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TX 승무원들이 점거하고 있는 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로 들어가는 길 ⓒ 필화
비정규직로 일하면서 받았던 설움- 유령, 노예 같은 삶.
필화 먼저 KTX의 비정규직 승무원으로 일하시면서 느꼈던 점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 서울 KTX 열차승무지부 민세원 지부장 ⓒ 필화
민세원 저희(KTX 승무원)는 KTX 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한창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당시 위탁비정규직으로 뽑혔습니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이렇게 비정규직으로 일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입사교육 때도 담당자들이 ‘일단 비정규직으로 뽑았지만 나라가 운영하는 철도청에서 뽑았기 때문에 공사가 되면 정규직이 될 거다. 항공사 승무원 못지않은 대우해주고, 프라이드를 갖게 해주겠다.’라고 약속을 했었거든요.
처음에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이, 승무원으로서 당연히 받아야 하는 안전교육, 서비스 교육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쉬는 날인데도 일을 시키고, 초과 근무에 대한 수당도 안주고, 보건휴가도 못쓰고, 병가를 하루 내더라도 월급에서 공제가 되고. 항의하면 근무평가를 안 좋게 해서 내년에 계약 안시키겠다고 협박하고. 성희롱적 언행, 비인격적 발언에 시달림도 당했습니다. 설, 추석에 예쁘게 꽃단장하고 한복 입고 6-7 시간 인사하라고 하면 인형처럼 해야 하고, 대가도 못받았죠.
특히나 열차 안에서 일은 저희들이 다 하는데도 정규직인 팀장이 모든 성과를 대신 받고 권한도 다 그쪽에 있었습니다. 꼭 유령 같았습니다. 내가 한 일이 다른 사람이 한 것처럼 되어버리고.
노예처럼 사는 게 어떤 건지 경험을 했어요. 노예제도는 옛날에나 있는 줄 알았는데. 얼마든지 인권유린, 착취를 하면서 근무평가를 빌미로 협박하는 거죠. 생존권을 손아귀에 쥐고 마음대로 노동자를 좌지우지 하는 것이 비정규직의 위탁이라는 것입니다.
2005년 노조 결성, 빛좋은 개살구인 철도공사의 회유책.
민세원 그래서 2005년에 노조 결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9월 30일에 첫 단체 행동을 벌였습니다. 당시 홍익회가 한국철도유통으로 이름만 바뀌고 공사의 자회사가 되었는데요. 11월에 노조활동하고 있는 간부들에게 해고 통보를 하고 압력 행사를 하더군요. 철도공사는 KTX 여승무원은 하청업체 노동자이고, 원청인 공사는 제3자니까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에 변함없었습니다. 결국 11월 24일 서울대 대합실에서 저희가 장시간 농성을 벌인 후에야 처음으로 공사 경영진과 마주 앉게 되었죠.
그런데 공사측에서 주장하는 바는 고용안정보장을 해줄테니까 다른 자회사에 정규직으로 근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위탁방침은 철회할 수 없다더군요.
하지만 공사 자회사가 17개인데 그곳의 정규직 임금수준도 1기 KTX 승무원과 다르지 않습니다. 또한 저희가 계속 노조활동을 할 경우 위탁사업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면 저희는 또 갈 때가 없어지는 거죠. 자회사는 300명 이상의 여승무원을 감당할 역량도 안되고요.
철도공사는 KTX 운영 핑계로 자회사를 우후죽순 만들어서 공사경영진이 퇴임하면 자회사 사장직으로 앉곤 합니다. 자회사에 직원을 위탁고용해서 법적인 책임은 모두 떠넘기고 뒤에서 권한만 행사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죠. 부당한 것에 대해 고쳐달라고 요구해도 법적으로 저희가 소속되어 있는 자회사는 ‘우리 권한이 아니다. 공사가 알아서 한다.’ 이렇게 나오고, 공사는 제3자이므로 아무런 책임도 없다고 하니 말조차 해볼 수 없습니다. 하청노동자의 설움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결국 위탁된 자회사의 정규직이란 단어만 정규직이었습니다. 고용안전보장, 임금보전 두 가지가 정규직의 조건인데, 다 안되니까요.
가장 어려운 것은 내 옆사람의 흔들림
필화 결국 지난 4월 14일부로 모두 해고통지를 받으셨지요?
