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계-협진(協進)의 새로운 사회운동

현대와 미래의 사회진보를 위한 방법론

검토 완료

이병철(cheori27)등록 2006.06.06 10:04
참여-연계-협진(協進)의 새로운 사회운동


1. 87년의 동력이 소진되었다

새로운 사회를 추구했던 제분야의 사회운동과 현실정치 안에 스며들어간 87년의 동력은 소진되어, 더이상 의미있는 전망을 내세우기 힘들게 되었다. 민주화와 합리적인 사회체제를 추구해 온 근대적 가치에 기반한 20년간의 사회변혁 실험은 날로 새로워지는 사회환경과 복잡한 한국정치현실에서 대응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어느 방식도 이념적으로나 정통성으로나 자신의 존립과 생존 근거를 주장하기 힘들게 되었다. 당연하고 일상적인 흐름이 되는 것을 넘어 부분적으로 권력화해버린 시민사회운동도, 탈민주당-개혁당-노사모를 거쳐 열린우리당으로 모아진 개혁세력의 정치사회적 제도개혁 실험도, 민주노조운동과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거쳐 민주노동당으로 모아진 진보적 이념의 한국화도 모두 실패단계에 와있다.

시민사회운동은 일상화를 넘어 권력화가 진행되면서, 공공성에 입각한 자기모순 극복에 실패했다고 본다. 공선협 활동, 낙천낙선운동 등에 이어 이번 5.31지방선거에서 '매니페스토 운동'을 통해 준제도화해 보려던 시민사회권력은 심각한 자기모순에 의해 정치적 현안과 상당부분 괴리되고 부적절한 기계적 형평주의 및 주관주의에 의해 훼손된 결과를 제시하면서 이번 실험을 신뢰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권력실험에 그치고 말게 하였다. 시민사회단체의 권력만큼 기존 권력인 언론도 매니페스토를 활용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과 지향을 노출시키면서 희석된 측면도 있다. 권력을 견제할 만한 수단인 매니페스토와 주민소환제는 일사불란한 조직적 연계망이 없다면, 이번과 같이 중앙과 지방, 지역과 지역이 따로 노는 모습으로 귀결되고 말 뿐이다.

열린우리당은 참패를 통해, 87년의 동력이 얼마나 소진되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고 본다. 대통령과 의회 과반수를 쥐고서 유의미한 개혁을 실행에 옮길 것을 기대한 국민들은 깊이 실망했다. 개혁은 고사하고, 내부의 조직적 균형과 이념적 갈등해소시스템, 정치적 재생산의 공생전략도 마련하지 못한 채로 무수한 실험만 되풀이하다가 결국 국민과 대통령 양측에서 신뢰를 잃었고, 이제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없는 식물정당으로 전락해 버렸다.

민주노동당은 지속적으로 변화해 가는 미래의 사회구조와 복잡해져가는 갈등구조를 예비하는 정당으로 발전하지 못한 채 과거의 이념과 계급주의에 집착하는 한편, 진정한 의미에서 현대의 소외계층인 비정규 및 서비스노동자들에 대해 조직적으로나 정책적으로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자신의 존립기반인 대기업노조 위주로 귀족화, 권력화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은 근로기준법조차 무력화되어가는 시대인데, 민주노동당은 노동의 가치를 공정하게 평가받고 능력과 노력에 따라 공평한 사회를 이룰 수 있는 어떤 대안이든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념에 집착하고 근거하는 민주노동당에는 그마저 기대하기 힘든 것이 한계이고 숙명이라고 본다.


2. 변화하는 시대와 문화를 삶과 운동의 씨줄과 날줄로 엮어내야

이제 우리는 과거의 운동방식을 과감히 포기하고 전인미답의 새로운 길에 나서야 한다. 전세계적으로 한국만큼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사회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은 사회전체가 거미줄처럼 엮이고 한곳에 충격이 가해지면 전체가 한꺼번에 출렁이는 "초연계사회"로 나아가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네트웍사회'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진보된 네트웍을 가진 사회이다. 이에 주목하여 새로운 방식의 운동을 짜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을 이끄는 기본인식이다.

우리 사회에서 네트웍은 삶과 운동의 보조수단으로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 홈페이지와 이메일, 메신저망, 미니홈피와 일촌연계망, 휴대폰과 문자메시지 일괄발송 시스템을 이용한 신속한 의사소통망 등이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보조적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사회운동단체가 있다고 가정하면, 그 단체는 자기 조직내의 구성원에 대한 연계의 허브로써 홈페이지(카페,동호회 포함)를 운영하고, 회원관리시스템을 이용한 의사소통-전달망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제한적이고 배타적인 틀 안에서만 기능한다는 점을 주목하자.

