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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프로 스포츠의 천국이다.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흑백의 인종 갈등 문제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회피하고, 국가의 도덕성을 위장하고, 다민족 국가로서 백인의 정치적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비판의식을 약화시키고 억누르는 장치로 프로 스포츠를 이용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 사회가 근원적으로 짊어지고 있는 이런 어두운 측면은 지난 번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로 말미암아 그 진상이 여실하게 드러난 바 있다. 그 진상을 덮고, 인종 차별적 사회적 구조를 숨기면서 그에 따른 정치적 불만의 분출을, 이른 바 3S를 이용하여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려 한다는 주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 사회만큼 <동등한 기회>를 주장하고 <인종적 차별>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국가도 드물다. 그것은 역으로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회가 주어졌다는 미국 사회에 인종적 차별과 종교와 문화, 국적의 차이에 따른 균등하지 않은 기회 차별적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3S란 섹스, 스포츠, 스크린을 말한다. 흑인들이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분야는 스포츠 스타로서 성장하는 것이다. 정치적 차별로 인해 기득권 세력에 들어가기에 어려운 처지로서 흑인 아이들의 꿈은 단연 스포츠 스타이던지, 스크린 속의 스타이든지, 가수로 성공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미래의 꿈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성공한 흑인들은 미국 전체 사회의 우상으로 우뚝 서게 되고, 이후 ‘고생 끝, 행복 시작의 문(門)’에 들어서기 마련이다.
미국 프로 풋볼 리그(NFL) 수퍼볼에서 MVP(최우수선수)로 선정된 하인스 워드(Hines Ward)와 그의 한국인 어머니 김영희(59)씨가 고국을 찾아 왔다. 30년 만에 귀향이라며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가히 영웅 탄생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점에서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주는 역할도 하고 있는 듯하다.
또 엄연한 차별이 숨쉬는 미국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렇게 훌륭한 젊은이로 길러준 어머니의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인터뷰를 보니, 하인즈 어머님의 희생정신은 신세대 어머니들이 잊고 있었던 전형적-전통적 우리의 어머님 상을 다시 보는 것 같아 깊은 상념에 빠지게 해 준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 달리 한편에서는, 만일 하인스가 한국에서 자랐더라면 과연 그렇게 자신의 재능을 꽃 피울 만큼 성공했을까 하면서, 한국인의 의식 깊이 숨겨진 인종차별적 행태들에 대해 반성을 촉구하기도 한다. 이런 부정적 측면은 하인즈 어머님이 겪은 이 단 한 가지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아픈 상처도 있어요. 하인스가 고교 시절에 한국 학생들이 학교 간 친선경기를 한 적이 있는데, 하인스가 야구를 잘 하니까 한 학교에서 초청을 해서 같이 야구를 했어요. 그런데 경기가 끝나고 밥 먹으러 갈 때에는 행사 주최자가 한국 아이들만 데리고 가더군요. 그래서 내가 다시는 한국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했어요.
98년에 어머니 상을 당해 한국에 갔는데 인텔리처럼 보이는 한국 사람들이 뒤에서 침을 뱉기도 하더군요. 한국 사람들은 외모와 나이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더군요. 그런 한국 사람들은 얼마나 잘 났는지 … .>
서울에 와선 이런 말도 했다.
<한국 사람들은 말이야, 좀 그렇지. 미국에서도 한국 사람들끼리 사이가 별로 좋지 않잖아. 이민 온 사람이 우리들을 무시하고. 피부 색깔도 같은 한국 사람들끼리 인종을 더 차별하잖아. 근데 참 이상해. 우리 새끼들이 피부색 다른 것은 그렇게 싫어하는데, 왜들 그렇게 머리는 노랗고 빨갛게 물들이고 다니는지…. >
격세지감이랄까? 하인스 어머님의 지난 시절의 짙은 원망이 깔린 이 말 속에 우리 삶과 의식 속에 들어 있던 결정적 치부가 다 드러난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이민족으로부터 민족 차별을 당했으면서도 그 당한 것을 남에게 그대로 전가하는 무반성적 문화의식 구조에 기반한 행태로 여겨진다. 백인에 대해서는 굴종적 태도를 취하면서도, 같은 유색인에 대해서는 마치 천부적으로 무슨 우월성이라도 타고 난 듯 거만한 태도를 드러낸다.
실제로 해마다 10,000명 아이들이 버려지고, 그중 2000명 가까이 버려진 아이들을 수출하는 국가의 모습에서 그 어떤 올바른 인종 의식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단일민족을 자랑하는 이 순혈주의 부정직성을 타파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을 우리 자신의 아이로 입양하지 못하고, 우리가 피가 흐르는 코시안(korsian)조차도 차별하고 무시하고, 동남아에 나가서는 민족적 우월성을 뽐내는 오만한 태도와 편견을 가지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만 따지고 보면 가축에게나 핏줄이 있지, 인간에게 무슨 핏줄이란 게 있겠는가? 진돗개 족보(pedigree)와 <김해 김씨>라는 족보(genealogy)가 같은 것일 수 있겠는가? 까놓고 얘기해서 혈족주의(consanguinitism)라는 그 괴물이 이성을 가진 인간의 삶을 규정하고, 인간의 행, 불행을 좌우해서야 되겠는가? 아닌 말로 인간에게 동물적 <순종(純種) 의식>이란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짐승에게나 순종이란 게 있으면 있었지, 사람에게 순종주의(purebredism)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가? 스스로 자신의 어머니를 선택해서 이 세상에 나온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저 자연이 준 하나의 우연적 사실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런 생각이 옳은 것이라면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가 내 부분이요, 내 몸의 일부요,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의 일부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남을 짓밟고, 피부색에 따라 남을 능멸하고, 내가 잘 되기 위하여 남을 비방하는 일 따위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인간인 한에서 <한 몸>이란 의식을 자각한다면, 피부 색깔에 관계없이 인간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피에 기반한 혈족주의가 우리의 친족 중심적 사고방식을 가져오고, 이것이 또 지연으로 묶이고, 나아가 학연에 의한 학벌구조를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을 생산해 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 혈통에 근거한 구조적 질서에 의해 인간의 삶이 규정되면서 우리가 그토록 저주하는 차별 있는 사회, 불평등한 사회, 계층적-계급적 사회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한다.
그 구조적 질서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데, 나아가 차별 받지 않고 균등한 인격적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야 할 우리를, 야만의 질서에 내맡긴 <야수의 사회>와 <야만의 시대>를 가져오게 한 것이 아닌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 잘못된 사회 구조와 우리 의식의 밑바탕에는 <혈족주의>라는 괴수가 도사리고 있음은 말 할 나위가 없다.
우리에게는 부지불식간에 역사적으로 형성된 나쁜 의식이 여럿 있다. 역사적으로 형성되었든, 가진 자와 지배 권력에 의한 세뇌화의 결과로 생겨났든, 하나의 이데올로기와 같은 것이라면 그것을 단호히 도려내야 한다. 그것은 혈족, 친족, 지연, 학연에 의한 인간 차별이다. 차별이라는 것은 자연적 차별이든 후천적으로 생겨난 차별이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상실하게 하는 바이러스와 같은 것이다.
하인즈 워드의 쾌거가 한국인이라는 혈족의 우수성을 자랑하는 방편적 수단으로 전락해서, 민족적 애국주의로 연결되는 잘못을 범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원화한 다민족 사회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미래의 꿈은 없어지고 말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인즈 워드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잘못된 우리의 인종적 - 혈족적 - 순혈적 편견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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