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한 삶의 끝에서 발견한 행복의 의미

[서평] <달려라, 스미시>에 비친 진정한 삶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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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진(windbreak6)등록 2005.11.17 18:34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책이 있다. 책 바깥에서 책을 바라보며 읽어내는 것이 첫 번째라면 책 속에 동화돼 주인공과 함께 호흡하는 책이 그 두 번째다. 이른바 주인공에 대한 독자의 몰입화(化)라고 할 수 있다.
『달려라, 스미시:(The Memory of Running)』는 두 번째임을 자처한다. 독자들은 책이 내뿜는 폭발적인 흡입력에 숨 돌릴 틈도 없이 흡수되는 이상체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독자들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불가항력적인 발휘다.

한 중년의 남성이 있다. 그의 이름은 스미시 이드. 그는 습관처럼 먹어대는 맥주와 계란 피클 때문에 몸무게가 127kg에 육박한다. 그래서인지 그 둔한 체중의 과도함은 삶의 곳곳에 침투해 그를 권태와 무료함으로 거칠게 몰아간다. 삶을 억압하는 그 모진 게으름은 달리기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풍요로운 건강함과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며 소설의 시간적 배경을 건실하게 지탱해준다.
어느 날,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주인공. 설상가상으로 과거에 정신병에 시달리며 집을 뛰쳐나갔던 누이의 사망 소식까지 전해들은 그에게 그 냉랭한 현실은 육체적인 비대함으로 번져 정신까지 오염시키려 한다. '현실' 자체로 받아들이기에는 그 충격이 너무 큰 나머지 삶에 대한 회의를 품고 그 절망에 무차별적으로 휩쓸린다. 살이 찌는 것이다.
그의 혈육에 대한 사망소식은 단순한 '죽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주인공의 삶마저 집어삼키려는 거대한 그늘처럼 그를 덮어버리려 한 것이다. 어쩌면 '맥주'와 '계란 피클'로 대변되는 그의 현실은 어두운 그늘을 간접적으로 상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낭비하는 권태기적 몰지각은 미처 완충지대를 마련하기도 전에 그를 엄습한 것이다.
스스로를 '뚱보 얼간이'라고 간주하는 가학적인 자세는 이미 그 자신은 '삶'에서 최소한의 권리마저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절망의 끝에서 꿈틀대는 희미하게 엿보이는 그 무엇은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그의 선택이 불태울 수 있는 발화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그는 자전거로 미국횡단을 결심한다. 이야기는 이제부터 삶에 내던졌던 자신의 무기력함을 의도적으로 탓하듯 인물의 심리변화를 세심하게 쫓아간다. 소설에서 인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이 책은 여과 없이 증명해 보이며 착실하게 답하고 있다.
자전거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리고 그 사람들 각각의 캐릭터를 통해 우리들은 주인공인 스미시가 겪는 내적 변화에 공명하며 텍스트에 융화된다. 이런 유의 소설이 으레 갖게 되는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주인공과 독자의 간극(間隙)이 철저하게 좁혀진다는 데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알면서도 몰입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체험적 공유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이 호소력이 짙게 보이는 이유는 단지 스티븐 킹이 극찬한 소설이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책에 기대할 수 있는 기대치의 꼭지점에 바로 저자가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즉, 다시 말해, 작품이 표방하고 있는 내러티브(narrative)는 저자 자신의 자전적 경험과 그 궤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 책의 서막이 부모님의 교통사고로 시작되는 점과 저자가 실제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죽은 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고백한 점을 우연의 일치쯤으로 미뤄두는 것은 무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460페이지에 달하는 그 육중한 중량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그 무게만큼이나 무겁다. 특히 지루하게 이어지는 삶의 권태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에게는 극약처방이나 다름없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구원과 변화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달려라, 스미시"라고 힘을 실어주는 사람들은 사실 자기 자신에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긴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사람들이란 자신의 어려움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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