민세원 철도유통이 더 이상 승무사업을 못하게 됐고, 공사가 KTX 관광레저로 사업권을 넘겼기 때문에 저희를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KTX 개통 때부터 2년 동안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일해 온 저희를 어떠한 보장도 없이 다 해고하겠다는 것은 저희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생존권의 문제입니다. KTX 승무원으로 존재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제기된 지금, 강력한 투쟁으로 이철 사장의 그러한 결정, 정부방침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철사장이 지난 월요일부터 일주일 동안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병가를 내서 일본으로 휴가를 갔습니다. 우스운 건 그 일주일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조정회의를 열어서 공사쪽에 노조측과 조건없이 교섭을 하라는 권고안을 냈는데 그 교섭기간이었던 거죠. 2차 교섭회의가 있는 날 오전에는 해고통보를 받았구요.
그러한 무책임하고 말도 안되는 행동으로 저희 생존권을 아무렇지 않게 박탈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공사와 정부를 국민된 입장에서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필화 긴 투쟁과정 속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민세원 이곳(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에는 3월 9일에 들어왔습니다. 3월 1일부터 총파업에 함께 참여했는데, 3월 10일 오후 6시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이미 직위해제 받은 70명은 해고, 나머지는 직위해제하겠다는 문자 경고가 오더라구요. 가만히 해고당하고 있을 수는 없어서 대화요구를 위해 이 건물을 점거하게 되었습니다. 이철 사장 및 공사 경영진과 대화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45일이 넘은 지금까지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네요.
▲ KTX 승무원들이 생활하고 있는 건물 내부 ⓒ 필화
저는 조합원들이 힘들어서 흔들리고, 결국 사측에 복귀할 때 제일 괴롭고 힘듭니다.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투쟁이 길어지면서 가족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일반적으로 하고 싶은 것들, 운동, 연애, 공부 같은 것들도 못하니까 어려울 거예요. 무엇보다 KTX 승무원으로서 일을 하고 싶은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일을 안하면서 싸워야 하니까 그 사실이 무엇보다 힘든 것 같습니다.
2년 동안 말도 안되는 조건속에서 일을 해왔고 긴 파업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싸워온 이 사람들은 KTX 승무원을 반드시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젊은 여성이라고 해서 돈을 안벌어도 된다는 사회 일부의 시각은 잘못된 것이죠. 무노동 무임금이라고 이번에 월급이 1-3만원 밖에 안나왔는데 당장 생존권 문제가 급박합니다. 생계 때문에 버티지 못하고 울면서 뛰쳐나갈 수밖에 없는 동지들, 투쟁하고 싶고 여기 있고 싶은데 돈 때문에 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지 않습니까.
동지애와 의리로 버티는 싸움
필화 그렇다면 어려운 상황을 끝까지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민세원 처음에는 공사 정규직이 되고 싶어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단순히 공사 정규직이 되고 싶어서 여기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저희 투쟁이 이 땅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하청노동자들의 인권과 권리를 위한 싸움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0대의 나이에 비정규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고작 백만원 안팎의 돈을 받고 소모품 취급을 당하면서 40대, 50대가 되었을 때 얼마나 빈곤한 삶을 살아가겠습니까.
노무현 정권이 사용자가 편하게 회사를 운영할 수 있게 여건을 만들어 주겠다고 공언하면서 당장 인건비를 줄여서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고, 정규직을 비정규직화시키는 행태가 만연되어 있는 사회에서 저희가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고들 하지만, 저희가 공사정규직화를 이루게 된다면 모든 국민들을 빈곤함에 밀어넣고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비정규직 위탁 방침을 고칠 수 있는 첫 단추가 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 다른 노동자들이 지지의 뜻을 적은 자보 ⓒ 필화
또한 단지 KTX 여승무원의 인권과 노동권을 찾겠다고 주장했다는 이유로 간부들, 집행부들, 이런 사람들이 수배가 되고, 그런 부당한 현실에 맞서 싸우고 있는 동지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싸움이 정당하다 느끼고, 동지애와 의리로 버틴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조합원들이 많이 힘들어합니다. 우울증, 신경쇠약. 정신적 상담치료 필요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딜 수 있는 것은 의리가 아닐까요. 내가 여기서 나가면 그만큼 여기 남아 있는 사람들이 더 고통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저희 중에 3월 말에 결혼한 동지가 4명이 있어요. 결혼준비도 많이 못하고 파업하다 결혼식장가고, 다시 파업장으로 돌아오고 그랬습니다. 그 당시 신랑이 써준 편지를 집회 때 읽어주었는데 들으면서 많이 눈물 흘렸습니다. ‘지지하고 믿는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그런 내용이었어요.
