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죽음은 어디에도 없었다

경찰의 과잉진압에 희생당한 두 농민, 시위대만 탓하는 언론들의 보도행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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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사라(pilhwa)등록 2006.01.06 10:25

여의도 공원에서는 두 고인의 명복을 비는 노제가 열렸다. ⓒ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두 농민의 죽음은 시위대의 탓?

[사설]안타까운 희생 부른 ‘독재 시대식’ 시위 [동아일보 2005년 12월 21일자 기사]
경찰 강경진압 ‘시위농민 사망’ 파문 확산 무슨 일 있었나 경찰·전의경 218명도 부상 [조선일보 2005년 12월 20일자 기사]
폭력시위 문화 퇴출시키는 계기로 [중앙일보 2005년 12월 21일자 기사]

전용철씨의 죽음에 이어 사경을 헤매던 홍덕표씨가 지난 12월 20일 끝내 숨을 거두자마자,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수구 언론들은 입을 모아 ‘폭력시위’가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인양 앞 다투어 기사를 내보냈다.

어려서 고아가 돼 소작농으로 2남 2녀를 키우던 근면한 농부가 폭력 시위의 혼란 속에서 죽음을 당했으니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삼가 홍 씨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홍 씨는 잘못된 시위 문화의 희생자다. 그와 같은 안타까운 희생자가 더는 생기지 않도록 시위 문화를 바꿔야 한다. (동아일보 2005년 12월 21일자 [사설] 안타까운 희생 부른 ‘독재 시대식’ 시위 中)

‘폭력 시위의 혼란’이란 표현으로 교묘하게 진압경찰의 책임을 가리고 있는 동아일보의 사설에 분노가 치민다. 그러면서 유가족에게 위로를 건네는 그 뻔뻔스러움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는가.

폭력 시위는 독재 시대의 유산이다. 민주화 시대가 된 지 십수 년이 지나도록 폭력 시위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절차적 민주주의는 완성 단계이지만 의식과 문화는 여전히 독재 시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2005년 12월 21일자 [사설] 안타까운 희생 부른 ‘독재 시대식’ 시위 中)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강경대, 노수석, 류재을 열사 등이 백골단으로 상징되는 전투경찰의 무자비한 진압 아래 목숨을 잃지 않았는가. 그때마다 그분들의 죽음에 분노한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열사의 피로써 민주주의를 일구어 지금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경찰들의 무자비한 폭력진압이 희생을 부르는 것은, 이 같은 수구 언론들의 눈먼 비판 의식과 아직도 독재 시대에 머무르고 있는 그들의 의식수준이 사회 발전을 자꾸 가로막아서일 것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적 문제는 폭력시위다. 그 배후에는 불법시위에 대한 공권력의 단호한 대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위대가 시위용 무기를 사용해도 경찰이 서로 티격태격 싸움하는 식으로 방어하니까 폭력이 더 과격해지는 것이다. 폭력시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엄단한다는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 불가피하다면 최루탄이라도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폭력시위가 없어진다. (중앙일보 2005년 12월 21일자 폭력시위 문화 퇴출시키는 계기로 中)

최루탄까지 사용하자고? 과거 최루탄에 희생된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경찰의 강경진압에 사람이 죽은 판국에 더욱더 강경할 것을 주문하는 이 글은 또 다른 살인을 부추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과잉진압은 사회적 무관심의 산물

경찰이 발뺌과 책임회피로 일관했지만, 12월 26일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 두 농민의 죽음이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이 명백히 밝혀졌다. 수구 언론들은 그러한 결과 발표를 의식한 듯 경찰의 과잉대응을 비판하는 척 했지만 ‘과잉대응’을 불러일으킨 것은 또한 폭력시위 탓이라며, 너도나도 폭력시위 근절에 한목소리를 냈다. 마치 경찰의 대응은 조금 과했던 정당방위라는 식이다.

