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의 치부책

어르신네의 기록 정신을 배워야

검토 완료

황종원(semanto)등록 2005.12.27 21:19

낡은 치부책에는 장인 어른의 기록 정신이 가득하다. ⓒ 황종원


치부책을 펼칩니다.
사대 조에 걸친 할아버님과 할머님의 함자가 적혀있습니다.
할아버님들의 조선조 벼슬까지 기록되어있습니다.

저는 제 할아버님의 함자 밖에 모릅니다. 할아버지의 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제 아버지에게서 들었으나 시골 양반답지 않게 학문이 있으셨다 하는 정도만 알 따름입니다.

선조 네 대에 걸친 할아버지 할머니의 존함이 있으니 지금 우리는 할아버지 성함이라도 제대로 아는가? ⓒ 황종원


다시 펼칩니다.
이 대조 삼 대조 할아버님과 할머님의 산소 약도가 있습니다. 주소와 무덤에 묻힌 분들의 함자와 무덤 주위에 세워진 석물의 수량까지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일산이었습니다. 장인어른과 함께 갔었지요. 일산이 개발되어 산에 묻힌 무덤들을 파헤칠 때 무렵이었고요. 대단히 규모가 큰 산소였지요. 그 분들 후손들의 위세를 능히 알 수 있었고요. 그리고 그 산소를 모실 여유가 없으시어 무덤들 파서 선조대 어른들의 유골을 그 자리에서 화장 처리를 하는 것도 보았었습니다.

다시 펼칩니다.
장인어른의 직계와 존비속의 이름이 마치 지도 저럼 나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생일일시가 나옵니다.
당신의 아드님과 아드님의 직계들에 대하여는 주민등록 번호까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다시 펼칩니다.
어느 해 무슨 일이 있었다는 기록이 연대기처럼 펼쳐집니다. 자손들의 결혼 날과 시간이며 결혼식장이 적혀있습니다. 자식들 하나하나 결혼할 때 축의금을 냈던 사람들의 이름과 축의금 내용까지 있습니다.

해마다 집안 대소사가 꼼꼼하게 적혀있다. ⓒ 황종원


다시 펼칩니다.
막내딸이며 제 아내가 당신께 드렸던 용돈 명세가 빼꼭합니다. 다른 자식들의 이름은 없습니다.
어른께서 결혼기념일마다 장미 꽃 바구니를 들고 오셨던 내력과 늘 사랑으로 막내딸에게 주셨던 사랑의 부분을 조금은 관계가 있었겠군요.

1974년도 월급이 8만여원 일 때, 월급쟁이 막내 따님이 4만 여원을 집안에 드렸던 효녀 기록이다. ⓒ 황종원



저는 어르신의 일기를 보고 싶었습니다.
큰 줄거리에 따른 일상의 이야기를 보고 싶었으나, 그 기록은 어르신 생전에 없애셨는지는 모릅니다.

어르신. 저 역시 쓰기 좋아하고 기록을 남기기 좋아하나 어른의 글을 보고 저는 어른은 과연 어른 이시구나하고 고개를 숙입니다.
저도 부모가 되었습니다.
죽어나가면 아이들이 부모를 기억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다만 추억의 조각에 불과할 따름일 것입니다. 어느 세월 언제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일로 우리 부모는 잠 못 이루는 밤이 얼마나 되었는지 혹은 아이들의 일로 얼마나 기뻤는지 알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친척 사이에 생일을 기억하여주고 찾아가거나 축하의 말을 해주는 일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어른이 하신 일을 지금 어른을 닮은 제 처가 하고 있으나 이제 제가 나설 때입니다.
가족의 대소사를 연도별로 정리하고, 아이들의 세월 따라 변화하는 일이라든지, 아이들이 어린 시절 받아 온 상장에 대한 이야기라던 지.
추억의 샘은 작은 기록에서 선명할 것입니다.
어르신. 떠나셨으나 살아계신듯 합니다.
치부책에 이름 자 하나 올리실 때마다 따뜻한 정을 담으셨을 것이며 간절한 사랑을 주셨을 것입니다.
식구들이 제 주위에 몰려옵니다.
" 아버님 글씨 좀 봐. 어떻게 이렇게 잘 쓰시나. 꼼꼼하시기는 누가 당해. "
저마다 한 마디씩 합니다.
어르신이 떠나셨으나 이렇게 당신의 글을 대하면 곁에 계신 듯 합니다. 한 집안의 기록이 이렇게 정확하고 꼼꼼하게 적어내리신 어르신의 본을 이 사위는 받으려합니다.
헛 말만이 많고 정확한 근거가 없는 시대에 어른은 저의 모범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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