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파워' 대안 실험 석달 째

배우학교 '한별'

검토 완료

박수호(soohoya)등록 2005.11.16 19:37

배우학교 한별의 초대 교장 김승수 PD ⓒ 박수호

초대 교장을 맡은 김승수 PD는 "3개월 만에 학생수가 170명 정도로 늘어 웬만한 대학 연극영화과 규모보다 커졌다"고 소개하며 "수업받는 학생 중에서 바로 캐스팅될 수 있다는 점과 영상 연기를 중심으로 특화한 것이 장점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MBC 일일연속극 '맨발의 청춘'은 이 학교 학생들이 처음으로 선보이고 있는 드라마다. 이 학교의 모태가 된 외주제작사 '이관희 프로덕션'은 주인공 '경주'에서부터 단역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캐스팅을 이 학교를 통해서 해결했다.

이 학교 1기 출신으로 극중 '나형주'역을 따낸 박용현(23)씨는 "입학 전 4-50번의 오디션에서 고배를 마셨다"고 운을 뗀 뒤 "배우학교를 다니면서 캐스팅으로 이어져 큰 행운"이라며 "이후 촬영과 (사후관리격인)연기 수업을 병행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라고 말했다.

박영언 기획팀장은 "그간 과당경쟁으로 인해 치솟은 스타들의 몸값으로 제작사들의 비용이 증가하는 것은 물론 같은 기획사 소속 연예인들의 동반출연 등 왜곡된 캐스팅 풍토가 존재해왔다"며 "매니지먼트사의 의뢰를 거치지않고 새로운 피를 수혈할 수 있다는 점이 방송 현장에서 적잖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제작현장에서의 분위기도 달라졌다고 전한다. 실제로 분초를 다투는 한국 드라마 제작의 특성상 현장은 늘 긴장되고 엄숙한 분위기가 지배하기 십상이다. 문제는 이 학교 출신 학생들. A급 배우도 어려워한다는 감독에게 수업시간에 하던 대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면서 친근하게 다가가는 이 학교 출신들 때문에 처음에는 다른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의 얼굴이 굳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한다. 하지만 갈수록 이들이 촬영장의 분위기를 훈훈하게 해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우선 이 학교의 시험대라고 할 수 있는 '맨발의 청춘'의 시청률이 기대 이하다. 초반 10%대 중반을 기록하던 시청률은 16일 현재 10% 아래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아직 드라마가 끝나지 않았고 한두 편의 드라마로 학교의 가치를 운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할지라도 자칫 연기자 검증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박 팀장은 "앞으로도 2~3년 내에 제작하는 모든 드라마에 수료생들과 재학생들로 채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며 "'맨발의 청춘'의 시청률도 바닥을 쳤다는 분석이 있는 만큼 좀더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 학교 출신들이 연예계 현장으로 나갔을 때 사후 관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도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의 연예계는 시스템상 한 배우가 독자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앞서 소개한 박용현씨의 경우도 아직 역할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아 촬영스케줄을 본인이 확인하고 알아서 움직이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 학교 출신 연기자 가운데 스타가 탄생했다고 쳤을 때 체계적인 관리가 뒤따르지 못한다면 이 곳 출신들은 자칫 '일회용'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학교 설립과 동시에 매니지먼트사인 '한별 엔터테인먼트'가 함께 둥지를 튼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는 결국 또다른 스타파워를 양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이 학교의 숙제다.

한편, 한별은 21일부터 8일간 100일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겨울연가'의 윤석호 PD,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씨, 배우 차인표씨 등 방송, 문화계 저명 인사들의 연속특강 프로그램인 '마스터클래스'를 연다. 김승수 교장은 "그간 수업이 실기 위주로 진행되었다면 이번 교육은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국내 최정상급 전문가들이 자신의 생생한 체험담과 노하우를 전수해 줄 것"이라며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고 전했다.

아무쪼록 한별이 연기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교육기관은 물론 방송계에서도 신선한 바람으로 자리하길 기대한다.

