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네에 희망이 있었네

사는 게 힘이 들어 산동네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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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go0330go)등록 2005.10.16 18:54
산동네에 희망이 있었네

송영애

나를 아는 사람들 중엔 내가 참 재미없는 여자라고 말들을 하는 이들이 있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삶이 힘겨울 때
높은 산을 오르는 나를 보며 이해를 못하겠다 하고
아이들 손 잡고 쉬엄쉬엄 산 밑에 아담하게 둥지를 튼,
00사라는 절에 가는 것도 이해를 못하겠다고 한다.

산을 오르며 지나온 내 삶을 휘적휘적 더듬어보기도 하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내 앞날을 상상 속에 펼쳐 놓기도 하며
때론 나를, 말도 안 되는 멋진 상상 속의 자리에 앉혀 놓고
실없이 웃기도 하는 사이에 산은 어느새 내 발 아래에서 나를 떠받치고
세상을 다 가지라는 듯 초록빛 가득한 입을 벌리며 웃고 있다.
산은 내게,
살을 맞대고 사는 남편에게도 하지 못하는 속엣말들을 해달라고 조르기도하고
비가오나 눈이오나 찾아오면 친구가 돼주겠노라 無言의 약속을 해주기도 한다.

오늘도 나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계양산에 올랐다가
산 밑에 색색의 지붕을 이고 오밀조밀한 집들이 모여 있는 산동네에 들렀다.
산 밑에 집들이 있어서 산동네라 부르나보다.
마음 답답할 때 가끔 산동네를 오르는데 산동네에 들르면 괜히 죄책감이 든다.
산동네 사람들이 내 속마음을 안다면 돌이라도 던지지 않을까 무섭다는 생각을 늘 한다.
내 지친 삶을 위로받으려고 그곳에 들르는 걸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안다면
과히 기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산동네엔 집들은 많은데 도통 사람들 구경하기가 힘이 든다.
먹고 살기 빠듯한 사람들이 많아 거의가 맞벌이를 하는 상태고
부모가 일나가면 챙겨 줄이가 없어서인지
학교가 끝나고 힘겹게 좁은 길을 오르는 아이들 손엔
거의가 먹을 것 하나씩이 들려 있었다.
얼굴에 마른버짐 가득히 피어있고 얼굴이며 목에 때가 절어있는 아이 하나가
작은 체구에 거짓말 조금 보태 제 몸 만큼 큰 가방을 둘러메고 과자를 먹으며
집으로 향하고 있기에 말을 시켰다.
“넌 어디사니?”하고 넌지시 물으니
검지 손가락을 펼치며 “저기 오른 쪽 회색 지붕 보이죠?
거기가 우리 집이예요.“한다.
“엄마는 집에 계시니?”하고 묻자
“아뇨, 아빠는 죽었고요. 엄마는 일 나가서 밤에 와요.”라며
묻지도 않은 대답까지 하더니
햇살이 따가운지 실눈을 뜨곤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해맑게 웃는다.
아이의 까만 손으로 인하여 손에 쥐고있는 아이스크림 봉지가 아이의
손 색깔을 닮아 버렸다.
아이는 새까맣게 변해버린 봉지를 길바닥에 홱 버리더니 집으로 내달린다.
아이의 집은 문도 잠겨있지 않았는지 아이는 그냥 문을 열고 집으로 쏙 들어가버린다.
나오면 심심한 차에 이야기라도 하고 싶었는데 한 번 닫힌 아이네 집 문은
한참을 바라보고 있어도 열리질 않았다.

사람들이 보이질 않으니 환한 대낮인데도 무서움증이 몰려 든다.
왼쪽으로 난 00사라는 절로 발길을 돌렸다.
00사 안으로 들어서니 승복을 입은 여자보살님 한 분과 신도인 듯한
여자분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슬쩍 눈인사만 건네고 법당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법당 문이 굳게 닫혀있다.
참 이상하고 이해 못 할 일이다.
요즘은 낮에 교회에 가도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곳들이 있었다.
교회 전도사님께 이유를 물었더니 교회 안에 비싼 물건들이 많고
화장실에 아무나 드나들어 지저분하게 하고 밤에는 또 사람들이 와서
잠을 자고 가기 때문에 열어 놓을 수가 없다고 했다.
예전엔 교회에 아무때나 드나 들었고 아무때나 기도를 하러 가기도하곤 했었는데
교회도, 절에도 이젠 시간 지켜서 가야하는 곳이 많나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예전 것들이 많이 그리운 건 나이를 먹어간다는 표시일까?

야무지게 입을 다문 법당문을 멍하니 바라보다
법당 위로 나는 산까치에게 손 흔들어 인사를 한 뒤
오던 길을 내려오는데 노스님 한 분이 곡괭이로 밭을 파고 계신다.
“저 위로 올라가도 내려가는 길이 있나요?”하고 물으니
“그 길로 가면 내려가는 길이 너무 멀어요. 이 길로 그냥 내려가세요.”한다.
할 일도 없고 산동네의 가보지 못한 길들을 따라 좀 더 돌아보고 싶은데
스님께선 바쁘지도 않은 내 등을 눈길로 떠밀며
“그리 가면 너무 멀어요. 내 말 들어요.”라며 가고 싶은 길을 가로 막았다.
할 수 없이 산 동네의 맑은 하늘과 바람 몇 줌 가슴에 담고 내려오는데
사람은 없고 빨랫줄에 엉성하게 얽힌 빨래들만 춤을 추고
길 옆의 작은 교회도 너무도 고요했다.

산동네의 아이들이 외롭지 않기를 바라고
줄에 목이 메어진 강아지들도 외롭지 않기를 바라며
‘모두 부자 되십시오.’라고 속으로 주문을 외우며 내려왔다.
산동네엔 한가로이 떠 있는 구름도 외로워 보였다.
하지만 내 마음은 벌써 부자가 되었고
내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가 산동네에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싶어 자꾸만 뒤를 돌아보다가
배밭에 들어가지 못하게 쳐 놓은 그물에 걸려 하마트면 넘어질 뻔 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나는 자꾸만 산동네를 바라본다.
누군가 내게 손짓이라도 해준다면 더욱 좋으련만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산동네에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날이 오면 세상엔 외로운 사람들이
없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며 마음 속으로 그들을 위한 기도를 한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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