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님 신부님의 사순특강에 앞서 찬양 노래 듣는 중 ⓒ 이소연
리더쉽, 비전, 자유인, 확신, 변화, 거리를 둘 사람 유형, 성공하는 삶을 위한 요소..이런 글자들이 종이에 적혀 있었고, 변화를 바란다면 생각을 바꿔라, 무표정과 부정적인 사고 습성을 버려야 한다, 진리와 정의를 수호하는 활기찬 한국 천주교회, 성체성사로 하나되는 세계교회, 가톨릭 사제, 신자로서의 긍지...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끼가 많은 젊은 신부님의 강의, 저로서는 흔히 만나는 장면은 아니어서 새로웠습니다.
조부모님 유언에 따라 신부가 된 외아들, 사제서품식 이틀 전에 있는 심사에서 ‘유비쿼터스 시대 교회의 시스템과 정책, 전략’에 대한 뜻을 펼치다가 서품 보류가 되어 짐 싸들고 집에 갔을 때 어머니가 하셨던 말씀 덕분에 지금 신부라는 것,“무슨 일 있지? 그래도 냉담만 하지 마라”시던 말씀 때문에요.
그 즈음에 어머니가 꿈을 꾸셨더래요. 남들 다 서품식장에 들어가고 있는데, 혼자 기타를 메고 눈보라치는 산에 기어오르고 있는 아들을 보시고 순간적으로 안돼~하면서 쫓아가 잡아끌면서 그러셨대요. “너만 왜 산으로 가니?” 누군가는 가야 돼요. “그 누가 왜 너니?” 이렇게 사는 것도 의미있어요. 이제까지 자기 삶은 그런 연속이었다구요. 신부된 지 7년째인데 작년에 너무 답답해서 신부 옷 벗을 생각도 했다고, 그래도 너무 행복하다는 이야기...
재미있었어요. 그야말로 넘치는 젊은 기운이 좋았습니다. 신부님도 답답한 게 참 많겠군요 싶은 안스러움과 함께요. 아래 그에 대한 감상이라고 신부님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린 겁니다.
글쓴이: 공항동 유리안나 날짜: 2006.04.01
3년전 이사오면서 공항동 성당에 적을 두게 되었습니다.
중학생 때까지는 오로지 수녀님 되기만을 꿈꾸는 착한 소녀였는데
철들면서는 내내 하느님보다 세상에 더 관심이 많았고
세상에 더 관심이 많다고 다 삐딱이가 되지는 않는데
저는 날로 왕 삐딱해졌습니다.
몇 년쯤 주일미사조차도 안 가며 살기도 하고
주일미사에 가서도 1시간 내내 딴 생각만 하거나 했으니까
이제껏 봉사라거나 그런 것은 해본 역사가 없습니다.
그러다 어찌 어찌, 요즘 하느님과 함께 하는 시간에 관심을 갖고 있는 중입니다.
주로 분심(딴 생각) 중에 있긴 합니다만.
제가 수녀님 되기만을 바라셨던 그야말로 독실하신 엄마 덕분에
이번 사순 기간에 평일 저녁 미사에 몇 번 갔었고
어제, 사순특강도 들었습니다.
중간자리쯤에서 뵙기엔 화살코 개그맨 닮은 듯한
젊고 패기만만한 신부님..
활기차고 열정적이고 비전 확실하고 교회를 사랑하시는.
듣는 사람들에게라기보다는 신부님 스스로에게 거는
끊임없는 주문, 자기암시 같다는 느낌을 받았겠지요.
1차 목표, 2차 목표 지속적으로 달성하셔서
한국 천주교회가 발랄하고 바람직하게 성장하는 데
세계교회가 인류평화에 좀 더 힘있게 이바지하는 데
지금보다 더 한몫 단단히 해주실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기도발이 서는, 하느님과 정말 친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도.)
그래서 말씀인데요.
부처님 수기설법이 그랬다는 것처럼,
그런 강의를 하실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하나의 이야기 주제에 꼭 필요하지 않은 많은 이야기들은,
과감히 버리고 가실 수 있으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서 좀 더 철저히 준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같은 경우, 신부님 포커스가 청소년에게 맞춰져 있다는 말씀은
한 번으로 충분합니다.
듣는 사람들이 주로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걸,
공항동이 명동이나 청담동과 어떻게 다른지,
와서 아셨다고 한다면 너무 허술하셨던 것이고
와서 아셨다고 하더라도 듣는 사람 눈높이에 맞춰서
이야기할 수 있는 순발력과 기술이
좋은 강사의 조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재미있고 활기찬 것은 좋지만
정서불안이거나 산만하다고 할 만한 것들이
개그라고 인기를 끄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해주고 싶은 얘기가 많고,
몇 번이고 당부하는 그 마음이 느껴졌습니다만
저녁 밥 못 먹고 가 있었던 저는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지는 강의에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더라는 것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짧고 알차고 그래서 힘있는 강의,
그 속에서 신부님의 개그맨 뺨치는 실력과 재능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내 활기찬 신앙생활을 위해서
놀지 말아야 할 사람의 유형을 정해놓고 경계하라는 건
개인적으로 취향에 맞지 않았습니다.
그럼 그 사람들은 누가 돌보나요?
어울리는 사람 닮아가고
노는 물을 잘 골라야 팔자가 달라지고
가난은 나랏님도 어쩔 수 없고
남 구제한다고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건 바보라고 알지만요.
리더쉽, 비전, 확신, 승리의 깃발..이런 거 정말 동경하지만요.
세계적인 사상가나 경영혁신가의 책은 보면서 감탄하지만
평생 시골에 묻혀 어린이들과 함께하며 우리 말 살리기에 애썼다는
아웃사이더 할아버지의 책 한 구절에는 마음이 움직여요.
마음을 붙드는 강의를 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시간에 일해야만 먹고 살 수가 있는
신부님과 비슷한 나이면서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막노동일을 하는 청년이 어제 특강을 들었다면
신부님이 쓰시는 비전.이라는 말에서 자신의 비전을 볼 수 있었을까요.
무표정하고 싶어서, 잠수(일하다 말고 연락두절)하고 싶어서,
습관적으로 한숨쉬고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게
재미가 있어서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어설픈 사람이 되고 싶어서 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남들 사는 게 얼마나 다양하게 고달픈지 모르시거나
철이 없으시다고 밖엔 할 말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이 길어졌는데요.
많이 힘드실 줄 압니다.
좋은 분이신 것 같구요.
그래서 기타를 메고 산으로 가시는 신부님 앞날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뵙게 되어 반갑고, 지켜보겠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늘 신부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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