“과잉진압과 과격시위는 오십보백보?” [동아일보 2005년 12월 30일자 기사]
[사설]폭력시위와 과잉대응 ‘악순환’ 끊으려면 [동아일보 2005년 12월 30일자 사설]
폭력시위와 과잉대응 고리 끊자 [중앙일보 2005년 12월 31일자 기사]

집회에서 폭력 사태가 일어나게 되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그 어떤 시위대도 그러한 상황을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벌어지곤 하는 험악한 사태는 무엇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폭력시위를 규탄하는 그 수많은 기사들 가운데 진심으로 이러한 사태에 대해 고찰해보는 언론은 아무데도 없었다.

무조건 폭력시위만을 근절하자고 주장하지만, 수구 언론이 주장하는 경찰의 보다 강경한 대응은 더 큰 피해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그보다 계속해서 집회가 일어나는 원인인, 현 사회의 내재된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농민들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빈민들에게 살 길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시위대의 과격한 시위가 경찰의 과잉대응을 불러오는 것에 있지 않다. 우리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무관심이 시위에 참여한 노동자·농민의 고립을 가져오고, 이러한 상황이 과잉진압에 대한 명분을 주게 되는 것이다.

수구 언론은 시위대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차단하고, 잘못된 여론을 생산하며 이러한 악순환을 가중시킨다. 우리가 끊어야할 고리는 바로 이것이다.


경찰과 정부는 진심으로 반성해야

허준영 경찰청장 ⓒ 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경찰의 명백한 책임이 밝혀진 후, 민생파탄으로 시위가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했던 노무현 대통령과 두 농민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허준영 경찰총장이 경찰총장의 거취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것은 결코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그에 대한 비판보다는 그러한 대립 자체를 줄기차게 보도하며, 사건의 본질을 흐렸던 수구 언론은 황색 저널리즘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설]경찰청장만 물러날 일인가 [정치] [동아일보 2005년 12월 31일자 사설]
[사설] 앞으로 폭력시위는 대통령 혼자 막을 셈인가 [조선일보 2005년 12월 30일자 사설]
청와대 압박에 무너진 '항명 48시간' [중앙일보 2005년 12월 31일자 기사]

시민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집회에서 경찰이 사람 목숨을 앗아간 것도 모자라, 그 엄청난 과오를 은폐·축소시키려고 했다는 사실은 한때 ‘인권 경찰’을 표방한 전력이 무색하게도, 참으로 파렴치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조직의 최고책임자가 물러남으로써 그와 같은 죄과를 씻으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상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허준영 경찰총장이 마지못해 퇴임하면서 보인 모습은 그가 과연 이 사회의 정의를 지키고 법을 집행하는 조직의 우두머리로서 양심과 상식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게 한다. 그의 퇴임사에는 목숨을 잃은 두 농민에 대한 애도나, 사죄의 표현이 일절 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정당화와 퇴임을 당한 자기연민이 넘쳐났을 뿐이다.

이들이 반성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은 12월 28일 일어난 사건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故 전용철, 홍덕표씨 사망에 대한 책임을 지고 허준영 경찰청장이 사퇴할 것을 촉구하는 집회에서 김우현 민주노동당 기획조정실 부장이 경찰의 방패에 밀려 찻길로 넘어지는 바람에 차에 치인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관련기사 :
“폭력진압 항의하는데 또 ‘방패폭력’ 쓰다니…” [한겨레 2005년 12월 30일자 기사]


민중들의 분노에 찬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두 농민이 집회 도중 불의한 죽음을 맞았는데도 죽음을 둘러싼 논란 속에 그들이 외치고자 했던 바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도심 한 가운데서 농민, 노동자들이 수백, 수천이 모여 집회를 열어도 대다수 그것이 무엇을 위한 집회인지 알지 못하는 현실, 메이저 신문 사회면에 고작 한 두 줄, 교통혼잡을 일으킨 주범으로 오를 뿐인 이 같은 현실 속에서 오직 극한으로 내몰리기만 하는 대다수 민중들의 삶이 외면 받는 한, 시위대의 분노는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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