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호의 문학적 표현방식을 존중하라!

민족작가회의여, 당신은 진보를 말하지 마시오

검토 완료

서정순(yoana)등록 2006.06.01 21:06
‘지충호와 커터칼’로 요약되는 박근혜 피습은 공교롭게도 두 문인을 졸지에 곤경에 빠뜨렸다. 한 명은 노사모 대표인 노혜경 시인이고 또 한 사람은 송명호 시인이다. 예컨대 노혜경은 박근혜의 수술을 두고 “처음에 17바늘 꿰맸다더니 60바늘 꿰맸다는 것을 보면 성형도 함께 한 모양”이라고 비아냥거렸다는 죄목으로 ‘천하의 몰상식한 년’이 되었고, 송명호는 ‘박가 년 보지는 손에 달렸다지’라는 시를 쓴 죄목으로 가족이 신변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혹독한 몰매를 맞고 있다.

이 중 무명시인에 가까운 송명호는 그야말로 시 한 편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경우인데, 그를 향한 세간의 시선은 따갑지 못해 살인적으로 냉혹하다. 앞에 송명호가 있다면 당장이라도 찢어죽일 태세다. 벌써 과격한 몇몇 누리꾼은 송명호의 식솔들을 걸고 넘어지고 있다고 한다. 송명호는 이를 탄식하면서 되레 “그런 시는 그보다 더 원색적으로 더 비열하게 더 더럽게 느껴지도록 써야” 한다면서 자신의 행위를 변호하니, 가히 창작자의 자존심이라 할 만하다.
한편 이따금 송명호의 도발을 옹호하는 분들도 있긴 하다. 이분들도 덩달아 욕을 먹고 있는 형국이다.
나 또한 문제의 시를 읽어보았다. 거짓말이 아니라 이 시를 읽고 배꼽이 달아나는 줄 알았다. 눈물까지 났다. 똥을 누고 난 느낌과 똑같았다. 우리 문단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독설의 미학이 생생히 살아 있어서, 조롱과 풍자의 달인 진중권 칼럼니스트가 언제 시인으로 등단했는가 싶었다.

진중권 말고 학계에서는 강준만 교수가 실명비판으로 한국사회 담론문화의 새 장을 연 바, 이제는 문화계에서도 강 교수 같은 인물이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들었다! 자국의 수많은 국보급 예술가들을 작품 속에서 거론하면서, 욕설과 저주를 퍼부었던 저 위대한 토마스 베른하르트 정도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송명호 사진 삽입
‘복권’, ‘그룹섹스’, ‘아무 말 없이’ 등의 시작품을 통해 대중과의 소통의 끈을 놓치 않았던 무명 시인 송명호는 2006년 ‘박근혜’라는 엄청난 상품코드를 능욕했다는 죄목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인터넷 문학사이트 ‘문학의 즐거움’

대체 한국의 문인들은 언제까지 비유어와 상징어 들 속에 숨어서 눈 가리고 아웅 할 것인가. 이런 행태가 소위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주장하는 ‘문학적 형상성’이란 말인가.
예컨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송명호의 그 문제작을 자사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일방적으로 삭제하면서, “송명호씨 글이 작가협회 전체의 글인양 오해되고 있다. (…) 문제가 된 글이 지난 5월 22일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게재된 바 있으나, 저질 욕설 남발 등으로 문학적 형상성을 인정할 수 없고, 시의 내용이 대다수 회원들의 정서와 상충되어 문학의 긍정적 역할과 단체의 위상에 해를 끼칠 수 있어 삭제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송명호의 시가 직설적 언어로 표현된 것만은 사실이다. ‘보지’니 ‘자지’니 하는 표현이나 ‘뒈지다’라는 표현 등은 시를 고상한 예술장르로 여기시는 수많은 분들에게 충분히 불쾌감을 선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불쾌감은 수많은 독자들 중 극소수 고매한 독자들이나 느끼실 감정이 아닐까. 소위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이, 즉 민족작가회의 소속 문학인들이, 한 시인의 작품을 두고서 ‘저질 욕설 남발’ 등의 표현을 써가면서 무지막지하게 매도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이 창작을 한다는 사람들의 태도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내가 보기엔, 송명호 본인도 항변했다시피, 비유가 아주 적절히 잘 된 구절이 많다. 가령 다음 대목을 보자.