우리가 새롭게 추구해야 할 지점은 바로, 허브와 허브의 연계에 관한 부분이다. 연계망을 구축할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 있으나, 여러 부문들이 저마다의 독자성에 대한 집착과 배타성을 헐어버리지 못함으로써 전사회적인 협진(協進)의 가능성을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성찰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연계(聯係)"에 관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연대와 연계의 차이를 굳이 말하자면, 연대는 이미 계기와 조건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져 오고 있었던 방식이다. 연계란 그보다 좀더 일상적이고 체계적이며 공고한 관계를 의미한다. 네트웍을 중심으로 놓고 보자면 허브들의 연계를 의미하는데, 거기에는 초허브가 존재할 수도 있고, 수평적이고 임의적이면서도 일상적인 관계망으로써만 존재할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는 초허브로 기능하는 것들이 이미 있다. 비정치적인 듯하면서도 매우 정치적인 '뉴스포털' 중심의 여론형성망을 예로 들 수 있다. 미디어다음과 아고라 및 즐보드 등의 연계는 우리 사회의 '네티즌여론-네티즌문화'를 전면적으로 포괄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네이버뉴스와 토론장도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권력의 크기에 걸맞는 책임있는 '편집자'의 존재여부에 따라 사회정치적으로 순기능을 할 수도 있고, 역기능을 할 수도 있다. 인터넷기업의 기업이윤만을 위해 이용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은 이미 포털들의 행태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새로운 망의 탄생=권력의 탄생을 구경만 할 수는 없다. 기존 시민사회운동과 개혁-진보운동이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의문이 남게 된다.


3. 참여-연계-협진의 방법론: 이념은 없고 방법만 있다

필자는 과감히 단언컨대, 이제 이념 또는 깃발은 고립과 자기만족을 의미할 뿐이다. 깃발을 꼭 들어야 하는 운동방식이 있다면 들어야 하겠지만, 사회 전체에 함께 하고 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생각과 방향이 있다면 이제 깃발들고 앞장서는 방식만으로는 의미있는 결과를 얻기 힘들 것이다.

현대와 미래에 유효한 운동의 방식은 참여-연계-협진의 방법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한 '일시적 조직화'의 무수한 사례가 이미 주위에 널려 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새로운 흐름이다. 여기에 '사회정치적 의미부여'가 가능하다면 일시적인 것을 일상적인 것으로 전환시키고 안착시킬 수 있다. 바야흐로, "생활정치, 참여정치"의 가능성이 충만한 사회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아파트 홈페이지에서 체육활동 동호회나 주부들의 취미활동, 문화강좌 등에 관한 게시판이 운영되고 있을 때, 여기에서 사회복지 마인드와 지역사회 실정에 맞는 참여정치 마인드가 결합된다면, 이들의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와 마을단위의 생활과 환경, 문화를 변화시키고 개선하는 데서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아파트 안의 흐름으로만 끝난다면 그것은 다른 곳에 모범사례로 소개되지 않는 한 사회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만약 그 아파트 홈페이지가 "생활정치 모범사례 연계망"에 포함되어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동네의 경험과 모범은 실시간으로 다른 마을과 아파트단지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그 "확산시키는 역할"을 해 줄 사람들이 바로 "연계의 주체"들이다. 연계의 주체를 육성하고 연계망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에 사회진보를 추구하는 이들이 책임지고 수행해야 할 '생활정치연계망을 통한 사회적 진보'의 방법인 것이다.

자생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는 이제 대세가 되었다. 여기에 '연계'의 마인드가 갖춰지면 경험과 모범의 공유가 가능해진다. 이를 통해 사회가 함께 진보하는 것을 '협진'이라고 부르려는 것이다.

협진의 방법론을 내세우는 이유는 이제까지 사회운동이 각 부문과 지역, 계층에 국한되어 각개약진해온 것을 성찰하자는 의미이다. 한국사회가 세계적으로 앞선 네트웍 연계망을 발달-형성시켜 놓았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그에 걸맞게 기존의 일시적, 조건제한적 '연대'보다 일상적이며 공개적이며 더욱 강력한 '연계망'을 형성하면, 사회전체가 공감하는 이슈와 의제를 협력에 의하여 공동으로 실천하고 구현할 수 있게 된다. 협력에 의한 사회진보를 추구한다는 것이 협진의 기본적인 의미이다. 네트웍을 기반으로 한 사회진보의 추구는 어느 다른 나라도 아닌 대한민국이 선구자적으로 시작해야 할 운동방식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다.

