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 무척 식상한 명절 이야기

고리타분한 명절과 '맞장' 한번 뜹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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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철(ysreporter)등록 2005.10.31 18:38
올해도 어김없이 명절이 온다. 기쁘고 즐거워야 할 명절, 하지만 길 가는 남녀 성인 열 사람 붙들고 물어보자. 명절이 즐거우신가요? 아마도 성인 남녀들 대부분이 이런저런 이유로 즐거운 기대보다는 커다란 짐 덩어리 하나 메고 있는 심정일 것이다.
사업하는 사람의 경우라면 직원들 챙겨야 하는 문제가 있을 것이며, 한 가정의 가장이라면 이래저래 지출될 명절 경비를 떠올리면 머리가 지끈거릴 것이다. 바깥 생활하는 사람도 그러하지만 집안 살림을 하는 사람들은 경제적인 문제와 더불어 과도한 가사노동으로 인해 심지어 그 연휴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것이다.

|||||||||||||||||||언제부턴가 즐거운 명절이라는 말 뒤에 아주 요상한 접미사가 붙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명절증후군’이라는 단어다. 명절 때만 되면 각종 미디어와 여성단체에선 줄기차게 명절증후군의 심각성을 논의하지만 여전히 그 단어는 없어지지 않고 있다. 고단한 증후군을 겪으면서까지 우리는 명절을 지켜 나가야 할까? 모두가 고통스러운 명절이라면 차라리 명절을 없애 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이건 괜한 농담이 아니다. 명절이 다가오면 주변 사람들에게 곧잘 물어 본다.
“명절이 진짜 기다려지고 즐기고 싶나요?”
그러면 대체로 이런 대답이 나온다.
“우씨~ 대체 명절이란 걸 누가 만든 거야?”
그렇다면 대체 이 야단법석을 떠는 명절을 언제까지 지낼 것인가. 그래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모두 당연하게 여기는 몇 가지부터 내 식대로 해 보자는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은 서울이고 부모님은 대구에 계신다. 그리고 내 처가는 서울에서도 한동네에 산다. 그렇다면 명절에는 일단 친가부터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부터 배신하기로 했다. 처가나 친가나 자식 된 도리는 같은데 왜 교통지옥을 뚫고 민족대이동에 실려서 대구까지 이동해야 하나. 바로 가까운 곳에 부모님 장인-장모 이 있는데 그곳에서 지내면 된다. 처음 대구 부모님은 약간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우린 이렇게 살기로 했소, 라고 하는 데야 어쩌겠는가. 나의 이러한 몰상식한(?) 행동은 물론 막무가내로 나온 것이 아니다. 대구에는 누님도 있고 부산에 형님이 있으니까, 가까운 곳에 사는 이들이 자식 노릇하고 나 또한 서울에 있는 부모님께 자식 노릇하겠다는 뜻이었다.
물론 이런 계획을 시도할 때 아내가 먼저 나서서 주장하면 문제가 아주 심각해진다. 남편이 먼저 이런 일을 주선하고 만들어 가야 그나마 분란이 적어질 수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가정이 이렇게 생각을 바꾸어야 엄청난 교통지옥과 시간적 육체적 고통에서 해방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를 하려면 또 하나의 고정관념과 맞서야 한다. 그것은 제사다. 제사 의례는 친가 위주로 지낸다. 그러기 때문에 아들은 반드시 제사에 참석해야 하고 사위의 참석은 선택사항일 뿐이다. 그러나 딸도 그 집안의 혈통을 받았다. 가정마다 형편에 맞게 딸이든 아들이든 자식이 참석한다는 게 중요하다. 그러므로 친가 위주의 제사에만 집착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언제까지 중세풍의 관습에 갇혀 살아야 할까. 농경 사회 때 남정네는 밖에서 일하고 아낙네는 새참해 오던 그 시절에야 집안 살림은 아내의 몫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맞벌이하는 현대 가정에서도 집안일은 여전히 아내의 몫으로만 남아 있다. 명절이라고 며칠 쉰다면 맞벌이하는 아내에게도 당연히 같은 몫의 휴일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들의 가정은 명절이 친가 위주로 되어 있고 집안일도 아내의 몫으로만 고스란히 남았다. 이런 우리들의 명절 풍경을 나는 좀 과격하게 표현할 때가 있다.
‘우리들의 명절 풍경은 아름답기는커녕 야만적인 풍속’이라고. 남자 형제들이 모여서 텔레비전 켜 놓고 고스톱판 벌이며 술상 받아먹으면서 흥청거리며 기분 좋아할 때 그것은 누군가의 육체적 고통 위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게다가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자신의 가족이라고 할 때, 이는 불가에서 말하는 무지도 죄악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명절을 합리적으로 보내자는 것, 남녀가 모두 즐거워야 한다는 것은 단지 페미니즘적인 견해에서만 하는 말은 아니다. 그런 즐거움이 누군가의 고통 위에 있기보다 그것을 좀 나누어 함께하는 즐거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제발 다가오는 명절에는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다들 한번만 곰곰이 생각해 보자. 여자들이 누구인가? 바로 우리들의 엄마이고 할머니이고 이모이고 바로 우리의 딸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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