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길가의 꽃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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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원(semanto)등록 2006.05.09 20:16
어버이 날 밤이었다.
대학 4학년 딸은 밤 11시까지 강의를 듣는다.
요즘 대학 시간은 우리 아버지 세대로는 잘 모르겠다.
토요일은 놀면서 평일에는 지겹도록 수업이 있다.
학생 자신이 강의를 들으려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늦은 밤까지 있다.

딸아이는 이제 드디어 졸업반이다.
딸은 교육과 학생이다.
평생 직업을 택하려면 하늘의 별 따기라도 별을 따려는 마음에 교육과를 택한 딸이다.
우리 집은 아이들의 가는 길에 있어서 부모의 뜻을 세워서 어디 가라. 어디는 안 된다고 하는 법이 없다.
제 인생을 제가 선택을 하면 우리는 거름되고 수레 되어서 아이의 힘이 될 따름이다.

생각하면 참으로 딸 하나 기르기 힘들었던 세월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도서관이나 학원이 갈 때 아이를 태워 늦은 밤거리를 달리던 일들. 밤늦게 공부를 하고 오면 아침 등굣길에 아이는 지쳐서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고교 3학년 내내 나는 차를 태워서 딸아이를 학교까지 태워다 주었다.
학운이 따라주지 않는 동안 명일동 집에서 노량진 학원까지 태워다 주면 왕복 3시간이 걸리기도 하였다. 힘들다 하면 차안에서 재우려고 팔팔 도로를 다니던 길이 하루 이틀인가.

우리 부모는 좋은 대학을 들어가라고 말을 하지 않았다.
제가 목표로 한 대학을 못 들어갔으나 그래도 남들은 좋다고 하는 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을 하였다.
여름 방학 두 번 유럽 여행을 보내주었고, 두 번 미국에 봉사 활동을 하는 경비를 대주었다.
어학 공부를 하겠다기게 두 학기 동안 남아연방에 보내주었다.

대학 2학년 까지 딸아이는 과외공부를 시켜 제 용돈을 벌었다.
때로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결혼식장 도우미를 하여 용돈을 보태기도 하였다. 열심히 공부를 하여서 장학금을 탔다.
이제 4학년이 되어 용돈을 벌려고 공부에 지장이 있으면 안 된다고 하면 안 되어 공부만 하라고 부모는 말한다.

딸아이의 친구 중에는 이미 발령 받아서 선생님이 된 아이가 있고. 지금 고시 공부를 하는 아이도 있고, 졸업을 하고는 다시 딸 아이처럼 교직 과목을 듣기 위하여 편입하여 공부를 하는 아이도 있다.

딸아이의 친구들은 우리 딸아이가 갑부의 딸로 안다.
다른 아이들은 공부를 하기 위하여 해외여행을 떠난 일이 없이 젊음이 가고 있을 때, 딸아이는 추억을 쌓아 올렸다.

우리 부모는 갑부인가.
나는 버는 돈 없이 가진 집 한 채를 은행에 담보를 내어살아가는 막차 인생이다.
다만 그 집이 집값을 해주어서 아이들 공부 시키고 결혼 시키고 문간방으로 갈 때까지 갈 각오를 하고 있다.

딸아이는 결혼을 안하겠다고 한다.
"엄마 아빠처럼 자식을 위하여 희생할 자신이 없어서 나는 결혼을 못해. 혼자 일하면서 살거야. "
그 말이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요즘 시대의 바람은 결혼 안하기, 결혼해도 아이 안낳으려 드니 무어라 말할 수 없다.
자식을 낳아도 기르기 힘든 나라이며, 아이를 교육을 시켜도 주관이 없는 정책으로 우리 또한 얼마나 괴로웠던가.
지나간 날들 흐름이 보면 우리의 삶이 새롭게 바뀔 것이라는 낙관적인 희망이 또한 없다. 딸이 말하는 그 말을 반대할 수 도 없다.
그래, 인생은 자유이며 자신의 책임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부모의 답변은 이렇다.
"그래,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 선생님이 되던 한비야처럼 지도 밖으로 가는 일을 하던..."

딸의 말은 이렇다.
"그래서 내가 다시 다음에 또 태어나면 우리 엄마 아빠에게서 또 태어나고 싶다니까. "

그런 딸아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아이 엄마가 말하는 소리는 이렇다.
"그래, 그래.그러렴. 네 생각 대로 해라. 우리는 괜찮단다. "
"무슨 말이래. 딸내미가 무어라고 하는 거요?"
"어버이 날이라고 선물이나 꽃을 살 돈이 한 푼도 없대요. 돈을 꿀 친구도 없고요. 그렇다고 카드로 무엇을 사면 제가 벌어서 사는 것이 아니고 나중에는 엄마 아빠가 돈은 내야 하니까 그것도 싫대요. 선물이 없어도 섭섭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이지요."

우리 내외는 서로 마주 보고 그놈 참 하고 웃었다.
딸아이가 자정이 다되어 들어왔다.
" 미안, 미안해요."
하며 꽃 두 송이를 내민다.
길표 카네이션이 아니다.
아파트 단지의 길가에 피어있는 영산홍이다.
길가에 피어있는 꽃이 어버이 날에 부모에게 주는 꽃이다.
나는 4월 한 달 교생 실습을 나가는 딸을 매일 태워서 아이가 실습 나가는 학교에 가는 버스 정거장까지 가는 일을 일과로 삼았다.

그것은 내리 사랑이며 조건 없는 봉사활동이었다.
"아빠, 고마워요."
하는 말이 딸아이가 내게 주는 말의 꽃다발이었다.
그래도, 어버이날에 길표 카네이션 살 돈이 없어서 길가의 꽃 한 송이를 꺾어들고 와서 미안 미안해요 하는 딸아이를 보면서 아휴 고마워라 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랑에는 내리 사랑과 치사랑이 있는 법이다.
우리의 사랑이 길에서 꺾는 꽃 한 송이 정도였더냐.
나는 슬프기까지 했다.

딸아이가 제 방에 들어간 뒤 아내가 내게 왔다.
"돈도 없는 아이가 . 그래도 이렇게 꽃을 들고 왔으니 기특하지 뭐예요. 다른 아이들은 이런 말도 안하는 아이들이 많습디다."
카네이션 한 송이 제대로 된 것을 못 받아서 섭섭한 아버지와 화단의 꽃 한 송이를 받았다고 대견하다고 하는 어머니 중에서 누가 더 행복한 사람일까.
나는 아내의 마음을 따르기로 했다.
어차피 내리 사랑은 주는 사랑이지 받는 사랑은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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