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뒷걸음질하는 중요무형문화재 정책

한지장 지정 예고와 관련된 문화재청 보고서에 대한 유감

검토 완료

곽교신(iiidaum)등록 2005.09.16 11:12
문화재청은 지난 8월 17일자 관보에 류행영(73.경기도 용인시 신봉동)씨를 중요무형문화재 한지장(韓紙匠)으로 지정할 것임을 예고한 바 있다. 현행 제도 아래에서 특정 한지장을 '문화 권력'으로도 불리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은 다른 모든 한지장은 그 밑에 두는 것과 같은 상징성이 있으며 향후 한지계 전체에 미칠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그런 중차대함에 비해 이번의 지정 예고에는 개운치 못한 점이 많다. 문화재청은 현행 중요무형문화재 제도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용역 결과를 지난 4월 말에 발표했었는데, 이번 한지장 선정 과정에서는 문화재청이 스스로 폐해라고 말했던 지정 절차의 적확성(的確性) 부재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어 실망이 크다.

류행영씨를 한지장으로 지정하는 이유를 담은 문화재청 자체 보고서의 핵심인 "종합 검토 의견" 부분의 내용과 표현은, 문건이 가지는 영향력을 생각할 때 법원 판결문 이상으로 정확 명료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쓴 각 5명 위원 중 3명 위원의 글은 '조사보고서'가 아니라 마치 심사 대상인 3인의 한지장을 순회 방문한 '감상문'을 읽는 듯한 착각을 준다.

보고서 시작부터 " --- 누대에 걸쳐 가업으로 이를 지켜온 분들을 대상으로 지장 추천을 할 수 있게 됨에 고마움과 민망한 심정으로 ---"라 시작하고 있어서 조사보고서인지 감상문인지 헛갈리게 한다.

최종 심사 대상에 올랐던 3인(용인 류행영, 가평 장용훈, 문경 김삼식. 연장자 순)의 한지장에 대한 "종합 검토 의견"중에 유감스런 부분을 인용하며 문제점을 지적해 본다.

위원 A씨의 기술 부분

보고서엔 김삼식의 공방을 "농막 옆에 축사를 개조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기자가 취재하기로는 그 공방은 개조한 축사가 아니고 문경시 농암면 농촌지도소의 지원금 천만원에다 김삼식씨의 자비 천오백만원을 보태서 2000년도에 새로 지은 것이다. 한지 제지 특성상 외부 기온의 영향을 최대한 덜 받으려고 수동식 벽돌 기계를 빌려와 두께 약 20센티의 흙벽돌을 직접 찍어 지은 제지 전용 공방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방문했던 평가위원에게 분명히 고지했었다는 김씨의 말이다.

반면 류행영씨의 공방은 "비닐하우스 내에 위치하는 열악한 조건임에도 전통 고수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고"라고 편향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이 전통 고수의 의지인지는 증거 문장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문장대로면 평가위원에게 '느껴진 것'이 유일한 증거인 셈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적합성 판단이 평가위원의 느낌에 의존해도 되는지 의심스럽다.

지난 12일 기자가 갑작스런 예고 후 방문했던 류행영씨의 비닐하우스 공방은 안스러울 정도의 열악한 시설이어서 과연 종이가 나올 수 있을까 의문일 정도였고, 닥죽을 풀어 종이를 떠내는 대형 그릇이라 할 지통(紙桶)에선 시멘트 가루가 묻어나왔다.

위원 B씨의 기술부분

장용훈씨의 공방 설비가 "저항감을 주기도 하고" 라며 부정적으로 기술한 반면, 류행영씨 공방의 낙후성에 대해서는 "외부 지원이 있다면 사실상 쉽게 해결이 될 수 있는 문제"라고 긍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윗 줄에는 "설비 부분은 매우 중요하고 비중 높은 평가항목이어야 한다" 고 써 있다.