또 한 동지가 집회에서 ‘나랑 가장 친한 친구였고, 내가 파업이 힘들어서 나가고자 했을 때 나를 잡아준 동지였는데 어느 순간 나가서 복귀자가 되어버렸다. 이 파업현장에 나는 있는데 나를 잡아줬던 그 아이가 없다는 게 너무 슬프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어요. 다들 그 발언 듣고 울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그런 사람들이 마음을 돌려서 끝까지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파업 초기에는 2-30명 정도 빼고는 끝까지 함께 할 줄 알았는데 파업은 정말 현실이더군요. 투쟁이 길어지면서 포기하는 인원이 더 많이 생겨서 현재 대오가 370명에서 290명으로 줄었습니다. 지금 있는 대오라도 잘 지키려구요.
언론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 삼가야
필화 KTX 승무원들의 싸움에 대한 언론보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민세원 언론의 성격이 냄비 같고 단편적인 내용만 다루는 것 같아요. 공사의 누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을 옮겨 적기만 합니다. 그것이 거짓임이 분명한데도 기사화 되면서 국민들은 사실인 것으로 인식하잖아요. 그랬을 때 그 기사 한 줄 때문에 노동자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언론의 역할은 양쪽 주장이 상이할 때 양쪽 주장을 다 듣고 그 주장의 근거를 캐서 이쪽이 맞다고 밝혀주는 것 아닌가요. 공사가 내준 보도자료 그대로 베껴서 실어주기만 하는 것이 언론이 아니잖아요. 그래도 비교적 KTX 여승무원 노조 투쟁은 왜곡보도까지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정말 다행히도.
하지만 언론들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것만을 앞다투어 보도합니다. KTX 개통 때 여승무원이 고속철의 꽃이라고 이슈화시키더니만, 저희가 투쟁을 할 때에는 공권력이 투입되어 부상자가 생기거나, 이곳을 점거했다거나 하는 어떤 극적인 일이 있을 때에만 언론에 보도가 나더라구요. 그러한 저급한 보도행태가 바뀌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정당한 싸움을 하고 있다
필화 현재 개인적으로 가장 바라는 점이 있다면?
민세원 당연하게도 하루 빨리 공사의 정규직직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념없이 KTX를 운영하고 있는 철도공사가 변화되어서 안전운행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한참 걸리겠지요. 여태까지의 고생과 상처와 모든 희생을 감내하면서 KTX 승무원이고자 했던 저희 동지들이 기쁨에 들떠 울고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현재 소원입니다.
필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민세원 기자분들이 쉽게 질문합니다.
“밖에서 볼 때 KTX 승무원들이 공사정규직화 시켜달라고 파업하는 것이 집단이기주의라고 많이들 생각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이렇게 투쟁하기 전에는 신문에서 노동자들의 파업기사를 얼핏 봤을 때 자기 밥그릇 싸움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아직까지도 어르신들 중에는 노동운동하면 빨갱이라고 하는 분들이 있지요. 이상하게도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같은 노동자인 국민이 그것을 이해 못하고 색안경을 끼고 보고 탄압을 합니다. 우리는 제도권 교육 속에서 기본적 노동권이나 근로기준법, 노동자에 대한 개념조차 교육하고 있지 않습니다. 프랑스에서 대학생들이 그런 말도 안되는 법안에 반대해 투쟁할 수 있는 근간이 되었던 것도 알고 있기 때문에 투쟁을 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우리는 전혀 모르고, 그 상태에서 사용자측의 보도자료를 주로 싣는 신문과 뉴스 같은 매스미디어의 영향만 받으니까 편파적인 보도 속에서 모든 노동자의 싸움이 집단이기주의로 매도가 되는 거죠. 하지만 결국 노동자의 싸움은, 국민 대부분이 노동자이기 때문에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을 막기 위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생 여러분들도 사회에 나오기 전에 토익 토플을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막상 사회에 나왔을 때 부당한 현실에 대한 대비가 필요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고 당해보고 나서야 ‘말도 안돼!’ 하기 전에, 내 문제가 되기 전에 먼저 힘을 발휘하고 목소리를 내고 문제제기를 하고 그래야 사회가 더 많이 바뀔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투쟁하는 과정에서 목을 무리하게 사용하여 성대결절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노조의 주장과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한 시간이 넘도록 많은 이야기를 해주신 민세원 지부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현재 KTX 노조원들은 국회 앞에서 이틀째 농성을 벌이다 4월 20일, 경찰에 전원 연행된 상황입니다. 이들에 대한 공권력의 부당한 탄압은 거두어지고, 철도공사측은 책임있는 자세로 이들의 정당한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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