‘궁궐 안에 술집 만들어 두고
불X 내놓기 좋아하다 기집년 품에서 죽었지
그래도 김재규가 인간미가 있어서
밖으로 나온 채로 죽은 박정희 X을
바지 속으로 넣어주었다지’

송명호는 국사는 안중에도 없이 여자들(유명 여자 연예인을 포함하여)을 앉혀 놓고 호사를 부린 박통의 타락정치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독재정치만이 박통의 특허였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밤의 정치, 타락정치도 그의 특허였다.
여기서 나는 불현듯 질문을 던지고 싶다. 박 대표를 암시하는 듯한 ‘박가 년’을 성적으로 모욕했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에게 말이다.
뭐냐면, 송명호는 ‘박가 년’의 이중성을 ‘손에 성기가 달린’으로 형상화했지만, 박통은 실제로 수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노리개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 자가 여자들을 술자리에 불러서 희롱하고 그것도 모자라 외국 손님들에게 이 여성들을 붙여주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러니까 송명호의 문학적 표현방식을 비열하게 욕할 게 아니라 박통이라는 천하의 모리배를 저주할 일이다. 그게 우선이고, 그것이 진짜 토해내야 할 욕이다.

‘보X가 손에 달렸다는 박가 딸년이

(…중략)

보X를 아무데나 내미나 이년아
그거 내놓는 재미에만 몰두하는 박가 년이라
여기서도 벌려서 조여 주고
저기서도 벌려주고 조여 댄다지
이년에게는 남녀노소가 없다네
단지 무식하고 지조 없는 년놈들만 맛을 안다네
쓰다듬고 조여 주는 맛을 안다지’

보지가 손에 달렸다는 표현은 대단히 비유적이다. 사실 손가락을 성기로 표현하는 예는 상투적이다. ‘fuck you’라는 저질 욕설을 표현할 때도 가운뎃손가락을 쳐든다. 그런데 손 그 자체를 성기로 보고, 악수 행위를 성을 파는 그것으로 묘사한 것은 대단히 충격적이며 풍자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표현은 충분히 문학적이면서 연상 가능한 것이다. 예컨대 한나라당 박 대표의 정치 스타일을 보면, 정책 위주의 실천보다는 입만 벙긋 하는 제스처가 더 많다. 박 대표님께는 대단히 죄송한 말씀인데, 그분은 야당 대표가 아닌 사람도 할 수 있는 원론적인 말만 기계처럼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그분의 주 레퍼토리를 보라. “무능한 이 정권(노무현 정부)을 심판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잡아야 한다” 등이다.
그리고 이 분이 민생을 위해 몸소 보여주신 정치적 업적으로는 이른바 시민들과의 악수세례 가 있다. 박 대표님은 팔목이 통통 부어오르는 부상을 입으시고도 이 업적을 지난 4.13총선에 이어 이번 5.31 지방선거 때도 보여주셨다. 이것이 그분의 민생 우선 정책의 실체다.

물론 나는 이분의 정치 스타일을 폄하할 생각이 없다. 이 글의 목적은 대표님을 까는 것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송명호 사태와 관련해서 이분의 정치적 제스처를 한번 쯤 생각해보는 것은 자못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예컨대 송명호는 왜 하필 박 대표의 손을 성기로 상징화했는가? 여기서 나는 박 대표님의 패션 스타일을 지적하고 싶다. 이분은 항상 단아한 옷차림을 하신다. 머리를 단정히 올리시고(고 육영수 영부인을 생각나게 한다!) 치마를 즐겨 입으신다. 이러한 박 대표의 차림새는 어렵지 않게 ‘한국의 대표 어머니’라는 이미지를 낳았고, 그녀의 모성애와 여성성이 그녀의 독자적인 기호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충분히 여성성을 담보로 하는 정치 행위라 할 만하다.
그렇다면 한 가지 묻자. 이러한 이미지로 한국의 거대 야당의 대표까지 오른 그녀를 마냥 칭송하는 것이 옳은가? 이 이미지를 다르게 볼 수도 있지 않은가?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가지고 ‘샘’을 만들었듯이 송명호도 이 순결한 ‘모성성’을 완전히 전복적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손에 보지가 달렸다고 상상하는 것은 지극히 예술가적인 감수성이 아닌가? 이것이 뭐가 잘못된 것인가?