정리된 장용훈의 설비는 거부감이 있다 썼고 낙후된 류행영의 설비는 외부 지원으로 쉽게 해결이 된다 썼으니, 논지의 중심이 어디인지 기본적인 기준도 안보인다.
또 외부지원으로 쉽게 해결될 문제를 어째서 "비중 높은 평가 항목"이라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외부의 지원으로 쉽게 해결이 되는 가벼운 사안으로 보았다면 "제조 설비는 중요한 평가 대상이 아니다"고 써야 앞뒤 주장이 맞다.

누구든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만 받는다면 밀물같은 투자나 지원은 불 보듯 뻔하다. 류행영씨는 지정 예고만으로도 투자의 러브콜이 있다는 말을 본인 스스로 기자에게 말했다.

류행영씨를 염색지 제조에 있어 선두주자로 표현하면서 다른 한지장들을 일컬어 "기본적으로 어떤 천연원료로부터 염료를 얻을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고 표현한 부분은 이 평가위원이 한지 정책에 조언할 자격이 있는지까지 의심하게 한다. 이 부분을 듣고 김삼식씨의 아들 김춘호는 "전국의 한지장을 모독하는 발언"이라 했고, 장용훈씨의 아들 장성우는 "어이가 없는 말이라 대꾸조차 우습다" 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염색지 제조에 탁월하다고 기술한 류행영씨의 염색 한지를 직접 확인해보니 소목, 홍화, 쪽 등 천연염색의 초보자들이면 다 아는 종류들이었는데, 기자의 관심 정도면 이런 정도의 염료는 '쪽'을 빼고는 원재료 식물로부터 직접 추출 할 수 있다.

위원 C씨의 기술 부분

C씨는 유일하게 복수 지정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장용훈씨의 기능을 인정하고 있으나 역시 류행영씨를 기술적으로 우위에 놓고 있다. 그래도 평가위원으로서 최소한의 객관적 시각은 유지하는 것으로 보였다.

다만 김삼식씨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잿물 대신 가성소다를 쓰고 닥풀 대신 화학약품 팜을 쓴다면서 "(김삼식의 종이는) 우리 고유한지라 말하기 힘들다"고 했는데, '김삼식의 고집'을 아는 사람들이 들으면 기겁을 할 말이다.

김삼식씨는 자신의 평소 생산 원칙에 의해 종이를 제조치 않는 시기에 방문한 평가위원들 앞에서 시범을 보일 원료 준비에 난감했다고 하며, 최소한 1년의 계획도 없이 갑자기 방문하여 종이를 떠내라 하고 그 종이로 기능 전체를 판단하려하는 평가 방식에 고개를 내저었다.

위원 D씨와 E씨의 기술 부분

D씨와 E씨는 서술형 만연체로 기술하면서 비교적 냉정한 시각으로 3인의 한지장을 기술하고 있다.

D씨는 기능보유자의 인성을 중요 참고사항으로 강조했는데, 이는 무형문화재 제도의 많은 문제점이 보유자의 인성에서 비롯된 것이 많음을 간파한 경험칙의 결과로 보이며 D씨의 그런 주장은 널리 인정되는 사실이기도 하다. 또 E씨는 김삼식씨의 제지 기능을 우월하게 보진 않았으나, 현장 실사 당시 김삼식이 전통 닥풀대신 팜을 쓴 이유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각기 특장이 다른 한지장들을 함부로 줄 세우지 말라

기자는 오랫동안 전통 한지의 우수성에 매료되왔고, 작년 가을 한지 기획 취재를 하면서는 한지를 찢어서 씹어보는 방법으로 한지 원료(닥)의 수입품 여부를 거의 판별하곤 하였다. 그건 감각이 유난히 예민해서가 아니라 한지에 대한 애정이 낳은 결과다. 보고서를 쓴 일부 위원들은 그런 최소한의 애정이라도 가졌었는지 의문이 가는 것을 감출 수가 없다.

