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톡스 주사의 날

안면경련 치료받으러 치료실에 가면 병은 친구처럼 늘 정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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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원(semanto)등록 2005.12.29 09:49
신경과 앞 대기의자.
삼십 여명이 환자들이 앉아있다.
신경과 출입구 게시판에 적힌 이름들.

오십 육십 칠십의 황혼 세대가 앉아 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두런대는 늙은 아낙네 소리.
" 언제부터 얼굴이 실룩 거렸어요. "
" 한 7년 됐어요. "
" 얼굴이 괜찮으시데요. "
" 말 말아요. 씰룩 쌜룩 벌벌 벌벌 별 짓 다해요."
잠을 잘 때 뺨이 실룩댄다. 입이 실룩 댄다. 꿈이 실룩댄다. 삶마져 실룩댄다.
웃으면 얼굴 좌우쪽이 따로 논다. 슬픈 자화상이다.

" 저는 1년 되는데 이 병이 낫기나 낫나요?"
"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한대요."

1년차 안면경련 아낙네는 궁금한 일이 한 둘이 아니다.
" 수술을 하면 안 된대요?"
" 늙은이 들은 안 된대요. 젊은 사람들이나 되지. 우리는 이대로 살다가 가는 거지."

" 한 번 주사를 맞으면 얼마나 가요?"
" 섣달이나 넉 달 가량. "

" 요즘 주사 약값이 좀 싸진 듯해요?"
" 여기도 병원들 사이에 경쟁이 생겨서 그럴꺼예요."

나는 이 말을 등 너머로 듣다가 싱긋 웃는다.
요즘 안면 경련에 맞는 보톡스 주사가 의료보험 처리가 된다고 들은 일이 기억난다.
처음에 32만여 원, 29만원, 이제 21만여 원으로 금액이 줄어들었다.

신경과 진료실 문이 열린다.
간호사가 이름을 호명한다.
"황누구님."
나는 죽어서까지 가지고 갈 병 하나를 데리고 진료실 문을 연다.
여섯 달 만에 미는 진료실 문이다.

친구 마져 만나지 않는 요즘에 나는 이런 병을 친구 삼는다. 안면이 조금 이상하지만 보톡스를 맞으면 주름이 펴지니 병 하나 얻고, 주름살 편다. 음지가 있으니 양지가 있더냐.
삶의 노년에는 병이 정다운 친구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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