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잔에 담긴 영화 'Sideways'

검토 완료

홍현철(ttpple)등록 2006.04.04 11:14
와인 한잔의 맛이라...와인의 그 수많은 이름들과, 그 맛의 깊이, 향과 맛을 음미하면서 포도밭에서부터 숙성과정까지를 뚫어 보는 미각, 혹은 통찰력이라,,, 와인 한잔에 담긴 그 맛의 오묘함을 묘사해 보고픈 충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와인을 아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영화 속 마일스는 와인의 맛을 음미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인생의 즐거움인 듯 보이는 소설가이다. 그와는 달리 ‘본능’에 충실한 것을 신조로 삼으며 인생을 즐기는 잭과 함께, 와인의 맛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에 오르는 두 사람. 영화는 둘의 여행과 와인을 섞어, 한 잔의 칵테일을 만들어 낸다.

와인의 맛을 음미할 줄 아는 사람은 삶의 아픔을 느껴본 사람들이다. 아내와 이혼하고, 쓰는 글마다 번번이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하는 마일스, 역시 이혼 후 혼자 살아가며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마야, 사정은 알 수 없지만 홀어머니와 딸을 홀로 부양하는 스테파니 역시 어떤 깊은 인생의 사연을 간직한 여인으로 그려진다.

반면, 마일스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의 친구 잭은 인생의 아픔이란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인 듯 묘사된다. 결혼 1주일을 앞두고 만난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에게 거짓이 들통나고 된통 ‘복수’를 당한 다음날 또다시 다른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결국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약혼녀에게 돌아가는 잭. 그에게 있어 인생은 그저 가볍게 즐기고 가볍게 웃어넘기는 ‘명랑한’ 것이다. 잭은 알콜은 알지만 와인의 맛은 알지 못한다. 인생의 맛과 와인의 맛. 마일스에게서는 숙성된 와인의 향기가 나지만, 잭에게서는 시원하고 경쾌하며 쿨한 알콜의 맛이 난다.

영화는 ‘잭’이라는 가벼운 인생의 명랑한 맛과, ‘마일스’라는 숙성되고 그윽한 맛을 비교해 관객의 미각 앞에 내어 놓는다. 잭의 경쾌한 삶에 마음이 끌릴 법도 한데, 영화가 끝난 후, 관객의 미각은 자연스레 ‘마일스’에게로 간다.

우리네 인생은 대개 경쾌하고 가볍게, 그리고 현실을 그저 즐겁게 살아갈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받으며, 또한 우리네 인생은 대개 와인 잔 한 잔 두고 ‘음미’하기 보다는 글래스 잔에 뭐든 가득 채워 한껏 들이키는 데에 익숙한 것은 아닌지. 와인 잔에 담긴 포도와 햇빛과, 정성스런 숙성과 정제의 맛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많은 사연과 고독과 고통을 감내하며, 그래도 그 아름다운 생을 살아내며 결국은 정제된 인생의 그윽한 맛을 낼 줄 아는 것이, 그것이 인생이다. 그 맛을 위해 아껴두었지만, 축제의 순간에 그 뚜껑을 따기 위해 아껴두었지만, 결국엔 그 ‘슈발블랑’을 따는 그 순간이 축제의 순간임을 알게 되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그것이 와인 잔에 담긴 한편의 영화, ‘Sideways'.

숨 가쁜 일상 잠시 뒤로하고 이 영화 한잔에 한번 취해보시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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