자꾸만 자라나는 개나리 뿌리를 어떻게 없애야 할지 여쭤봤다. 그 대답을 해주시면서도 협의회장님 손은 여전히 내가 지난 번에 화단 안의 풀을 뽑아 한 쪽에 쌓아 둔 마른 풀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넣느라 바쁘시다.

그 일까지 다 마친 다음에야 손을 씻고, 휴가 잘 다녀오라는 인사까지 잊지 않고 하신 다음에 볼 일을 보러 가셨다.

그 동안 몇 분의 협의회장님들을 겪었지만, 이번 협의회장님처럼 진료소에 들렸을 때 마당에 풀이 자라 있으면 풀을 같이 뽑아주고, 진료소 공사 할 때 수고비도 마다하면서 전기톱 가져와서 커다란 나무 힘들게 베어주는 분은 없었다.

보건진료원은 진료소 일을 도와주시는 운영위원이나 마을건강원에게 틈틈이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산다. 주민들을 위한 보건사업을 하거나, 예산 운영에 관해서도 때로는 의견을 나누고 때로는 도움을 받으면서 지낸다.

많은 분들이 다 같은 정도의 관심을 보여주시는 것은 아니지만, 책임을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진료소 앞을 지나면서 고개 한 번 더 돌려 보고 주민들 중 누구라도 진료소 얘기를 하면 남들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인다는 것을 안다.

우리 협의회장님처럼 특별한 일이 없어도 진료소 앞을 지나실 때 한 번씩 들려 관심을 보여 주시는 것이 사람에 따라서는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난 아직 그런 관심이 고맙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