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하얀 바나나다.

온라인 공간에서 발견한 한장의 사진을 보며, 오리엔탈리즘에 지배 당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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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근(joe0326)등록 2006.05.09 11:27

<한/영 키(key)를 누르고 영문을 입력하면, 그대로 한글 번역이 된다고 믿었던 어느 주한 미군 병장의 작품> ⓒ 유승주



군복무 시절 함께 했던 동기의 미니홈피에서 발견한 사진인데, 어떤 미군이 한/영키를 누르고 영문을 입력하면 그대로 한글 번역이 된다고 생각하고 써놓은 글이었습니다. 2년간 미군들과 함께 먹고 자고 훈련장에서 뒹굴며 나름대로 그들의 생태를 잘 파악해 왔다고 생각해온 저였지만, 이 참신한(?!)발상은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저 한 단순무식한 미군이 만들어낸 촌극으로 끝내기에는 이와 같은 사례가 우리 주변에 적잖게 존재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수업시간에 언뜻 들은 ‘부정적 의미로서의 오리엔털리즘(Orientalism)’이 투영되어 있는 예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흔한 예로, 근동(近東)이니 중동(中東), 극동(極東)이니 하는 용어들은 누구의 기준으로 바라본 아시아입니까? 미 드라마 <로스트>에 나오는 ‘진’처럼 한국 남자들은 모두 극단적 보수주의자입니까? 이 모두가 서쪽에서 바라본 동쪽의 모습일 뿐입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서구에 의해 만들어진 오리엔탈리즘의 안경을 우리 스스로 쓰려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동남아시아의 이주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싸늘한 시선이 단적으로 그렇습니다. 최근 논쟁거리로 불 붙었던 ‘베트남 신부’와 관련한 조선일보의 보도태도는 또한 어떠하였습니까? 이 모두가 우리 스스로 ‘오리엔탈리즘’의 굴레를 쓴 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어느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모두 ‘노란 바나나’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해, 겉모양새는 노랗지만, 속살은 새하얀 바나나와 같이, 노란 피부색을 가졌지만, 생각은 온통 하얀빛으로 물들어 있는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흰 속살의 노란 바나나’가 우리의 현재 모습일지도...> ⓒ 유대근



인간과 인간 사이에, 혹은 문명과 문명 사이에 높고 낮음은 있지 않습니다. 옳고 틀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름이 있을 뿐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생각을 우리는 가끔, 아니 어쩌면 자주 잊는 듯합니다.
우연히 발견한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여러 생각을 해본 어느 오후 날 이었습니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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