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그러나 냉랭한

소설 <당신의 꽃 제비뽑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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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영(seeingsky)등록 2006.03.19 15:28

ⓒ 야베스

직위에는 높낮음이 있을 지 언정 ‘사람 위에 사람 없다’는 말처럼 사람 그 자체로서는 우위를 따질 수 없다. 내 손의 생채기가 남의 고뿔만 못한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중심적인 인간의 심성을 나타낸 것일 뿐 생채기나 고뿔이나 아프긴 매한가지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할진대, 사랑이라고 다를까? 시쳇말로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사랑 역시 그 모습이 천차만별이다.

문제는 사랑의 모습이 다양하다고 해서 그 모든 사랑이 용인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느 사회에나 구성원들이 용인하는 수준의 사랑만 드러난다. 그 외는 사랑이 아니며, 음습한 곳으로 숨어들기 일쑤다. 대개 인정받지 못한 사랑은 초라하다. 스스로는 애써 태연한 척 하지만 떳떳하지 못할뿐더러 스스로도 번민에 사로잡힌다. 이 모든 일이 인정받지 못함에서 비롯한 일이다.

소설 <당신의 꽃 제비뽑기>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두 가지의 사랑을 쥐고 있다. 그런데 모두들 인정받지 못한 사랑을 더 가까이한다. 시쳇말로 불륜이 자행되고 있다. 상대를 향한 열망과 사랑의 감정으로 뜨거운 이들이지만, 분위기는 사뭇 냉랭하다. 무미건조한 문체는 읽는 이로 말미암아 이들의 사랑놀음을 무심경하게 바라보게 한다. 소설 속 인물들 모두 자신들의 관계를 ‘부정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면서 이를 즐긴다.

친구의 사고에도 불구하고 나타날 수 없는 애인의 처지를 동정하는 친구들의 마음에는 인정받을 수 없는 관계에 대한 열망이 움츠러든다. 종국에는 모두가 불행해질지도 모르는데, 이들에게서 앞날에 대한 걱정이나 염려는 찾아볼 수 없다. 찰나는 뜨겁지만 돌아서면 차가워지는 사랑놀음을 무엇으로 불러야 할까?

소설 속 인물들의 행위를 비판의 시각으로 보고자 했다면 심리묘사에 좀 더 치중해야 했다. 건조한 문체만으로는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꾸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행동하는 인물들의 일상을 들여다보자면, 인정받지 못했던 사랑들이 들고 일어나 항변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과연 그럴까? 많은 매체들이 불륜을 소재화하지만, 우리네 일상이 정말 그런가에 대해서는 한번쯤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뜨겁고 차가운 사랑 놀음에 내 가슴이 시큰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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