우리 전통 한지는 한지장마다 그 특장점이 다르다. 행정상의 지원을 위해서라면 현재 운용하는 시도무형문화재 지정으로도 각 장인의 종이가 긍정적으로 발전하기에 족하다고 본다. 보고서에서도 김삼식씨의 종이 생산 형태 그 자체를 보존 가치가 있는 전통적 생산 방식이라고 중요시하고 있는 것과 같이, 일정 수준이상의 장인이라면 각각의 종이나 생산 방식이 일정 부분은 원형 보존의 가치가 있다.

조선시대에도 경장지(京壯紙)와 향장지(鄕壯紙)라 하여 서울과 지방의 종이를 구별하였고 그 용도가 달랐다. 결코 향장지라고 홀대하여 나온 이름이 아니다. 기록에 보이는 함경도와 전주의 종이는 한 사람의 장인이 만들 수 없도록 특질이 확연히 다르다. 이런 특징을 무시하고 한 사람만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은 얼핏 보면 전통 한지를 존대하는 정책으로 보이나 그렇지 않다. 중요한 것만도 크게 나눠 이십 여 가지인 다양한 한지의 제조 기능을 한 사람이 다 보유할 수는 없다. 한지가 종이의 전부였고 국가기관으로 "조지소(造紙所)"를 두었던 조선시대에도 그런 사통팔달의 장인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류행영씨의 제지 기술이 월등한 판단 기준처럼 보고서에 쓰인 '얇은 한지 제조 기술'은 "안피지"로 대표되는 얇은종이 뜨기의 한 기법일 뿐이지 기술 수준의 절대 평가 가늠자는 아니다. 장용훈씨 공방에서 마지막으로 떴다는 안피지 샘플이 기자에게도 한 장 있다. 그 안피지는 해안가에서만 자라는 닥나무(안피나무)를 원료로하나 지금은 원료를 구하기 힘들어 제지를 중단하고 있을 뿐이다.

한지는 닥나무로 만들지만 버드나무 대나무 마 율무 등 안쓰인 원료 및 부재료가 없을 지경이며, 금 은 동 운모 등의 광물도 사용하여 특수지를 만들었다. 기록을 조금만 뒤져봐도 닥나무는 주원료일뿐이다. 이 종이들은 현대에 완벽히 재현되지 못하는 종이들이 대부분이다. 모든 한지를 능숙히 제조하는 장인은 있을 수 없다. 한지장을 다른 무형문화재와 같은 맥락에서 줄 세우기 하면 안된다.

냉정한 눈으로 쓴 E 위원의 보고서 말미에는 "현재 한지장의 대부분이 (중요)무형문화재 지정대상으로 100% 적합하다고는 볼 수 없으나..."와 같이 평가위원으로서의 양심적인 판단이 기술되어 있다. 어느 한 장인을 반열에 올리고 나머지 장인을 그 아래로 줄 세우는 현재의 무형문화재 한지장 지정 정책은 재고되어야 마땅하다고 본다.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를 '인간국보"라 부르며 수와 자격을 엄격히 통제하는 일본과 달리 우리는 무형문화재가 난립하는 실정이긴 하지만, 시도무형문화재의 심사 기준도 나름대로 까다롭다. 현재처럼 로 지정하며 미래를 기약하는 것이 무리없는 정책일 것이며, 꼭 국가 지정을 원한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양심적인 한지장은 모두 "중요무형문화재 한지장"으로 지정해야만 할 것이다.

한 사람을 반열에 올려놓고 떨어진 사람에겐 미안해서 "그 사람의 기능도 우수하니 지자체에서 추후 지원을 아끼지 말아달라"고 해당 자치단체에 공문을 띄웠다는 문화재청의 말은 구태의연한 탁상행정일 뿐이다. 닥나무를 채취해서 종이가 되기까지 3개월이면 되는데 왜 1년이 걸리는지 책상이 아니라 현장에서 보아야만 한다.

류행영씨가 중요무형문화재 자격이 있으면 장용훈씨도 있다. 또 김삼식씨도 있다. 연로하신 류행용씨께는 죄송하지만 그는 결코 우뚝선 한지장으로 보이지 않는다. 조선시대 이래 그런 사람은 없었다. 앞으로도 있을 수가 없다. 그것이 천년한지의 천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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