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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역에서 만난 아름다운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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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권(dkahn21)등록 2006.04.06 17:03
며칠 전이다. 전철을 타기 위해 승강장으로 향한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데 스무 명도 넘는 여학생들이 뛰다시피하면서 나를 앞질러 계단을 내려갔다. 고등학교 1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해맑은 얼굴의 예쁜 여학생들이었는데, 왁자지껄 떠드는 목소리가 약간 귀에 거슬리는 그런 상황이었다.

우르르 승강장으로 내려간 여학생들은 계단 앞에서 우왕좌왕 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내가 계단을 다 내려갈 때쯤 다시 계단을 우르르 올라왔다. 나는 계단을 다 내려가 승강장에 섰고, 그 여학생들은 내려 온 계단을 다시 쏜살같이 올라가더니 반대편 승강장으로 우르르 건너갔다. 그때쯤에야 나는 그 여학생들이 7호선 환승 통로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아침마다 온수역에서 1호선 전철을 타고 회사에 가는데, 온수역은 7호선 종점이기도 했다. 그런데 1호선은 지상역이고 7호선은 지하역이다 보니 환승통로가 조금 애매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할머니나 할아버지들도 가끔 환승 통로를 못 찾아 물어보는 경우가 있었다.

건너편 승강장으로 간 여학생들은 그 곳에서도 우왕좌왕하면서 저희들끼리 숙덕숙덕했다. 시끄러운 곳이 아니라서 여학생들의 이야기를 대충 들을 수 있었는데, 이야기의 핵심은 ‘7호선 타는 곳이 어딘가’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떤 여학생의 말에 소리를 내며 웃을 뻔하기도 했다. 한 여학생이 직통 전철이 다니는 선로 쪽을 가리키며 “여기서 타는가 봐”라고 했기 때문이다. 온수역에서는 승강장을 사이에 두고 한 가운데 직통 전철이 다니는 선로가 두 개 있었다. 그 여학생이 가리킨 직통 전철 선로 쪽은 안전대와 안전대 사이가 굵은 쇠줄로 막혀 있었다. 온수역에는 직통 전철이 서지 않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그런 모습을 건너편 승강장에서 재미있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손짓으로 ‘끝으로 가면 있다’는 신호를 보낼까 하다가 그 여학생들이 금방 찾아 갈 것 같아 가만히 있었다. 승강장이 둘 있는 곳에서 이미 한쪽 승강장에도 와 봤고, 반대쪽 승강장에 그들이 서 있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고개만 돌려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면 승강장 끝에 있는 환승 통로를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정 못 찾으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출근 시간대라 승강장에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여학생들은 저희들끼리 숙덕숙덕하더니 다시 우르르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속으로 ‘정말 멍청한 녀석들이잖아’하는 생각을 했다. 다시 계단을 올라 간 여학생들은 내가 서 있는 승강장 쪽으로 건너왔다. 그리고는 내 가까이에 몰려서서는 건너편 승강장에서 했던 이야기들을 되풀이했다.

나는 ‘정말 재미난 친구들이군’하는 생각을 하면서 속으로 또 웃었다. 그리고 여학생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한결같이 옷을 단정하게 입고 있었고, 얼굴빛은 그야말로 우윳빛이었다. 게다가 표정은 무척 밝았고 눈도 반짝반짝 빛나는 그런 예쁜 여학생들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어떤 여학생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순식간이었는데 약간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몇몇 여학생의 얼굴이 내 눈에 들어 왔는데, 그때서야 그 여학생들이 장애인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너무나 예쁘고 밝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다가 목소리도 경쾌해서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얼떨결에 ‘저 쪽 끝으로 가면 돼’라고 손짓을 하면서 승강장 끝을 가리켰다. 여학생들은 일제히 승강장 끝을 보았다. 하지만 환승 통로는 보이지 않았다. 중간에 신문 가판대가 통로 입구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학생들은 또 저희들끼리 왁자지껄 떠들더니 승강장 끝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여전히 시끄럽게 떠들어대면서……. 승강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눈치를 챘는지 싱긋이 웃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뛰어가다시피하는 여학생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제야 약간 뒤뚱거리며 힘들게 걷는 학생도 몇 명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들이 어디까지 가는지 몰라도 지상철인 온수역에서도 저렇게 헤매는데, 정상적인 사람도 방향 감각을 잃고 헤매기 쉬운 시내 안쪽의 복잡한 지하철 통로에서는 또 얼마나 많이 헤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상황을 빨리 알아차려 친절하게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그 여학생들은 왜 승강장에 있던 사람들에게 물어 보지 않았을까? 건너편 승강장에서 우왕좌왕할 때도 주위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여학생들은 물어보지 않고 곧바로 내가 있는 승강장으로 건너왔다. 그리고는 또 다시 우왕좌왕했다. 물론 바로 옆에 서 있던 내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왜 그랬을까? 장애인으로서 비장애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거리감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그날 아침 전철역에서 만난 그 여학생들의 화사한 얼굴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린다. 연한 하늘색과 분홍색이 많이 들어 간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그런 얼굴들이었는데... 그들이 큰 불편 없이 우리와 함께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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