"떨어진 오디션만 4-50번"
MBC 드라마 '맨발의 청훈' 나형주 역 박용현씨

▲ '맨발의 청춘' 형주 역의 박용현씨
배우학교 '한별'을 통해 브라운관에 첫선을 보인 박용현(23)씨. 앳된 얼굴에 짙은 눈썹이 인상적인 그는 극중 고등학교 2학년으로 나오는 만큼 10대 후반이겠거니 했는데 벌써 군대까지 마쳤단다. 지난 3월 전역해서 꼬박 6개월을 이곳저곳 오디션에 투자하고서야 겨우 배역을 따냈다니 그간 마음 고생은 미뤄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의외로 그는 담담하게 지난 날을 얘기해줬다.

"제가 장손에 장남이에요. 처음에 제가 연기자를 하겠다니까 아버지는 그런 건 꿈도 꾸지마라고 말씀하셨죠. 그래서 정말 어렸을 때 한번씩 해보는 생각인가보다 했지요. 그런데 다녀오면 다들 생각이 달라진다는 군대를 전역하고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닥치는 대로 오디션을 봤지요. 지금까지 떨어진 것만 4-50번 될 걸요? 지금은 아버지께서도 적극 밀어주시지만요."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배우학교 한별에서 오디션을 본다는 공고가 뜬 것이다.

"처음에는 이상하다 싶었어요. 프로덕션이나 오디션장이 아니라 배우학교에서 본다니까요. 하지만 운좋게 오디션을 통과하고 나니까 곧바로 방송출연인 거예요. 처음에 당황했죠. 잘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하지만 체계적으로 학교에 등록해 직접 현역 배우며, PD선생님들을 뵙고 연기도 배우고 하니까 마음이 놓였어요. 방송나가기 전에는 주위분들도 많이 걱정하셨는데 '절약이 몸에 배어있는 짠돌이 고등학생' 역할을 능청스럽게 잘 한다고 평해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

그는 현재 대학생(단국대 경영학과)이다. 수강신청할 당시만 해도 그냥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겼다. 바로 학점이다. 예상치 못하게 큰 배역을 맡은 데다 수업이 많은 목요일이 하필 온종일 공을 들여야 하는 세트장 촬영날이다. 불가피하게 수업에 빠지게 되면서 전전긍긍하는 눈치다. 전공 교수님께 이메일로 사정도 설명했다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장담 못하는 모양이다.

최민식을 좋아한다는 그는 조만간 본격적인 배우 훈련을 위해서 연극영화과로 편입을 준비하고 있다. 이 즈음에서 연예인이 되면 쉽게 대학에 들어간다는 세간의 논란에 대한 그의 입장을 들어봤다.

"사실 연예인되기까지 정말 험난한 과정인 것 같아요. 의사가 되기위해 코피터지게 공부하는 거랑 다를게 없어요. 연기자를 꿈꾸는 많은 사람 가운데 연예인이라는 명예를 얻기까지 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거든요. 오디션에서 저보다 더 많이 떨어진 사람도 많지요. 그래서 그런지 연예인이 됐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실력은 검증받았다고 봐야 해요. 다만 그 사람들이 대학갈 대 관련학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국문과나 영문과로 가게 된다면 그건 문제가 있다고 봐요. 그런 학과는 또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이 들어가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그는 매니저도 없다. 그래서 그는 촬영스케줄을 받아적고 버스타고, 지하철타고 다니면서 현장으로 향한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맡은 역의 비중이 큰 점도 부담스럽긴 해요. 그래도 촬영할 때 떨리진 않아요. 그간 제가 얼마나 하고 싶은 일이었는데요? 어차피 한두번에 될 생각도 없었어요. 그동안도 그래왔듯 앞으로도 '미친듯이' 할래요"

조용한 말투지만 연기와 관련된 이야기에 유난히 눈빛이 빛난다. 의사되려고 '미친듯이' 공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그의 연기론을 엿보며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그는 분명 원석임에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다.

/ 박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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