사실상 박 대표에 대한 송명호의 도발은, 한 여성에 대한 도전행위가 아니라 민생을 기만하는 한 정치인에 대한 문학적 비판 행위일 뿐이다.
‘보지’라는 말에 너무 오바하지 말라. 촌스런 행위다. ‘야함’의 철학을 국내 최초로 창시한 마광수 교수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개탄하지 않았는가? 한국은 문화적 촌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결국 “네가 하고자 한 말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누리꾼들은 물론이거니와 민족작가회의 회원분들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표현의 다양성을 유연하게 봐달라는 주문이다. 단순히 직설적인 표현을 가지고 꼬투리 잡지 말고 왜 이런 시가 나왔는지를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특히 민족작가회의는 제 사고의 경직성을 자랑하듯 서둘러 공식입장을 밝힐 게 아니라, 이 시가 충분히 문학성을 성취했음을 증명하는 일을 하라. 거부감이 드는 시적 언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우우 하고 몰려드는 누리꾼들에게 부화뇌동하지 말고 좀더 진지하게, 문학집단답게 대처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 시 하나 가지고 “대다수 회원들의 정서와 상충되어 문학의 긍정적 역할과 단체의 위상”까지 들먹이며 과민반응하지 말고 이 독특한 시를 계기로, 대중을 교묘히 기만하면서 권력을 유지하는 이 시대 정치인들을 문학적으로 비판할 생각을 먼저 하라!
그것이 당신들이 할 일이다. 민족작가회의라는 이름을 달고서!
달은 ‘보지’ 못하고 달을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만 보고서, ‘손톱에 때가 꼈네, 손톱을 세모로 짤랐네, 어쩌네’ 하면서 비판할 일은 결코 아님을 알아두시라.


■별도편집

아무 말 없이

전동차 두 대 마주보고 달려도
부딪치지 않는 이 지하철 대합실에서
나는 그대를 그리워한다
그리움과 그리움이
길을 비켜 제 갈 길을 가 버리면
그 뿐인 우리들은
감당하기 벅찬 서러움에도
노란 딱지만한 아픔도 교환하지 않는다
떠나가라 그대여
우리들의 고통 밑에는 언제나
베이스 뮤직이 깔리지 않던가
쿵쾅쿵쾅 눌러대는 외로움
끌려가듯 종착역에 닿는
이 저녁 시간은
마주보며 몸을 비비어도
그대는 아무런 말도 건네주지 않는다
스스로 들어가서 갇혀 있어야 하는
우리들의 서러움 한 장을
다갈색 정액권으로 바꾸고 나면
이산화탄소와 산소까지도 포기한
머리 깎인 가로수를 만나게 되는데

●《안개가 아픈 자작나무》(시와시학사, 1996)에 수록된 〈아무 말 없이〉 전문.

이 시집을 두고 문학평론가 방민호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내가 아는 한 그는 극히 최근까지 심한 생활난과 극한적인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난 적이 없었지만 이 자리에서 이를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는 없겠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고통스럽고 폐쇄적인 세계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그가 외부적 세계와의 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며, 이상적인 세계를 향한 구도적인 자세를 견지하려 해왔다는 점이다. 전자와 관련해서 이른바 민중시로 분류할 수 있는 일련의 시들( 복권 , 그룹섹스 , 아무말 없이 )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며, 후자와 관련해서는 앞에서 얘기한 모색과 관련된 시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송명호라는 한 시인의 작품을 단 한 편도 읽어보지 않고서 그저 문제가 된 시만을 가지고 우르르 몰려들어 돌을 던지는 누리꾼들에게서 알 수 없는 잔혹함을 느낀다. 시인 신현수는 ‘박영근’이라는 시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여, 제발 내 친구 영근이에게 예의를 지켜라.’ 무슨 이야긴고 하니, ‘시집도 네 권이나 내고/민족문학 진영에서 가장 권위 있다는/ 신동엽 창작기금까지 받은 중견시인인데,/ 그런 영근이에게/
감히 이 세상은/ 모파상에 대하여 써보라는 둥,/졸업장을 가져와 보라는 둥 웃긴’ 일이 벌어
졌기 때문이다.(노동자시인으로 알려졌지만 탁월한 연시집이라 할 수 있는 ‘저꽃이 불편하다’로 백석문학상을 수상한 박영근 시인은 지난 5월 12일에 별세하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신현수가 박영근을 감싸안는 식으로 나는 송명호를 감싸안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누리꾼들 이하 민족문학작가회의도 송명호에게 예의를 갖추었으면 좋겠다. 문제작 하나로 시인 송명호의 삶과 문학이 완전히 매도된다는 것은 정말 웃긴 일이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