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다빈치코드와 최후의 만찬

유월절 생명의 말씀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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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섭(leeks126)등록 2006.04.18 16:53
다빈치 코드의 최후의 만찬

최근 기독교계의 화두로 떠오른 소설 다빈치코드.
기독교 신앙은 그리스도가 인생들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운명하심으로 인생들도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에서 출발하는데 이 소설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희생된 것이 아니고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평범한 사람처럼 자식을 낳고 살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소설이지만 기독교의 신앙의 근간을 뒤흔든다는 이유에서 최근 일부 기독교 단체에서는 5월 개봉예정인 이 영화의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고 한다. 또한 정계에서도 상영을 법률적으로 막을 수 있는 지 검토 중이라 한다.
많은 사람들의 논쟁거리로 떠오른 다빈치 코드. 이 소설의 논쟁의 중심에는 ‘최후의 만찬’ 이라는 너무나도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림을 보게 되면 예수님의 우측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있는데 보통 사도 요한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소설은 이 사람이 남자가 아닌 여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그의 외모가 여성스러울 뿐 아니라 가슴선이 봉긋하게 솟아 올라있기 때문이며 그 사람이 놀라는 표정으로 예수님과 'V'자 형태를 만들고 있는 것은 고대로부터 여인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예수님과 이 사람 사이에서 그려지는 실루엣이 'M' 자의 형태를 띄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를 의미하는 것이라 한다.

이파리를 보지 말고 나무를 보자
그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든 요한이든 이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5세기 사람으로 예수님이 행하신 ‘최후의 만찬’이라고 불리는 유월절 예식(마태복음 26장)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어디까지나 그의 상상 속에서 그려졌을 뿐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유월절 성찬 예식 즉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외에도 중세시대 많은 화가들의 소재가 되었고 화가들의 관점에 따라 그림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은 그림일 뿐이지 이것이 신앙의 토대를 흔들만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림이 어떻게 그려졌든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행하신 유월절 성찬예식은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 언약을 세워주셨고 그것으로 인류는 영생의 소망을 갖게 되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복음서를 통해 유월절 밤에 행하신 예수님의 마지막 성찬 예식인 유월절을 기록하고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옆에 있던 자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주신 유월절 새언약 마지막 만찬으로 인생들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는 것이다. 봄바람이 불어 이파리가 흔들려도 나무는 언제나 제자리에 있는 법이다. 봄바람 분다고 소란을 피우기보다 나무의 중심의 어디에 있는지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개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이렇게 하다보면 원숭이 엉덩이는 비행기가 되기도 한다. 이런 엉뚱한 논리 속에 만들어진 비행기가 날기라도 한단 말인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빈치의 그림 속에 숨겨둔 이야기나 철학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유월절)에서 약속하신 생명의 말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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