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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일 전 국정원 차장이 불구속 상태에서 지난 시절 국정원의 도청사건과 관련하여 검찰수사를 받던 중 자기 집에서 자살했다. 이로써 지난 여름 불거진 X파일 사건은 한 고비를 넘고 있는 중이다.
X파일은 작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화방송의 이상호 기자가 한 재미교포로부터 제보를 받는다. 제보받은 테입속에는 삼성 이건희 회장과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의 불법행위가 담겨있다. 엄청난 특종이었으며, 경천동지할 만한 일이었다. 국내 최대 재벌과, 굴지의 중앙언론사 회장의 비리행위가 그들 자신의 생생한 육성으로 담겨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다. 이른바 X파일로 통칭되는 국정원 도청 테입은 이미 오래전에 유출된 것이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좌천된 전직 국정원 간부가 보신용으로 가지고 나온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 테입들이 그로부터 왜 수년이 지나고서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까.
X파일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작년말, 홍석현이 주미대사로 내정되었다는 것이 발표된 직후였다. 왜 하필 그 때였을까 ?
또 한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다. 전직 국정원 간부로부터 재미교포 박 모씨가 삼성의 이건희 회장을 위협하면서 사용했다는 그 테입은 편집된 것이었다. 일정 부분이 빠졌던 것이다. 그 빠진 부분은 박지원 전 문광부 장관과 관련된 내용이다.
그렇다면 박지원 전 장관은 이 테입과 무슨 연관이 있었던 것일까 ? 재미교포 박 모씨는 미국에 오래전부터 거주하던 동포로서 김영삼에게 오랫동안 봉사했으나, 김영삼의 대통령 취임이후에 별 보상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그 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박지원을 고리로 삼아 김대중 정부에 접근했다.
박 모씨는 이미 김대중 정부 당시에 박지원 문광부 장관을 스스로 찾아가서 이 테입의 존재를 알렸던 것이다. 그리고 박지원 장관은 그 때 그 가공할 테입의 존재와 내용을 알게된다.
노무현 정권은 취임직후부터 꾸준하게 보수 그리고 영남에 접근해왔다. 그리고 보수와 영남정권을 세우는데에 물적 기반이 될 국내 최대재벌인 삼성으로의 접근 또한 꾸준히 시도해왔다.
노무현의 측근들이 삼성에서 경제연수를 받는다던지, 노무현의 취임직후 청와대 인근의 유명한 삼계탕 집에서 재벌회장들과 회동을 하면서 노무현이 특별히 이건희 삼성회장을 지목하며 자기 옆에와서 앉을 것을 권유한 것이라던지, 이건희의 개인박물관 개관 행사에 노무현이 대통령 신분으로 부부동반으로 친히 찾아가서 덕담을 하는 것이라던지, 그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국무회의 석상에서의 노무현의 공개적인 발언.
김대중 전대통령과 그들은 이러한 노무현의 책동을 예의 주시해왔다. 대북송금 특검으로부터 시작된 노무현 정권의 보수-영남 정권 수립기도를 분명히 확인해주는 마침표가 바로 홍석현의 주미대사 임명이었던 것이다.
노무현은 홍석현을 주미대사로 임명함으로써 마침내 보수와 영남 그리고 삼성과 한 몸이 되겠다는 선언을 공개적으로 한 것이었다. 이러자 김대중과 그들은 더 이상 노무현 정권의 기도를 두고 볼 수만 없게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왔던 것이 X파일이다. 노무현 정권의 음험한 기도를, 수십년간의 고난에 찬 노력끝에 마침내 균형을 잡아서 제대로 전진하려는 한국의 운명을 거꾸로 돌리려는 음험한 기도를 막아야하는 절박성이 바로 X파일을 세상에 드러나게 했던 것이다. X파일로 인해 노무현의 음험한 기도는 치명타를 입었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인 노무현이 호락호락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노무현은 차제에 X파일 건을 그 내용의 불법성보다는 그 형식의 불법성, 즉 국정원 도청의 불법성으로 사건을 몰아가면서 김대중과 그들에게 대대적인 역공을 취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마치 지난 대선시절 이른바 초원복국집 사건에서 영남 출신의 현직 국가 주요기관장들이 모여서 영남패권주의를 모의하던 테입의 내용보다는 도청의 불법성을 문제삼아서 판을 뒤집던 것을 연상케한다.
이 것은 누가 시작한 싸움인가.
노무현이 시작했던 것이다. 노무현은 김대중 밑으로 들어가서, 민주당 속으로 들어와서 민주당과 호남 그리고 민주개혁 세력을 이어받는다고 수십번도 더 약속해서 대통령이 되었다. 그런데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발의하고 국회에서 통과시켰던 대북송금 특검법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배신을 본격화한다. 그 후 2년여간 숨죽이며 예의 주시하던 김대중과 그들은 마침내 노무현 정권의 음험한 기도를 저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것은 단순히 김대중과 노무현의 싸움이 아니다.
김대중으로 상징되는 한반도 평화통일 세력, 수십년의 민주화 세력, 중도개혁 세력, 그리고 호남세력이 한 편에 있다. 그리고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한반도 냉전세력, 수십년의 군사독재 세력, 수구보수 세력, 그리고 영남세력이 한 편에 있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과거와 장래를 모두 담보하고 있는 이 거대한 승부는 이제 막 반환점을 돌고 있는 중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정원 도청사건으로 문제가 비화되자 대통령 퇴임이후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 당시에 국정원 차장이었던 이수일씨는 검찰의 수사도중 자살한다. 이 모든 것들은 김대중이 힘없는 전직 대통령이고, 노무현이 지금 힘을 가지고 있는 현직 대통령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이제는 더 이상 둔사를 쓸 필요가 없다. 김대중 정부 당시에 국정원의 불법 도청이 있었느니 없었느니, 확실한 증거를 대라느니 어쩌느니 변명하면서 쫓길 필요가 없다. 이제는 정면으로 치고 나가야 한다.
김대중으로 상징되는 세력과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세력의 전면전이 시작된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지난 수십년간의 과거는 물론, 장래 한반도의 운명을 건 건곤일척의 대승부가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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