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소재의 기술혁신, 어떻게 할 것인가?

산업의 양극화 해소를 위한 부품소재기술혁신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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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근(ldk56)등록 2006.02.10 15:37
수년 전 우리나라는 생산성이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60%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낮아 저기술ㆍ저혁신의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90년대 이후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있어 저기술ㆍ저혁신의 악순환이 지속되는 '비수렴 함정'의 징후가 있다고 경고했었다. '비수렴 함정'이란 선진국 진입의 잠재력을 가진 나라가 기존의 기술모방과 규모의 확대중심에서 기술혁신전략으로 전환하지 못해 경제발전이 정체되는 현상을 말한다.

똑같은 양의 자본과 노동을 투입할 경우 우리나라의 생산은 미국의 50%, 영국ㆍ프랑스ㆍ싱가포르ㆍ홍콩의 60%, 일본의 66%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는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후 혁신주도형 투자비중이 높아지는 것처럼 보였으나 대학교육, 연구개발의 효율성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등 선진국형 성장전략으로 전환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여 진다.

부품·소재산업에서는 어떠한가. 부품·소재는 경제전체의 수출성과에 큰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수출-내수기업간, 대-중소기업간 경제성과의 전파(spill-over) 정도를 결정함으로써 경제의 균형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또한 부품·소재부문이 발전하여 산업내 분업의 정도가 높을수록(deep division of labor) 자본수익률이 커져 경제전반의 투자활력 유지에도 기여하게 된다.

또한 성장이론에 따르면 중간재산업인 부품·소재산업과 최종재산업간에는 강한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 또는 상호인과성(circularity)이 있으며, 부품·소재산업의 발달 정도에 따라 후발국의 성장경로에는 복수균형이 존재한다고 한다.

즉, 산업화초기에 전문성과 다양성을 갖춘 중간재생산기업이 임계 수준 이상 존재할 경우 최종재산업과 중간재산업의 발전이 상호 상승적으로 작용하는 고기술균형(high-tech equilibrium) 달성되는 반면, 후발국과 같이 이러한 초기 조건이 구비되지 못하거나 산업화과정에서 임계수준 이상의 연관구조를 구축하지 못할 경우 일정단계에서 성장이 정체되는 저기술균형(low-tech equilibrium)에 머무를 수 있다.

이와 같이 저기술균형이 존재하는 이유는 중간재산업에는 전문화된 숙련, 기술 등의 부족에 따른 높은 진입비용이 존재하는 데다 외부성이 커 고기술균형으로의 이행에 필요한 임계수준 이상의 진입이 일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시장의 조정실패를 초래하는 것이다. 완제품의 조립·가공에서 중국이 '세계공장'을 자처하고 있어 부품·소재산업의 발달을 위해서는 시장진입비용을 낮추고 조정실패를 시정하기 위한 정부개입이 필요하게 된다.

우리나라 부품·소재산업의 경쟁력 현황을 무역수지, 생산성, 산업연관도 등을 고려하여 분석한 결과 양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기술혁신주도 성장전략을 뒷받침할 만한 기술력을 갖추지 못하였으며 그 결과 우리 경제는 여전히 저기술균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품·소재산업은 수출비중이 크게 높아지는 등 양적인 성장을 이루었으나 경제 내 비중이 크게 증가한 IT업종을 중심으로 수입유발효과가 높아 부가가치 유출의 정도가 심각한 상황이다.

우리나라 부품·소재산업을 둘러싼 경쟁환경은 한·중·일간 부품·소재무역의 비중이 크게 높아지면서 수출이 대폭 증가하는 등 기회요인도 있으나 이에 못지않게 장기적인 위험요인을 다수 내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선 기업간 기술개발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부품·소재업체의 역할이 커지고 있으나, 우리나라 부품·소재기업은 99%가 중소기업으로서 규모가 영세하고 시장 및 기술면에서 수요대기업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 세계적인 환경변화에 독자적인 대응이 곤란하다는 분석이다.

육성정책면에서도 우리나라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되었으나 부품·소재산업의 특수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채 추진되어 성과가 극히 제한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즉, 대부분의 정책이 수입대체 목적의 중저급 기술개발에 대한 융자지원에 한정되고 사업화 단계에서의 지원이 취약하여 기술개발 이후 사업 성공에 대한 기대를 낮춤으로써 지속적인 기술개발 및 진입유도에 대체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문제점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2001년 '부품·소재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정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저기술균형 탈피를 위한 보다 체계적인 접근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우리경제가 부품·소재산업의 기술혁신을 촉진하여 저기술균형에서 고기술균형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책 수단을 강구하여야 한다.

우선 부품소재 육성정책의 목표를 수출 등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경쟁력 확충에 두고, 중핵기업을 통한 첨단신소재 개발 등 미래산업 창출정책 등과 긴밀히 연계하여 추진하는 정책을 추진중에 있다. 이를 통하여 수입유발의 원인을 신산업 육성초기부터 차단하고자 한다. 지원방식 면에서는 특정성이 높은 정부지원을 금지하는 WTO 등 국제규범에 저촉되지 않고 민간 자율성을 최대한 유도할 수 있도록 직·간접적인 지원방식을 적절히 조합하여 지원하되 장기적으로는 간접지원 중심으로 이행하는 전략을 추진중이다.

부품·소재산업의 경우 다양하고 이질적인 부문으로 구성되어 일률적·직접적 지원방식보다는 민간의 기술개발 노력을 최대한 유도하는 인프라 구축, 여건 조성 등이 보다 효과적이고 국제규범에도 부합할 수 있다. 그러나 고질적인 부품·소재산업의 혁신을 위해서는 세부과제로서 수급기업간 협력 지원, 산·학·연간 협동을 유도하기 위한 혁신클러스터 조성, 융자보다는 투자 중심의 기술혁신 촉진형 금융시스템 구축 등을 중점 추진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금융면에서 신기술 관련 연구개발과 사업화 단계와 같이 시장에 진입하기 이전에 자금의 수요공급간 갭이 특히 큰 단계, 즉 제2의 '죽음의 계곡'(The Valley of Death)에서의 원활한 자금공급을 위해 사모주식투자펀드, 엔젤투자 등 투자중심의 위험자본 공급을 활성화하여 시장진입단계에서의 수익을 전제로 하는 투자패턴 도입이 긴요하다.

부품·소재산업의 전략적 중요성은 우리 경제가 성숙기에 진입하여 종래와 같은 완제품중심·양적확대 위주의 성장전략이 한계에 다다르고, 세계시장내 경쟁구도도 첨단 부품소재 관련 기술 중심으로 재편됨에 따라 앞으로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또한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기술혁신의 자생적 유도, 연구개발활동의 사업연계성 제고 등을 위해 대학, 연구기관, 기업을 상호연계하는 혁신클러스터 조성을 촉진하여야 한다. 이는 지역간 균형개발이라는 국가적 목표 및 WTO체제 등 국제규범과도 부합할 뿐만 아니라 기술개발을 통하여 고급인력 부족문제에도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다.

특히 부품·소재 관련 지방대학들이 비교우위 분야를 중심으로 인적자원 양성, 연구개발 등에 전문화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하되, 경쟁에 의한 선택과 집중 원칙을 견지하여 혁신역량제고를 극대화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대학·연구기관 등 공공기관으로부터 중소기업 등으로의 기술이전을 촉진하는 제도도 확충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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