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 한국 영화 미래를 칸이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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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서(pump2000)등록 2006.05.02 16:08
윗글에서 주장하시는 분들 미안하지만 한마디로 쓰잘데기 없는 소리에 불과하다.

"구로자와 아키라 일본대표 그이상, 임권택은 한국대표"?

"단적으로 구로자와 아키라와 임권택은 다르다. 아키라는 단순히 일본영화의 대표주자로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다. 반면 임 감독은 한국영화의 대표주자일 뿐이다. 수명이 짧다."

임권택의 영화세계가 한국대표에 불과할 뿐이고 구로자와 아키라가 일본 대표 이상이라면 그 대표 이상의 수준은 도데체 뭔지 궁금하다. 영화가 무슨 야구 메이져리그, 축구 프리미어리그처럼 세계 수준이 있고 한국 영화는 마이너 리그라도 된다는 것인가? 이건 하나의 인종주의의 연장선으로 느껴질 뿐이다. 구로자와 아키라가 거장임은 인정하지만 임권택의 영화세계가 한 수 아래로 취급받아야 할 이유가 뭔지 도데체 알길이 없다.

50-60년대 일본영화 전성기를 주도한 구로자와 아키라 좋은감독이다. 그러나 라쇼몽, 7인의 사무라이, 요짐보등 상업영화가 미국 서부 영화에서 리메이크 또는 영향을 끼쳐 유명해진 측면과 베니스-아카데미외국어-베를린-칸에서 입상한 것이 결합되어 소위 거장의 반열에 오른것이 결합된것 아닌가.

"태권도·불교·영화 등 관광공사의 3대 한류상품 중 하나가 영화다. 결국 영화는 한국의 문화관광상품 중 하나였을 뿐이다. 좋은 전략이긴 했으나 이런 식으로 한국 영화를 계속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을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이란인 감독'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감독들 중에 아직은 그런 인물이 나오지 않았다."

오늘날의 영화는 문화관광 상품이란 측면이 사실을 부정함에 대하여 당황할 수 밖에 없다. 영화는 원래 태생부터 대중 예술이었다. 미안하지만 미국영화는 미국의 문화관광상품이고 프랑스 영화는 프랑스 문화관광상품이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역시 위대한 감독이다. 그런데 한국 감독중에 아직 그런 인물이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여부는 본인의 생각일 뿐이다.

"어느 정도 작품을 하면 무작정 해외 영화제를 겨냥하는 것도 우리가 가진 병폐 중 하나다. 우리나라 감독들의 꿈이 칸 영화제 수상이라는 말을 들은 바 있다."

과거 일본 영화 전성기 시대에 구로자와 아키라의 입상에 다른 일본 영화감독들이 자극 받아 일본 영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세속적인 동기가 과연 나쁘가만 한것일까? 모짜르트가 빚이 없었다면 그 좋은 작품이 그렇게 많이 나올수 있었을까?

"스티븐 스필버그는 새 영화가 나올 때마다 파리를 방문하고 관객을 만난다. 박 감독은 <올드보이>(2003)로 성공한 후 <친절한 금자씨>(2005) 프랑스 개봉 때 초청했는데 안 왔다더라."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들 솔직히 대부분 블럭버스터 아닌가, 본전을 뽑으려면 전세계 로드쇼가 제작사입장에서도 필요한것 아니었나 하는 점이다. 조선이 사신을 보내 명나라로부터 세자 책봉 허락받듯이 꼭 박찬욱이 반드시 프랑스에 와서 프랑스 평론가와 관객을 알현해야만 하는 것인가?

"<올드보이>는 칸 수상 전 필름마켓에서 독립배급사 '와일드 사이드 필름'과 거래가 이뤄졌다. '와일드사이드필름'은 박 감독의 다음 작품도 함께 하고 싶어했으나, <올드보이>가 성공하자 <친절한 금자씨>는 초대형 다국적 배급사인 메트로폴리탄으로 넘어갔다. 독립 배급사는 버려진 것이다.

<올드보이>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친절한 금자씨>의 가격이 치솟자 배급사를 옮긴 건데 와일드사이드필름이 박찬욱의 '의리'를 문제삼는다면 할 말 없는 분위기였다. 메트로폴리탄 배급 담당자를 만났더니 '박찬욱은 스필버그보다 거장이 된 것 같다'고 비아냥거리더라.

봉준호 감독이 프랑스에서 대체로 호평을 받은 반면 박찬욱 감독의 평가는 천차만별이었다. 2004년 5월 17일자 <리베라시옹>은 <올드보이>를 가리켜 '맥빠진 스릴러', '피로가 몰려오는 영화'라고 했다. <르몽드>는 '이제 박찬욱의 트릴로지가 끝날 때가 됐다'고도 했다."

친절한 금자씨는 원래 상업영화였다. 당연히 돈을 더 주는 배급사로 가는 것은 상업영화로서 당연한 일로 볼 수도 있다. 그 영화에 투자한 투자자에게 당연한 도리일 수 있다고 생각 해 볼수도 있다.

박찬욱이 스필버그보다 거장이 되었나 보다며 비아냥 거린다던데, 과연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세계가 박찬욱보다 더 거장의 그것인지는 모르겠다.

