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림리 골프장 반대 현수막 ⓒ 박은영
▲ 군청 출발 전 주민들의 모습 ⓒ 박은영
3월15일 아침, 충남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 노인정 앞에 주민들이 모여 있다. 점심상이 소박하게 차려져 있고, 국수를 나르는 주민의 손길이 바쁘다. 밖에서 보면 동네잔치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보면 잔칫집 분위기는 아니다. 오히려 전쟁을 치르기 전 단단히 준비를 하는 군인의 모습이라면 그럴 것이다. 마치 싸울 준비를 하는 사람들처럼 묵묵하게 오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 먼 뒤편으로 서원산의 모습이 보인다. 서원산은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마치 응원이라도 하듯이.
오늘 마을 사람들이 모인 이유는 서원산에 18홀짜리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계획에 반대하기 위해서다.
골프장 건설계획이 있기 전에 봉림리 마을은 대개의 농촌마을이 그러하듯,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봉림리 마을에서 서원산은 마을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봉림리 마을에 오랫동안 살아온 할머니 한 분은 서원산 계곡에서 가재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가재는 1급수의 오염되지 않은 계곡이나 냇가에서만 사는 갑각류이다.) 그리고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칠월칠석이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원산이 중요한 이유는 서원산 계곡수가 마을 주민들의 주요한 식수원이기 때문이다.
골프장이 세워질 장소는 주민들의 식수원인 서원산 계곡과 얼마 멀지 않은 곳이다. 만약 이곳에 골프장이 세워진다면 주민들은 골프장에서 흘러나온 농약으로 오염된 물을 마셔야 할 판이다. 또한 마을 주민들은 골프장을 머리에 이고 사는 격에 되어 계곡에서 바람을 따라, 물줄기를 따라 타고 내려오는 농약 때문에 생기는 환경피해를 감당해야 한다. 결국은 오랫동안 터 잡아온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골프장이 골프를 즐기는 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지어진다면, 주민에게 골프장 건설은 생존의 문제를 위협당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는 봉림리 일대의 문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골프장으로 인해 봉산면 전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요즘처럼 먹거리, 특히 농산물의 안전성과 품질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런 때에 골프장이 들어선 곳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누가 먹겠는가? 다들 농사짓지 않겠다고 떠나가는 마당에, 미처 정든 땅을 버리지 못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이 바로 골프장 건설이다.
예산군은 그동안 골프장 건설 추진으로 물의를 빚어왔다. 2003년 광시면에 골프장 건설을 추진하면서 지역주민의 거센 반발을 샀고, 결국 지역주민들과 대전충남녹색연합의 소송으로 해당부지인 군유림이 지역주민들 소유로 밝혀져, 고등법원에서 승소하고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최근 예산군과 군수의 녹지관련 행정이 계속 문제가 된 바 있다.
봉산면 서원산 일대 임야에 18홀 규모의 골프장을 추진하고 있는 사업자는 경남기업이다. 경남기업의 골프장 건립계획은 작년 말 제정되어 고신된 ‘골프장 중점 사전환경성검토 항목 및 방법등에 관한 규정’에 저촉되어 사업추진이 현재 가능하지 않다. 지형 및 경관 항목에서 골프장 사업계획부지 중 경사도 25°이상인 지역의 면적이 30% 이상이 포함되지 않도록 정하고 있는데, 그 기준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업자인 경남기업은 골프장 건설을 포기하지 않고 추가 토지 매입 및 다른 방법을 찾고 있고 예산군 또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다시 승인할 계획이다.
▲ 군청 앞에서 골프장 반대를 외치는 주민들 ⓒ 박은영
▲ 골프장 반대를 외치는 주민 ⓒ 박은영
이런 이유로 서원산 일대의 주민들은 머리에 ‘결사반대’라는 띠를 두르고 군청을 향해 뛰쳐나왔다. 군청 앞에 모여 앉은 주민들은 온 힘을 다해 골프장 건설반대를 외쳤다. 군청 울타리 안에는 관계공무원들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생존을 위해 달려온 주민들을 쳐다보고만 있다.
지역주민들의 발언이 이어지고,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는 함성은 높아져 갔다. 예산군봉산골프장백지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들은 군청으로 들어가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오늘은 마침 국민고충위원회에서 예산지역 순회면담을 하는 날이었다. 공동대책위는 군수와의 면담을 갖고, 주민이 원하지 않는 골프장 건설을 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에 군수는 주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골프장 건설은 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했다. 이 날 국민고충위원회에서도 이 사안에 관한 면담을 갖고, 주민들의 입장을 들었다.
골프장을 건설하지 않겠다고 군수의 말이 군민에게 한 약속인 만큼 꼭 지켜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약속이 지켜질 때까지 봉산면 주민을 비롯한 모든 이들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 봉산면 주민들의 생명, 서원산 계곡수 ⓒ 박은영
군청으로 출발하기 전, 나이가 지긋한 주민 한 분이 마을 뒷산의 흰 바위를 가르치시며 저기에 골프장을 짓는다고 했다. 알려준 곳을 직접 찾아가보니, 상수도 보호구역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봉산면 주민들의 이름으로 하나, 예산군의 이름으로 하나 세워져 있었다. 표지판 위로 올라가는 길이 더 있어 올라보았다. 언덕 위로 올라서자 주민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서원산 계곡물이 한 눈에 보였다. 깊고 평온해 보이는 계곡물 위로 평화로운 바람의 숨소리가 들렸다. 계곡물은 그 존재 자체가 생명이었다.
서원산 계곡물의 생명은 산을 중심으로 모여 사는 주민들의 삶이요, 생명이다. 그렇다면 그 생명의 터 위에 골프장을 짓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과연 골프장을 누가 이용할지 모르지만, 서원산 계곡물의 생명을 알고 있는 ‘우리’는 분명히 아니다. 누구를 위한 골프장을 짓는 것인가? 누구인지 모를 당신들의 골프장과 우리들의 서원산 중 어떤 것이 더 가치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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