참여-연계-협진의 사회운동이 추구해야 할 이념적 지향은 있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이념은 없고 방법만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념을 배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는 사회구조와 역동적인 사회저변을 정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하여 해답을 제시하는 순간 사회는 또 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결국, 관찰이 불가능하지만 존재하는 현실에 대한 사회학적 대안은 '흐름을 따르는 방법'에 관한 것 뿐이 아니겠는가. 이념을 어떤 이상적인 깃발로 정의한다면 더욱 불필요한 것이 되어버렸다. 이념을 방법론의 원천으로 삼는다면, 주체와 동력을 제한하게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 계급, 계층의 이해관계에 국한해서 바라보지 말고, 사회전체의 '일시적 정의'와 '현재적 진리'에 관한 모색과 그 실현이 더욱 긴요해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이상적인 사회는 역시 자유와 평등과 평화가 넘치는 세상이다. 그곳으로 가는 방법으로써 계급투쟁, 혁명, 제도개혁 등 여러가지 방식이 시도되었지만, 현대에 맞는지 성찰해 봐야 할 것이다.

참여-연계-협진이라는 현대와 미래의 사회진보 방법론은 "임기응변" 또는 "순발력있는 대응방식"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은 네트웍의 발달로 가능해진 것이기도 하다. 과거의 보편적 시각에서 '임기응변'은 부정적인 의미로 보이겠지만, 현대와 미래에는 임기응변에 능하지 않고서는 한치앞의 대안도 내오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시의적절한 임기응변만이 '흐름을 주도하는' 방법론이라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4.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참여-연계-협진을 실천하고 구현하는 것이 새로운 사회진보의 방법이라는 결론에 동의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 저마다의 이전 행로와 활동방식에 대해 돌아봐야 할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지난 20여년간 실천해온 부문,계급,계층의 전통적 운동방식은 네트웍상에 거의 수렴되어 있다. 저마다 단순한 게시판부터 고급 회원관리시스템을 갖춘 홈페이지까지 두루 갖추고 회원들의 삶과 실천을 연결하고 있다. 이제 각개약진해온 제부문들이 자신의 부문과 카테고리를 확장하여 더 큰 '연계망 형성'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울러, 기존의 네트웍운용에 관한 진단과 평가를 통해, 더욱 합리적이고 실질적인 자기네트웍을 형성하기 위해 '자기네트웍의 질적 업그레이드 및 표준화'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 표준화란 홈피나 카페 등을 획일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게시판 운영방식, 메시징과 회원관리시스템 등에서 최소공배수를 합의하고 그에 맞춰가자는 것이다. 아울러, 각부문과 개별조직의 책임있는 조직상층부는 자기부문, 단체, 조직이 어느 카테고리에서 사회적 연계망을 형성해야 하는지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중고등학생들이 두발자유화를 위한 카페를 개설하고 게시판 토론과 메시징을 통해 촛불집회 등을 진행하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두발자유화 운동을 추진하는 조직상층부는 자신들의 뜻과 행동에 공감하는 외부와 어떻게 '연계'를 추구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협진'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연계를 위해서는 전국의 중고등학교 학생회에 사발통문을 보내고, 인권단체 및 진보적 학부모단체 등에 운동의 의의를 공유케 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협진'을 위해서는 집회일정을 조정하고, 집회의 행동수위에 공감하는 최대인원이 집회에 참가하도록 독려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고, 나아가 지역별, 학교별 서명운동이나 촛불집회를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전국적인 연계망을 통한 행동주체의 조직화를 모색해야 한다. 한편, 학부모단체 등 연계조직은 인권이나 법률차원에서 학생들의 행동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고, 입법기관인 국회의원까지도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참여-연계-협진의 모범사례가 하나 탄생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일상적 연계망이 탄생할 수 있다. 만일 전국적인 연계망과 공동행동조직을 형성할 수 있었다면, 각 지역별로 책임을 맡은 운동주체들은 강력한 신뢰를 바탕으로 운동이 마무리된 다음에도 서로가 공감하고 공유하는 또다른 문제의식을 새롭게 제기하고 공동으로 행동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네트웍은 새로운 연계망으로 기능하며 상승발전하고 새롭게 재생산될 수 있다. 만일 이 운동을 위한 홈페이지가 있었다면 이것은 청소년인권에 관한 초허브 기능으로 업그레이드될 수도 있고, 혹은 새로운 학생문화를 주도하는 토론과 경험의 공유공간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그밖에도 사례는 무수하게 들 수 있을 것이다. 네트웍을 제대로 활용하려는 발상만 공감한다면 모든 사회운동은 즉시 자신의 주변에서부터 '연계망 형성'의 구체적 대상과 수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사회의 자발적인 참여와 조직화 현상은 저마다 다른 목적과 특성과 인적구성에도 불구하고, 나비의 날개짓같은 하나의 몸부림이 사회전체를 출렁이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세계최고 수준으로 거미줄처럼 엮인 네트웍상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 네트웍에 탄력을 부여하고 소통량을 확대해 가야 한다. 87년의 동력은 시민사회운동과 정치실험을 거치면서 소진되었다면, 이제 21세기의 사회진보는 네트웍의 활용을 통해 새로운 동력을 형성하고 더욱 직접민주제적인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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