박찬욱의 영화세계의 폭력성이 프랑스인 입맛에 안맞는게 도데체 무슨 잘못인지는 더더욱 알길이 없다. 프랑스 식자의 눈에들면 좋은 예술영화고 프랑스 흥행이 성공하면 좋은 상업 영화라는 자격증이라도 된다는 것인지 더더욱 알길이 없다. 40년후 박찬욱의 영화세계가 구로자와 아키라 처럼 영화사에 남을 지 누가 알겠는가.

"최근에 우리가 본 스타일리시한 영화 중에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2004)이 있다. 어떤 주제, 시간적 배경을 막론하고 모조리 스타일리시해져 버린다. 그 시대에 우리는 스타일리시하지 않았다."

<그때 그사람들>이 상업영화 아니었나? 그리고 그영화가 엄청난 권력자의 어이없는 죽음과 그로서 인한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에 대한 조롱을 담은 영화 아니었나? 그렇다면 강력한 권력을 묘사하기위해 스타일 좋은 앵글, 조명, 의상이 오히려 당시 사건의 어처구니 없음을 대조적으로 드러내는 필수적 장치라고 볼 수 있을 것 으로 볼 수도 있지 않나. 단지 본인 취향에 안맞을 뿐인데 비난하는것이 아닌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 B형 남자친구 >(2005, 최석원)가 왜 나쁜 줄 아나. 과연 한국의 젊은이들이 그렇게 살고 있는 건가. 그렇게 살고 있다면 그 방식이 좋은 건가. 인생은 아름다워? 내가 보는 세상이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바꿔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현실을 가리는 영화들이 있는 것이다. 이런 영화들이 계속 만들어진다면 한국사회의 우민화에 영화계가 일조하지 않았다고 발뺄 수 없을 것이다."

는 그저 그런 흔해 빠진 영화중의 하나일 뿐이다. 혈액형 신드롬에 청춘 스타를 앞세운 그저그런 로맨틱 코메디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 영화속 삶의 방식이 현실에 맞는지 그방식이 좋은건지를 정색하고 따지는것 자체가 번지수를 잘못 찾아간것 아닌가. <덤앤더머> 나 남기남 감독의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 도 나름 존재의 가치가 있는 법이다. 꼭 영화가 한국사회를 계도해야 하는가?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잘나신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나?

"박찬욱이 국가대표는 아니다. '한-불 영상제 2006'에 박찬욱이 예선탈락인 이유다."

국가대표? 예선탈락? 영상제를 만든것 아닌가? 혹시 '한불영상제 2006'이 올림픽이나 월드컵으로 착각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되묻고 싶다.

"나는 개인적으로 <태극기 휘날리며>(2003, 강제규)를 보다가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 영화에서 남북이란 게 도대체 뭔가. 남북 분단이 일부 영화 감독들의 돈 벌이에 이용된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그렇게 함부로 다룰 주제인가."

<태극기 휘날리며> 역시 상업영화 아닌가? 남북 분단이 상업영화에 소재가 될수 없다는 해괴한 논리는 신비롭기 짝이없다.

"많은 수의 한국인 감독들은 한국에서 이야기거리를 찾아 그것으로 영화계에서 먹고살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타인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자신의 배를 채우고 있다."

도데체 뭘가지고 영화를 만들자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수 없다. 세상걱정 없는 한가한 내용의 영화 도 안되고 아픈 상채기를 다른 영화도 안되면 뭘 만들라는 건가.

"<왕의 남자>(2005, 이준익)가 관객동원 1200만을 돌파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한 마디로 부끄러웠다. <실미도>(2003, 강우석), <태극기…>부터 떠들기 시작한 '천만 관객'의 실체가 도대체 뭔가.... 전체주의 국가라고 자랑하는 것밖에 더 되나."

자 그럼 이제부터 우리나라가 전체주의 파시즘 국가가 아니란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한 영화에 1천만명이상 관객이 오면 돌려보내는 특별법을 제정하자. 그러면 우리나라가 전체주의 국가가 되는 절대절명의 위기를 벗어 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얻었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한국 영화계가 열망하는 칸에서 보여준 올해의 초라한 성적은 한국 영화의 오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제는 몇 년 후 한 나라의 영화시장을 짐작케 하는 척도라 할 때 올해의 칸과 베를린은 한국 영화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몇년전 부터 영화제 입상은 흥행참패의 보증수표였고 칸을 노리는 작가도 전체 한국 영화계에서 보면 절대 다수가 아니다. 오히려 상업영화가 대세인 한국 영화 생태계에서 칸과 베를린에서 불러 주지 않는다는 것이 과연 큰 의미가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또한 영화제가 몇년후 한 나라의 영화시장를 짐작하는 척도인지 여부 또한 알길이 없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영화의 미래가 어둡다고 단언하는 것은 황당하기만 하다.

칸과 베를린이 영화시장이 커지도록 도울지는 몰라도 칸과 베를린에서 불러주지 않는다고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미래가 더 어두워 진다는 것이 허황되게 들리는것은 나뿐은 아닐 것이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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